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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8년 여름, 이란은 셔틀 유조선을 엮은 임시변통 체계로 석유를 실어 내고 있었다. 유조선들은 한때 이 나라 원유 수출의 90%를 처리했으나 폭격으로 부서진 하르그섬 터미널에서 출발해, 시리섬과 라라크섬에 급히 마련한 선적 지점까지 오갔다. 두 섬은 걸프만 훨씬 아래쪽, 이라크 공군력이 닿는 끝자락에 있었지만 결국 이라크 전투기는 그곳까지도 날아왔다. 빠져나가는 물량은 전쟁 전 수출 능력의 일부에 불과했고, 막대한 비용을 들여 끊임없는 위협 속에서 실어야 했다. 게다가 그 원유의 값은 반토막이 나 있었다. 사우디아라비아가 시장에 원유를 쏟아붓기로 하면서 유가는 1985년 말 배럴당 30달러 안팎에서 1986년 봄 겨우 10달러로 곤두박질쳤다. 석유 수출로 전쟁 비용을 대는 나라에서 군대의 보급을 떠받치던 수입은 달마다 말라 가고 있었다.

7월 20일, 테헤란이 유엔에 공식 통보한 지 이틀 뒤, 아야톨라 호메이니의 메시지가 테헤란 라디오로 방송됐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결의 598호를 받아들인다는 내용이었다. 사담 후세인이 무너질 때까지 싸우겠다고 8년 동안 맹세해 온 끝에, 꼬박 1년 동안 거부해 온 바로 그 휴전 결의였다. 호메이니는 이 결정을 독배를 마시는 일에 비유했다.

독은 이란이 더는 돈을 들여 되돌릴 수 없게 된 연이은 패배였다. 그해 봄과 여름, 이라크의 공세는 알파우와 이란이 점령하고 있던 이라크 영토 대부분을 되찾았고, 이란의 기갑 장비와 포병 상당수를 노획했으며, 이란 영토 안으로까지 밀고 들어갔다. 함락된 수도도, 항복한 군대도 없었다. 그러나 재건에는 돈이 들었고 그 돈이 바닥나 있었다. 무기를 수입할 경화도, 전시 경제를 지탱할 수출 수입도 없었다. 그사이 소련제 무기와 걸프 아랍 국가들의 자금으로 넉넉해진 이라크는 마음먹은 대로 타격을 입혔다. 8년의 세월과 수십만 명의 목숨을 절대적인 신학적 신념에 바쳐 온 정부는, 전장에서 이길 수도 군대를 재건할 돈을 댈 수도 없게 되자 그 신념을 내려놓았다.

이란·이라크 전쟁을 끝낸 것이 전장 못지않게 돈이었다면, 더 큰 질문은 돈이 전쟁 일반을 끝내는가 하는 것이다. 만약 그렇다면, 2026년 6월 서명되고 몇 주 만에 무너진 호르무즈 해협 합의, 곧 미국·이란 양해각서에 대해 그것은 무엇을 예측하는가?

잘못된 질문

전쟁이 왜 끝나는지에 대한 통상의 설명은 단순한 논리를 따른다. 한쪽이 이기거나, 양쪽이 서로 지쳐 쓰러지거나, 외교관들이 타협을 중재한다. 군사적 결과가 시점을 결정한다. 더 강한 쪽이 이긴다. 신문 보도와 텔레비전 분석, 그리고 대부분의 외교안보 논평에 깔린 암묵적 전제를 형성하는 것이 바로 이 틀이다. 그 범위 안에서라면 이는 앞뒤가 맞는 옳은 이야기다.

하지만 사람들이 가장 알고 싶어 하는 질문, 즉 특정한 전쟁이 언제 끝날지, 그리고 그 끝이 지속될지에 답하기에는 너무 불완전하기도 하다.

정치학자 제임스 피어런은 하나의 수수께끼에서 출발했다. 전쟁이 관련된 모두에게 값비싸고 파괴적이라면, 합리적 행위자들은 언제나 양쪽 모두 싸움보다 낫다고 여기는 협상 결과를 찾아낼 수 있어야 한다. 그런데도 전쟁은 일어난다. 전쟁이 지속되는 데는 두 가지 메커니즘이 있다. 첫째는 속일 유인이 있는 사적 정보다. 각자는 자신의 역량과 결의에 대해 상대에게 믿을 만하게 드러낼 수 없는 무언가를 알고 있다. 둘째는 약속 이행의 문제다. 특히 힘의 균형이 계속 변할 때, 어느 쪽도 합의를 지키겠다고 보장할 수 없다. 전쟁의 종결에 같은 논리를 적용하면, 전쟁은 싸움이 정보의 간극을 메울 만큼 충분히 드러냈을 때, 또는 제시된 합의가 양쪽 모두에게 계속 싸우는 비용보다 나아 보일 때 멈춘다.

