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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67년, 네덜란드 공화국과 잉글랜드는 한 조약을 맺었다. 네덜란드는 북아메리카 동부 해안의 한 식민 정착지, 훗날 뉴욕시가 될 곳을 잉글랜드가 차지하는 것을 받아들였고, 잉글랜드는 반다해에 있는 한 화산섬에 대한 권리를 포기했다. 그 섬의 이름은 룬섬(Pulau Run)이다. 네덜란드는 그보다 오래전에 이미 섬에 살던 수백 명의 주민을 강제로 쫓아내고 섬의 육두구 나무를 모조리 베어 버린 뒤였다. 1667년의 셈법으로는 네덜란드가 더 이득을 본 거래였다.
향신료는 무엇에 쓰였나
향신료가 귀했던 것은 음식 맛을 좋게 해 주었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사람이 알고 있는 이야기는 이렇다. 틀린 말은 아니지만, 향신료 무역을 하나의 경제 체제로 움직인 힘이 무엇이었는지는 거의 설명하지 못한다.
중세 유럽 경제가 향신료에 기대어 돌아간 데는 세 가지 뚜렷한 이유가 있었고, 그중 맛과 관련된 것은 하나뿐이었다. 첫째는 의학이었다. 대략 5세기부터 17세기까지 유럽의 의사들은 갈레노스의 체액설이라는 틀 안에서 진료했다. 건강이 네 가지 체액, 곧 혈액, 점액, 황담즙, 흑담즙의 균형에 달려 있다는 이론이다. 음식은 뜨거움, 차가움, 습함, 건조함이라는 성질에 따라 분류되었다. 후추와 계피는 뜨겁고 건조했고, 육두구는 따뜻하고 건조했다. 이것은 치료의 범주였다. 소화 장애에 정향 가루를 처방한 의사와 소스에 정향을 넣은 요리사는 같은 단지에 손을 넣고 있었고(같은 상인에게서 산, 말 그대로 같은 단지인 경우도 많았다), 이 체계 안에서는 두 용도 모두 이치에 맞았다. 많은 도시에서 약제상과 향신료 상인은 같은 직종이었다. 후추를 실은 배는 약재와 양념을 동시에 싣고 있었다. 두 범주가 서로 갈라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몸이라는 화학 실험 세트
체액설에서 혈액은 뜨겁고 습했으며, 점액은 차갑고 습했고, 황담즙은 뜨겁고 건조했으며, 흑담즙은 차갑고 건조했다. 병은 불균형이었고, 치료는 식이나 약으로 그 균형을 바로잡는 일이었다. 후추, 정향, 육두구, 계피는 모두 뜨겁고 건조하여 차갑고 습한 상태, 이를테면 더딘 소화, 호흡기의 가래, 오한기의 열병을 바로잡는 치료제였다. 중세의 의사와 요리사가 향신료를 두고 의견이 갈린 것은 진찰료를 누가 받느냐 하는 문제 정도였다.
둘째 이유는 지위였다. 식탁 위에서 펼쳐 보이는 구매력의 과시였다. 귀족의 연회에 오른 카믈린 소스나 푸아브라드 소스 같은 향신료 범벅의 소스는 주인이 세계 공급망에 손을 뻗어 원하는 것을 마음대로 끌어낼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 주었다. 중세의 향신료 사용을 연구한 역사학자 폴 프리드먼도 중세의 연회를 같은 방식으로 읽는다. 향신료는 양념이라기보다 과시의 수단이었다. 사람들은 값비싼 옷감을 걸치는 것과 같은 마음으로 향신료 친 음식을 먹었고, 그 내용물은 거의 부차적이었다.
셋째 이유는 희소성이었다. 너무나 구조적이어서 지질학적, 식물학적 조건이라 해도 좋을 정도였다. 1438~1439년 런던에서 후추 1파운드는 석공 장인이나 목수 장인의 이틀 치 품삯보다 비쌌고, 정향 1파운드는 나흘 치 품삯보다 비쌌다. 사프란 1파운드는 약 23일 치 품삯, 거의 4주 치 노동에 해당했다. 그토록 가벼운 무게에 그토록 큰 가치가 담겨 있었으니, 향신료는 들고 다니는 재산 노릇을 했다.