전장의 결과는 그 계산에 들어가는 입력값 하나일 뿐이다. 계속 싸울 돈이 또 하나다. 이 둘을 지도와 장부라고 부르자.

지도는 누가 어느 영토를 장악하고 있는지 보여 주고, 장부는 그들이 그 장악을 계속 유지할 여유가 있는지 보여 준다. 1988년 봄과 여름, 지도는 호메이니에게 불리하게 움직였다. 이라크는 알파우반도를 되찾고 이란의 진지를 하나씩 무너뜨리며 이란군을 국경 너머로 밀어냈다. 테헤란은 함락되지 않았고 이란에는 아직 전장에 선 군대가 있었다. 그러나 잃은 것을 재건할 돈을 낼 수 없었다. 장부가 무너졌기 때문이다.

피어런의 수수께끼는 전쟁이 어떻게 시작되는가에 관한 것이었다. 훗날 그가 내전이 얼마나 오래 지속되는지로 눈을 돌렸을 때, 다이아몬드, 아편, 코카 같은 밀거래 자원으로 자금을 대는 내전은 그렇지 않은 내전보다 훨씬 오래 지속되는 것으로 드러났다. 그런 전쟁에 들어가는 돈은 땅 위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든 계속 들어온다. 시에라리온의 다이아몬드 광산은 누가 이기고 있는지 개의치 않았다. 반군은 캐낸 것을 계속 팔았고, 전쟁은 자금줄을 유지했다.

국가 간 전쟁도 같은 논리를 따른다. 브라니슬라프 슬란체프는 1816년부터 1991년 사이에 벌어진 국가 간 전쟁 104건을 분석해, 비용과 역량에 대한 불확실성이 이어지는 동안 전쟁이 길어지고, 외교로는 드러낼 수 없던 것, 즉 전쟁이 각자에게 치르게 하는 비용을 싸움이 드러낼 때 전쟁이 끝난다는 것을 보여 주었다. 또 전쟁이 길어질수록 전쟁을 시작한 쪽이 결국 받아들이는 조건은 나빠진다. 저항이 한 달 더 이어질 때마다 그것은 적이 예상보다 강하다는 정보가 되며, 슬란체프의 데이터에서 전쟁이 어떻게 끝나는지를 결정하는 데는 이 새로운 정보가 날것의 자원보다 더 큰 비중을 차지한다.

단서가 하나 있다. “대부분의 전쟁은 협상으로 끝난다”는 주장은 역사적으로 최근의 일이고, 그마저 고르게 들어맞지는 않는다. 1946년 이전에는 전쟁을 벌인 국가 쌍이 사실상 모두 분명한 승자를 내며 싸움을 끝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에는 44% 이상이 무승부로 끝났다. 내전도 같은 경로를 밟았지만 더 늦었다. 냉전 시기에는 다섯 건 중 네 건이 한쪽이 다른 쪽을 꺾는 것으로 끝났지만, 1989년에서 1997년 사이에 끝난 내전 가운데서는 70%가 휴전이나 협상에 의한 합의로 끝났다. 협상에 의한 합의가 내전 종결의 지배적 방식이 된 것은 냉전 이후의 일이다. 평화유지 활동과 제재 체제, 제3자 중재가 어느 쪽도 전장에서 패배하지 않아도 교전 당사자들의 손익 계산을 바꾸기 시작하면서였다.

약속 이행의 문제, 그리고 그것이 휴전 뒤에도 살아남는 이유

약속 이행의 문제는 서명자들이 얼마나 진심이든 상관없이 성립한다. 전쟁을 일으킨 조건이 여전히 존재하는데, 당사자들이 앞으로 다르게 행동하겠다고 믿을 만하게 약속할 수 있는가? 경제적 압박 속에서 서명한 합의는 약한 쪽이 역량을 회복하는 순간 깨뜨릴 유인이 충분한 합의다. 이 문제는 총성이 멎은 뒤에도 살아남아, 밑바탕의 유인 구조가 바뀔 때까지 지속된다. 너무 많은 휴전이 그 구조를 건드리지 않은 채 남겨 두며, 그토록 많은 휴전이 실패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문턱을 움직이는 것

손익 계산이 어떤 문턱을 넘을 때 전쟁이 끝난다면, 다음 단계는 무엇이 전쟁을 그 문턱 너머로 밀어내는지 찾는 일이다. 데이터가 가장 깊이 쌓인 내전이 가장 날카로운 답을 준다.

내전의 지속 기간을 좌우하는 가장 분명한 지렛대 가운데 하나는 교전국이 수출하는 1차 상품 가격의 하락이다. 메커니즘은 단순하다. 원자재 수출은 경화를 벌어들이고, 경화로 수입 무기를 산다. 세계 가격이 폭락하든, 수출 기반시설이 폭격당하든, 제재가 송유관을 틀어막든 수출 수입이 줄면 무기 조달 능력이 떨어지고 군대는 더 일찍 바닥을 드러낸다. 다른 변수들도 잡혔다. 1인당 소득이 낮으면 전쟁이 길어졌다. 반군 쪽을 편드는 외부의 군사 개입은 분쟁을 단축했다. 같은 연구의 초기 버전은 반군에게 은신처를 주는 넓은 산림 면적도 전쟁을 길게 만든다는 것을 발견했다. 뒤에 이어질 사례들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원자재 가격 효과다. 전쟁이 얼마나 오래가는지를 그 비용을 대는 돈과 곧바로 연결하기 때문이다.

이 발견들은 내전에서 나왔다. 협상 이론은 국가 간 전쟁에서도 같은 메커니즘을 가리키지만, 그곳에서 원자재 가격 효과를 같은 정밀도로 측정한 사람은 없다. 그러니 아래의 국가 간 전쟁 사례들은 메커니즘을 증명한다기보다 보여 주는 것이다.

가격과 예산은 결정하는 사람들을 거쳐서만 전쟁을 끝낸다. 전쟁을 계속하는 데 드는 기대 비용이 기대 수익을 넘어서면, 전쟁 수행 기구를 장악한 엘리트들은 연합이 내건 목표와 별개로 자기 이익을 따지기 시작한다. 경제학자 폴 콜리어가 주장해 왔듯, 어떤 파벌에게는 전쟁 자체가 채굴과 후견, 밀수로 수입을 만들어 내는 하나의 경제 체제다. 그런 파벌은 전쟁이 여전히 돈이 되는 동안에는 멈출 이유가 거의 없다.

엘리트의 이탈이 휴전 시점을 예측하는지는 많은 수의 전쟁을 놓고 측정된 적이 없다. 그러나 수출 수입의 붕괴가 특정한 방에서 특정한 인물이 내리는 휴전 결정으로 바뀌는 곳이 바로 엘리트의 계산이다. 1988년의 호메이니, 1991년의 조지 H. W. 부시, 2026년의 이란 지도부가 그랬다.

제재, 신용 제한, 무기 금수, 자산 동결 같은 제3자의 경제적 압박은 바깥에서 부과한 인위적인 원자재 가격 폭락처럼 작동한다. 전장에서의 우위 없이도 경제적으로 버틸 수 없는 시점까지의 시간을 압축한다. 제재가 정부를 무너뜨리는 일은 드물지만, 전쟁을 감당할 수 없게 되는 시점을 앞당길 수는 있다.

독배와 대차대조표: 이란·이라크, 1988

이란·이라크 전쟁은 이 메커니즘을 가장 선명하게 보여 준다. 극대주의적 목표를 내걸고 대량 인명 손실도 감수하겠다고 공언한 신정 정부가 8년 동안 계속 싸우겠다고 공개적으로 다짐했고, 군대가 패배하고 있는데 그 군대를 재건할 돈을 더는 낼 수 없게 되자 멈췄다.

1988년 7월을 앞둔 몇 달 동안 세 갈래의 흐름이 한데 모였다. 첫째는 기반시설이다. 하르그섬의 선적 터미널은 하루 수백만 배럴을 처리하도록 지어진, 세계 최대급 시설이었다.

1982년부터 이라크 공군은 저장 탱크와 선적 부두, 셔틀 유조선 선단을 겨냥한 몇 년에 걸친 끈질긴 폭격으로 하르그 터미널을 두들겼다. 이란은 임시방편을 짜냈다. 하르그에서 원유를 소형 유조선에 싣고, 이라크의 타격 범위 끝자락에 있는 시리섬과 라라크섬까지 걸프만을 따라 내려보낸 뒤, 그곳에서 초대형 유조선에 옮겨 실어 수출했다. 이 체계 덕분에 석유는 계속 흘렀지만, 전쟁 전 수출 능력의 일부에 그쳤고, 혹독한 물류 비용이 들었으며, 셔틀 항로 자체가 끊임없이 공격받았다. 1984년부터 격화해 결국 미 해군까지 끌어들인 유조선 전쟁은 무엇보다 이란의 수출 수입을 겨냥한 전쟁이었다.

둘째는 가격이다. 사우디아라비아가 생산 억제를 포기하기로 하면서 세계 유가가 폭락했다. 1985년 말 배럴당 30달러 안팎에서 1986년 봄 겨우 10달러로, 불과 몇 달 만에 약 3분의 2가 증발했다. 이미 손상된 기반시설을 통해 줄어든 물량을 수출하던 이란에게 이는 겹친 재앙이었다. 빠져나가는 석유는 줄었고, 배럴당 값은 1년 전의 절반에도 못 미쳤다.