또 이런 신화도 있다. 중세 유럽인들이 고기가 상한 것을 감추려고 향신료를 듬뿍 쳤다는 이야기다. 이 설명은 대중 역사 속에서 오랫동안 편안하게 살아남았다. 질문에 깔끔하게 답해 주고 더 생각할 필요도 없게 해 준다. 그리고 경제학적으로 틀렸다. 이 주장은 자체 논리부터 무너진다. 1파운드에 며칠 치 품삯이 드는 수입 향신료를 살 수 있는 사람들은 신선한 고기도 살 수 있는 사람들이었다. 이 이론이 성립하려면 같은 부유한 가정이 알려진 세계에서 가장 비싼 양념을 수입할 구매력을 갖추는 동시에, 제 식료품 창고의 음식이 썩는 것조차 막지 못하는 살림의 무능을 함께 지니고 있어야 한다. 부자들은 향신료를 듬뿍 친 신선한 음식을 먹었다. 가난한 사람들은 양념할 형편이 안 되는 음식을 양념 없이 먹었다.
중개의 기계
지리적 사실은 누군가 그 둘레에 무역로를 깔기 전부터 정해져 있었다. 육두구와 메이스는 지구상 단 한 곳에서 자랐다. 인도네시아 동부 반다해에 있는 열 개의 작은 화산섬, 반다 제도다. 섬들의 면적을 다 합쳐도 약 44제곱킬로미터에 불과하다. 정향은 주로 북말루쿠 제도의 테르나테와 티도레에서 자랐다. 흑후추는 주로 인도 남서부의 말라바르 해안, 서고츠산맥과 바다 사이의 좁은 띠 모양 땅에서 났다. 계피는 주로 실론에서 왔다. 이 상품들을 원하는 유럽 소비자에게는 단 하나의 공급망이 있을 뿐이었고, 그 안에서 쓸 수 있는 지렛대는 전혀 없었다.
사슬은 반다의 재배자에게서 자와의 해상 상인으로, 믈라카와 아덴과 알렉산드리아의 아랍 상인으로, 베네치아의 도매 대리인으로, 그리고 유럽 각지의 유통망으로 이어졌다. 모든 마디가 운임, 항구 관세, 뇌물, 상인 이윤의 형태로 제 몫을 떼어 갔고, 그 어디에도 경쟁 압력은 없었다. 다른 경로가 없었기 때문이다. 15세기 가격을 복원해 보면, 산지에서 은 약 2그램이던 후추 1킬로그램이 베네치아에서는 14~18그램, 북유럽 시장에서는 20~30그램에 팔렸다. 사슬 전체를 거치며 값이 10배에서 15배로 뛴 셈이고, 각 통행 징수소는 자기 구간에서 사실상의 독점자로 움직였다.
사슬은 의도적인 정보 은폐로도 작동했다. 아랍 상인들은 이국적이고 위험하게 들리는 원산지 신화를 퍼뜨렸다. 계피는 거대한 새의 둥지에서 거둬들인다느니, 카시아는 날개 달린 짐승들이 지키는 호수에서 난다느니 하는 이야기였다. 헤로도토스가 기원전 5세기에 계피 새 이야기의 초기 판본을 기록했으니, 이 이야기는 중세 향신료 무역이 절정에 이르기 최소 천 년 전부터 떠돌고 있었던 셈이다. 신화는 상업적 기능을 했다. 구매자들이 어디를 찾아봐야 할지 모르게 만들었다. 공급자의 우위가 그런 무지에 달려 있는 공급망이라면 어디서든 영업 비밀이 하는 일이 바로 그것이다.
베네치아는 이 체제의 서쪽 끝을 쥐고 있었고, 15세기 대부분의 기간에 유럽에서 가장 유리한 상업적 위치를 차지했다. 국가가 운영하는 갤리선 선단은 맘루크 술탄국의 출구인 알렉산드리아와 베이루트에서 후추와 그 밖의 향신료를 실었다. 1496년 한 해에만 알렉산드리아에서 온 갤리선 네 척이 베네치아에 향신료 약 200만 킬로그램을 부렸고, 그중 3분의 2가량이 후추였다. 베네치아는 정치적 중개자였고, 그 상업 구조는 서쪽의 필수 병목으로 남아 있는 데 달려 있었다. 그 위치가 도시를 부유하게 만들었고, 도시의 정치적 존립도 그 위에 서 있었다.
경제 문명으로서의 베네치아
베네치아와 이탈리아의 경쟁 도시들이 다듬은 금융 수단은 근대 상업 금융의 본보기가 되었다. 실물 화폐 없이 신용을 옮길 수 있게 한 환어음, 항해의 파국적 위험을 여러 보험업자에게 나누는 해상보험, 대규모 상업 금융을 감당할 수 있게 만든 동업 계약과 꼼꼼한 복식부기 장부가 그것이다. 향신료 무역은 이 수단들을 가장 까다롭게 쓰는 분야 가운데 하나였다. 물량은 컸고, 거리는 멀었고, 기간은 길었다. 포르투갈이 베네치아의 위치를 깨뜨리고 무역로를 돌려놓았을 때, 위협을 받은 것은 그 경로에 봉사하도록 세워진 하나의 금융 문명이었다. 베네치아는 반격했고, 레반트 향신료 무역은 1550년 무렵 이후 크게 되살아났지만, 다시는 독점을 쥐지 못했다.