이라크도 같은 가격 충격을 겪었고, 자국의 걸프만 터미널은 전쟁 초기부터 폐쇄돼 있었다. 그러나 튀르키예와 사우디아라비아를 거치는 새 송유관 덕분에 1987년까지 전쟁 전 생산량의 대부분을 되찾았고, 이라크에는 주머니가 두둑하고 계속 수표를 써 줄 전략적 이유가 있는 후원자들이 있었다. 이라크가 외부에서 조달한 전쟁 자금의 대부분은 걸프 왕정국가들이 댔다. 걸프 아랍 국가들의 대출과 증여 총액은 370억 달러에서 600억 달러 이상까지 추정되며, 주된 출처는 사우디아라비아, 쿠웨이트, 아랍에미리트였다. 이들이 이라크를 지원한 것은 이란이 이기면 이슬람 혁명이 걸프 전역으로 수출될까 두려웠기 때문이다. 이란에는 그에 견줄 후원자가 없었다. 테헤란은 주로 줄어드는 자체 수출 수입으로 싸움의 비용을 대고 있었다.

셋째는 무기다. 1986년부터 1988년 사이 모스크바는 바그다드에 약 2000대의 전차와 꾸준히 이어진 스커드 미사일을 포함해 90억 달러어치로 추산되는 무기를 보냈다. 전쟁 기간 전체를 통틀어 소련의 군사 지원이 가장 집중된 시기였다. 모스크바는 이란이 이기면 이슬람 혁명이 소련령 중앙아시아로 번질까 두려워했고, 아프가니스탄 철수 결정은 그 우려를 더 키웠다. 소련은 무기 공급선을 그 전염에 대한 보험으로 활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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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련의 지원 급증이 이라크의 마지막 공세들을 가능하게 했다. 1988년 4월 17일, 이라크군은 이란이 2년 동안 점령하고 있던 알파우반도를 약 35시간 만에 탈환했다. 대부분 공화국수비대로 이루어진 약 10만 명의 병력을 1만 5000명가량의 이란 수비대에 맞서 투입했고, 이란 전선에 신경가스와 겨자가스를 퍼부었다. 이라크에는 새로 들어온 소련제 기갑 전력과 제공권, 화학무기가 있었다. 이란에는 더는 보충할 수 없는 바닥난 재고가 있었다. 알파우의 이란군은 전투에서 밀렸지만, 화력에서도 밀렸고, 가스를 뒤집어썼으며, 돈에서도 밀렸다.

1988년의 패배는 실제였지만, 이란은 어떤 영토도 영영 내주지는 않았다. 잇따른 전투 패배가 전쟁의 끝이 된 것은 잃은 것을 무엇 하나 대체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수출 수입은 바닥났고, 석유 기반시설은 망가졌으며, 경화는 다 써 버렸다. 그런데 적의 재보급은 바로 이란의 보급이 무너지던 그 순간에 속도를 높였다. 여름이 되자 이란의 장부는 더 이상 전쟁을 계속하는 것을 뒷받침하지 못했다.

빈센스호 문제

1988년 7월 3일, 호메이니의 방송이 나가기 17일 전, 미 해군 빈센스호가 페르시아만 상공에서 이란항공 655편을 격추해 탑승자 290명 전원이 숨졌다. 이 사건이 결정적이었는지는 논란이 있다. 한 해석은 이를 전쟁이 계속되면 미국이 개입을 확대하리라는 신호로 본다. 다른 해석은 경제 붕괴가 이미 결정적이었고 격추는 기껏해야 촉진제였다고 본다. 이란 쪽 기록은 일부만 공개되어 있다. 이 결정을 설명한 호메이니 자신의 서한은 2006년 라프산자니가 공개한 것으로, 5년 안에는 승리할 수 없다는 지휘관들의 전망과 취약한 경제를 들고 있지만, 더 넓은 논의의 상당 부분은 여전히 기록 밖에 있다. 종전의 경제적 조건은 격추 이전에 이미 갖춰져 있었으므로, 격추가 시간표를 며칠 앞당겼든 몇 주 앞당겼든 구조적 설명은 그것과 무관하게 성립한다.

계산된 멈춤: 걸프전, 1991

이란·이라크 전쟁은 강요된 종결이었다. 계속 싸우고 싶었지만 그럴 여력이 없던 정부의 이야기다. 1991년 걸프전은 구조적으로 그 정반대다. 더 나아가는 데 드는 예상 비용이 예상 수익을 넘었기에 이긴 쪽이 스스로 택한 의도적인 멈춤이었다.

1991년 2월 말, 다국적군은 쿠웨이트에 있던 이라크 군사력의 상당 부분을 파괴하고 공화국수비대에 큰 타격을 입혔다. 다만 공화국수비대의 상당 부분은 유프라테스강 너머로 빠져나갔다. 부시 행정부는 바그다드까지 밀고 가지 않기로 결정했다.

그 결정을 내린 사람들은 이례적일 만큼 솔직하게 추론 과정을 기록으로 남겼다. 그들이 설명한 것은 영토와 병력비가 아니라 미국인의 목숨, 연합의 정치, 출구 없는 점령을 저울질한, 비용 대비 수익의 판단이었다. 전쟁 당시 국방장관이던 딕 체니는 1994년 미국기업연구소 강연에서 이를 상세히 풀어놓았다. 그는 바그다드를 점령하면 미국은 산산조각 날 수 있는 나라를 홀로 점령하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거기까지 가서 이라크를 장악하려 든다면 그건 수렁이다.” 그는 진짜 질문이 “사담이 미국인 사망자 몇 명을 더 치를 만한 가치가 있는가? 우리의 판단은 그리 많지 않다는 것이었고, 나는 우리가 옳게 판단했다고 생각한다”라고 말했다.

조지 H. W. 부시와 브렌트 스코크로프트는 1998년 회고록에서, 더 나아갔다면 “바그다드를 점령하고 사실상 이라크를 통치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을 것이라고 썼다. 그들은 민족과 종파에 따른 분열, 다국적 연합의 붕괴, 출구가 보이지 않는 군사적 개입을 예상했다. 콜린 파월도 같은 평가를 공유했다. 전쟁 종결 전략은 끝내 완성되지 못했고, 계획 및 작전과 조율된 적은 더더욱 없었다. 전쟁이 너무 빨리 끝나서 수뇌부가 손익 분석을 실시간으로 즉석에서 해야 했기 때문이다. 권력을 쥔 사람들은 전쟁을 계속하는 데 드는 기대 비용이 계속해서 얻을 수 있는 모든 것을 넘어선다고 판단했다.

2003년 2월, 폴 울포위츠 국방부 부장관은 하원 예산위원회에서 전후 이라크에 “수십만 명”의 병력이 필요하다는 신세키 장군의 추정이 “터무니없이 빗나갔다”고 말했다. 그는 이라크의 석유 수입이 재건 비용의 상당 부분을 메울 것이라고 단언했다. 1991년에는 비용에 대한 실제의 불확실성이 자제를 낳았다. 2003년에는 자신만만한 가정이 계산을 밀어냈고, 1991년의 결정을 내렸던 바로 그 관료들 가운데 체니와 울포위츠를 비롯한 일부는 한때 존중했던 그 산술을 이제는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1991년의 휴전은 그 골자에서 12년 동안 유지됐다. 비행금지구역을 둘러싼 충돌과 공습이 간간이 있었지만 전면전으로 되돌아가지는 않았다. 휴전을 지탱한 것은 멈추기로 한 결정이었다. 멈춤으로써 이라크 국가의 강압 기구, 아무리 잔혹한 방식이었을지언정 내부 질서를 유지하던 그 구조가 보존됐기 때문이다. 2003년 그 기구가 제거되자 1991년의 손익 분석이 예상했던 결과가 그대로 나타났다. 종파 간 붕괴, 반란, 8년에 걸친 미국의 군사 개입, 수조 달러의 지출, 그리고 한 세대 동안 불안정해진 지역이었다.

1차 사료

부시와 스코크로프트의 회고록 『변화된 세계(A World Transformed)』는 이 장르치고는 이례적으로 명시적이다. 결정을 내린 두 사람이 2003년이 그것을 시험대에 올리기 몇 해 전에 자신들의 추론을 상세히 밝혀 두었다. 《타임》은 1998년 3월 그 발췌문을 별도 상자 기사로 실었다. 2003년 침공의 설계자 가운데 한 명인 체니는 그보다 4년 앞서 같은 논리를 영상 기록으로 남겼다.

휴전은 왜 죽는가

전쟁을 멈추게 하는 것과 멈춘 상태를 지키는 것은 별개의 문제다. 그리고 두 번째 문제에 대한 연구는 훗날 크게 하향 조정된 한 숫자에서 시작된다.

그 대표 숫자를 내놓은 것은 경제학자 폴 콜리어와 안케 회플러였다. 그들의 추정에 따르면 내전이 끝난 직후의 국가는 5년 안에 분쟁이 재발할 위험이 대략 50%에 이른다. 이 수치는 유엔 문서에 들어갔고, 평화구축위원회 설립 준비에 영향을 미쳤으며, 정책 보고서와 장관 연설마다 모두가 인용하는 숫자가 됐다. 훗날 두 연구자 아스트리 수르케와 잉그리드 삼세트는 콜리어 자신의 연구팀이 이 추정치를 4년간 약 23%로 슬그머니 수정했으며, 같은 데이터로 단순히 세어 보면 5년 안에 두 번째 전쟁이 일어난 경우는 약 4분의 1에 불과하다는 것을 보여 주었다. 이 수정은 거의 주목받지 못했다. 50%라는 수치는 지금도 아무도 의문을 제기한 적 없다는 듯 정책 문서 속을 떠돈다.

정확한 숫자보다 중요한 것은 그 숫자가 가리키는 질문이다. 재발률이 25%든 50%든, 유지되는 합의와 무너지는 합의를 가르는 것은 무엇인가?

내전이 어떻게 타결되는지 연구하는 바버라 월터는 두 가지 조건을 꼽는다. 첫째는 믿을 만한 제3자의 안전 보장으로, 이는 양쪽 모두에게 합의를 깨는 즉각적 비용을 높인다. 둘째는 옛 교전 당사자들에게 분쟁 이후 질서에 대한 직접적 지분을 주는 권력 분점 장치다. 외부의 강제가 없으면 약속 이행의 문제가 다시 고개를 든다. 압박 속에서 서명한 쪽은 균형이 바뀌기를 기다리고, 양보를 얻어 낸 쪽은 그것을 막을 장치가 없다. 정치, 영토, 군사, 경제 등 더 많은 차원의 권력 분점을 담은 합의일수록 훨씬 오래간다. 이 함의는 반대 방향으로도 작용한다. 부분적인 재편은 기존 질서를 흔들면서도 안정적인 대안을 만들어 내지 못할 수 있다.

평화협정의 경제 조항을 하나하나 따져 봐도 비슷한 이야기가 나온다. 재통합 기금, 직업훈련, 옛 전투원에 대한 직접 이전 같은 사적 재화 조항은 평화를 눈에 띄게 더 오래가게 했다. 국가 개발 계획이나 전반적인 재건 약속처럼 기자회견에서 가장 그럴듯해 보이는 폭넓은 공공재 약속은 대개 아무런 차이도 만들지 못했다. 효과가 있었던 또 하나의 조항은 지역에 자체 과세와 세입에 대한 통제권을 주는 재정 연방주의였다.

이 발견들을 함께 읽으면 같은 방향을 가리킨다. 싸움을 합리적인 선택으로 만들었던 금융 구조가 휴전 뒤에도 살아남아, 서명의 잉크가 마른 뒤에도 자원 쟁탈, 후견 네트워크, 밀수 경제, 엘리트의 수입원이 그대로 남아 있을 때 합의는 실패할 가능성이 더 크다.

다이아몬드 광산을 장악한 군벌이 평화협정에 서명한다고 해 보자. 협정은 휴전 조건, 비무장지대, 어쩌면 새 헌법으로 폭력을 다룬다. 그러나 군벌은 여전히 광산을 장악하고 있고, 민병대에 자금을 대던 수입원은 여전히 흐르며, 민병대를 채웠던 전투원들에게는 여전히 수입이 필요하다. 협정은 총격을 다뤘을 뿐 총격의 경제적 논리는 건드리지 않았다.

이는 시에라리온과 라이베리아에서 동부 콩고, 남수단, 아프가니스탄에 이르기까지 실패한 평화협정들을 꽤 정확히 묘사한다. 자원은 달랐다(시에라리온의 다이아몬드, 콩고의 콜탄, 남수단의 석유, 아프가니스탄의 아편). 그러나 어느 경우든 싸움을 합리적으로 만들었던 돈은 휴전보다 오래 살아남았고, 싸움은 되돌아왔다.

DDR, 그리고 경제 없는 무장해제가 통하지 않는 이유

무장해제·동원해제·재통합(DDR) 프로그램은 전투원을 민간인의 삶으로 옮겨 가게 하는 국제사회의 표준 도구다. 사적 재화에 관한 발견은 이 프로그램들의 초라한 성적을 설명해 준다. 대안적 생계 수단을 제공하지 않은 채 무기만 거두는 프로그램은 다시 무장할 경제적 유인을 그대로 남겨 둔다. 수입도, 땅도, 앞날도 없는 옛 전투원은 언제든 다시 모집될 수 있는 상태로 남는다.

해협의 60일: 체크리스트로 본 이란 양해각서

2026년 10월 업데이트: 양해각서는 6월 17일 서명됐고 8월에는 이미 무너졌다. 2026년 10월 현재 이를 대체할 합의는 보도되지 않았다.

2026년 5월 말, 미국과 이란 사이에 추진되던 양해각서의 윤곽이 잇따른 유출과 공식 확인을 통해 드러났다. 호르무즈 해협은 다시 열리고, 선박 운항은 “제한 없음”으로 선언되며, 이란은 자신이 설치한 기뢰를 30일 안에 제거하기로 했다. 미국은 이란 항구에 대한 해상 봉쇄를 풀고 이란이 석유를 자유롭게 팔 수 있도록 제재 면제를 발급하며, 휴전은 협상을 위해 60일 연장될 예정이었다. 이란은 그 대가로 핵 프로그램에 대해 협상하기로 했다. 여기에는 약 440킬로그램에 이르는 60% 농축 우라늄의 처리 문제가 포함됐는데, 이는 추가로 농축하면 핵무기 여러 기를 만들 수 있는 양이다. 이 수치는 사찰단이 2025년 6월에 내놓은 마지막 추정치였고, 그 뒤로 사찰단은 이를 확인할 수 없었다. 이란은 핵무기를 추구하지 않겠다고 약속하기로 했다. 레바논·헤즈볼라 휴전 조항도 들어갔지만, 그 범위는 곧바로 테헤란과 워싱턴 사이의 쟁점이 됐다.

6월 1일, 이란 국영 매체는 레바논에서의 이스라엘 군사 작전을 휴전 위반으로 들며, 테헤란이 중재자를 통한 미국과의 모든 소통을 중단하고 해협을 완전히 봉쇄하겠다고 발표했다. 레바논 문제 자체가 하나의 구조적 문제였다. 테헤란은 휴전이 레바논을 포함한 모든 전선에 적용된다고 주장했고, 이스라엘은 아랑곳없이 헤즈볼라를 계속 공격했다. 보도된 조건은 레바논을 포괄했지만 이스라엘은 그 당사자가 아니었다. 그 탓에 양쪽 모두 휴전을 저마다 자기 식으로 해석할 수 있었다. 구조적 분석이라면 예측했을 이 틈을 6월 1일의 소통 중단이 확인해 주었다.

몇 시간 뒤 트럼프는 트루스 소셜에 협상이 “이란 이슬람 공화국과 빠른 속도로 계속되고 있다”고 올렸다. 6월 17일 양측은 전자 방식으로 양해각서에 서명했다. 60일간의 휴전 연장, 해협의 단계적 재개방, 미국의 봉쇄 해제, 이란 석유 판매에 대한 제재 면제가 담겼다. 양해각서는 여름을 넘기지 못했다. 누가 항로를 통제하고 누가 통행료를 받을 수 있는지를 둘러싼 분쟁으로 이행이 멈췄고, 이란은 허용된 항로를 벗어났다고 주장한 선박들에 발포했으며, 6월 말 미국의 공습이 재개됐다. 8월 중순이 되자 해협은 다시 이란의 승인 없는 선박에 닫혔고, 미국의 봉쇄도 돌아왔으며, 트럼프는 예정된 협상조차 없다고 말하고 있었다.

이 합의가 제대로 짚은 것은 표적이었다. 해협 재개방과 제재 면제는 곧장 수출 수입을 겨냥했다.

보도된 합의 조건대로라면 이란의 단기 경제 사정은 크게 나아졌을 것이다. 석유가 흐르고 경화가 돌아오면서 당장의 재정 압박이 누그러졌을 것이다. 피어런의 용어로 말하면, 합의 준수가 단기적으로 더 나은 선택이 된 것이다. 경제적 대가 없이 양보만 요구하는 휴전은 준수할 유인을 만들어 내지 못한다. 공개된 초안은 진짜 당근을 내놓았다. 서명 당일부터의 석유 수출 면제, 동결 자금에 대한 접근, 그리고 최종 합의가 이루어지면 최소 3000억 달러 규모의 재건 계획을 마련하겠다는 약속이었다.

약점은 다른 곳에 있었다. 첫째, 양해각서는 이슬람혁명수비대(IRGC)의 경제적 이해를 다루지 않았다.

추정치들은 이슬람혁명수비대와 연계된 기업과 조직이 이란 GDP의 3분의 1에서 3분의 2 사이를 차지한다고 본다. 범위가 이렇게 넓다는 것 자체가 이 체제가 얼마나 불투명한지 보여 준다. 연구자 케이한 발라드베이기는 혁명수비대와 혁명 재단들을 아우르는 더 넓은 군부·보냐드 복합체의 몫을 2013년 이란 GDP의 절반이 넘는 것으로 계산한다. 혁명수비대는 서방의 제재를 발판으로 경제 제국을 세웠다. 제재는 수입 경로와 국내 시장에서 혁명수비대 바깥의 경쟁자를 없앴고, 밀수 네트워크와 병행 금융, 그리고 테헤란이 “저항 경제”라 부르는 것에 대한 혁명수비대의 장악력을 굳혔다. 2006년 최고지도자는 헌법 제44조에 따른 교령으로 대형 국영기업 지분의 80%를 민간 및 협동조합 부문에 매각하라고 명령했다. 실제로는 “민영화”된 것의 상당 부분이 연기금, 보냐드, 혁명수비대와 연계된 복합기업 같은 준국가 매수자에게 넘어갔고, 이들의 손길은 건설, 통신, 에너지, 금융, 수출입 전반으로 뻗어 나갔다.

구조적 문제는 국제 무역의 정상화가 혁명수비대의 독점적 지위를 위협한다는 데 있다. 경제를 외국과의 경쟁에 열면, 갇힌 시장과 밀수 마진, 병행 금융이라는 제재 시대의 이점이 무너진다. 이란의 2025~26년 예산안은 석유·가스 수출 수입 가운데 정부 몫의 51%, 약 120억 유로를 혁명수비대를 포함한 군에 배정했다. 석유 수입의 일정 몫을 보장받는 기관은 그 수입이 흐르는 조건을 통제하는 데 실질적 이해가 걸려 있고, 자기 몫을 줄이거나 자신이 움직이는 경로를 개방할 어떤 장치에도 저항할 강한 이해를 갖는다.

이란 경제를 약화시킨 제재는 그 경제에서 혁명수비대가 차지하는 몫을 키웠다. 양해각서는 국가 차원의 손익 계산을 바꿨다. 그러나 합의 이행을 방해할 역량이 가장 크고, 정상화로 금전적 이해를 위협받는 파벌의 계산은 바꾸지 못했다. 그 결과는 국가 차원에서는 합리적으로 보이지만, 경제적 유인이 국익과 어긋나는 행위자들에 의해 무너질 수 있는 합의였다.

둘째, 양해각서는 정치적으로 가장 폭발력이 큰 양보를 양측이 동의할 때만 연장할 수 있는 60일의 협상 기간에 몰아넣었다. 이란의 핵 프로그램은 국제적으로 가장 강력한 지렛대이자 국내적으로 가장 민감한 상징이다. 실권을 쥔 강경 파벌, 곧 혁명수비대와 안보 기구, 최고지도자실은 바로 핵을 둘러싼 저항에서 정치적 정당성을 끌어낸다. 지금의 석유 수입과 나중의 재건 기금이 핵 양보에 따르는 국내 정치적 비용을 상쇄할 만큼 큰 경제적 유인인가 하는 질문에, 양해각서의 설계는 답할 수 없었다. 재발에 관한 연구가 길잡이가 된다면, 경제적 유인은 지속적이고 구조적일 때 통한다. 당장의 보상은 진짜지만 구조적인 것은 모두 아직 협상해야 할 최종 합의로 미뤄 둔 경우에는 통하지 않는다.

셋째, 공개된 양해각서는 휴전 뒤에도 살아남을 금융 구조를 건드리지 않았다. 혁명수비대 바깥의 경제 주체들을 국제 시장에 편입시킬 합의 이후의 장치가 없었고, 제재 회피 경제가 떠받치는 후견 네트워크에도 아무런 구조적 변화를 가하지 않았다. 앞서 살펴본 내전들에서 합의가 무너진 곳은 바로 그런 살아남은 네트워크였다.

혁명수비대의 경제적 이해를 그대로 둔 합의는 어떤 것이든, 그것을 무너뜨릴 동기와 수단을 모두 지닌 파벌과 마주한다. 양해각서의 붕괴는 이 예측에 들어맞지만 그것을 증명하지는 않는다. 합의를 무너뜨린 것이 정말 그것이었는지는 공개된 기록만으로는 알 수 없다.

JCPOA라는 선례

2015년 핵합의는 이란이 정상화 합의에 들어설 때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보여 주는, 가장 가까운 시험 사례다. 2016년 1월 합의가 발효된 뒤 제재 완화가 찾아왔다. 석유 수출이 늘었고, 그해 GDP는 9% 가까이 뛰었으며, 수십억 달러 규모의 외국 계약이 성사됐다. 그러나 혁명수비대의 경제적 지배력은 크게 줄지 않았다. 보냐드 체제는 온전히 남았고, 병행 수입 네트워크도 계속 돌아갔다. 합의는 2018년 미국이 탈퇴하면서 흔들리기 시작했고, 2019년 7월부터 이란은 핵 제한선을 넘어서기 시작했다. 구조적 질문은 혁명수비대가 어차피 안에서부터 합의를 속 빈 껍데기로 만들었겠느냐는 것이다. 정상화에도 불구하고 이어진 혁명수비대의 시장 지배, 그리고 새로 열린 부문으로 계속된 보냐드의 확장은 제재 완화만으로는 혁명수비대의 장악력이 느슨해지지 않았음을 보여 준다. 그들이 그 장악력을 합의에 맞서 휘둘렀을지는 알 수 없다.

1988년 7월, 브렌트유는 배럴당 약 15달러에 팔렸다. 소련 무기는 테헤란이 맞설 무언가를 사들이는 속도보다 빠르게 이라크로 넘어가고 있었고, 이란의 경화 보유고는 사실상 바닥나 있었다. 순교자의 수로 자신의 결의를 재던 정부는 계속 싸울 돈이 떨어졌다.

이번에는 석유가 다시 흐르기로 되어 있었다. 그리고 정상화로 가장 많은 것을 잃을 파벌은 여전히 그것을 막을 수단을 쥐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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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

앤터니 J. 블링컨 국무장관이 2024년 4월 29일 사우디아라비아 리야드에서 걸프협력회의 회원국 외무장관들과 회담하고 있다. (미 국무부 공식 사진, 촬영: 척 케네디) – Wikiped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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