최초의 공급망 탈취
바스쿠 다가마는 1498년 5월 캘리컷(오늘날 케랄라주 말라바르 해안의 코지코드)에 도착했다. 배 네 척과 약 170명의 선원이 리스본을 떠난 것은 열 달 전이었다. 이 항해는 항해술의 위업으로 기억되지만, 그것을 중요하게 만든 것은 항해가 공급망에 가져온 교란이었다.
포르투갈 왕실은 바닷길로 아시아의 향신료 시장에 직접 닿겠다는 사업에 수십 년의 세월과 막대한 자본을 쏟아부었다. 그 밑에 깔린 계산은 복잡하지 않았다. 산지와 유럽 소비자 사이의 가격 상승 사슬이 10배에서 15배에 이르고, 아프리카를 돌아 산지에서 직접 사들여 중간 마디를 모두 없앨 수 있다면, 예상 수익은 거기에 닿기 위한 거의 어떤 투자도 정당화한다. 포르투갈의 배는 자본 지출이었다.
경제적 결과는 금세 나타났다. 희망봉 항로를 거쳐 리스본에 들어온 향신료는 1501~1502년 연간 약 1,500킨탈에서 1503~1506년에는 연간 거의 1만 7,000킨탈로 늘었다. 불과 몇 년 사이에 11배로 뛴 것이다. 카이로에 주재하던 다름 아닌 베네치아 대사가 포르투갈의 돌파를 “causa de grande ruina del Stato Veneto”, 곧 베네치아 국가에 크나큰 파멸을 가져올 원인이라 불렀다. 경쟁자가 유럽 반대편 끝에서 내 도시의 핵심 상품을 대량으로 부리고 있다면, 그 도시를 세운 무역은 위협을 받고 있는 것이다.
베네치아의 은행가 지롤라모 프리울리는 1494년부터 1512년까지 이어지는 개인 일기에 리스본에서 소식이 들어올 때마다 이를 기록했다. 공식적인 제도적 대응은 1507년 1월 15일(베네치아력으로는 아직 1506년)에 나왔다. 원로원은 도시의 쇠퇴하던 해외 무역을 되살리는 임무를 맡은 다섯 명의 “현인”, 친퀘 사비 알라 메르칸치아(Cinque Savi alla Mercanzia)를 만들었다. 이 위원회는 위기보다 오래 살아남았다. 상설 관직이 되어 1797년 공화국 자체가 무너질 때까지 존속했다.
카르타스 체제
포르투갈이 스스로를 새로운 필수 중개자로 끼워 넣은 장치는 군함이 뒷받침하는 통행증 제도였다. 포르투갈령 인도(Estado da India)는 카르타스라는 통행증을 발급했고, 아시아 상인들은 포르투갈이 권리를 주장하는 항로에서 이것을 지니고 다녀야 했다. 대개 포르투갈 요새에 들러 그곳에서 관세를 내야 하는 의무도 따랐다. 통행증 없이 붙잡힌 배는 나포되거나 격침될 위험을 무릅써야 했다. 단속이 완벽했던 적은 없었다. 1504년부터 1549년 사이 서쪽으로 실려 간 말라바르 후추의 거의 절반이 여전히 홍해와 레반트로 빠져나갔다. 그러나 포르투갈 군함이 순찰하는 곳이면 어디서나, 여러 세대 동안 자유롭게 항해하던 상인들이 이제 그 특권의 대가를 포르투갈에 치렀다. 카르타스 체제는 그로부터 4세기 뒤에 등장할 석유 회사 이권 협정의 구조적 조상이다. 지배적 행위자가 지리적 접근권(이 경우에는 발견의 권리를 내세워 주장하고 무력으로 유지한 해로 통제권)을 면허료로 바꾸고, 그 면허를 거부할 수 없게 만들 만큼의 폭력으로 뒷받침한 것이다.
포르투갈은 결국 가격 상승 사슬을 없애는 대신 손에 넣었다. 포르투갈은 큰 이익을 남겼고, 절약분을 소비자에게 넘겨줄 생각은 별로 없었다. 1527년 무렵 포르투갈은 안트베르펜에서 1509년보다 66퍼센트 더 높은 값에 후추를 팔고 있었다. 유럽의 실질 향신료 가격은 그 뒤 한 세기에 걸쳐 아주 천천히 내려갔을 뿐이다. 아랍과 베네치아의 중개자들은 독점을 잃었지만, 지리적으로 집중된 공급, 필수 길목, 중개자의 수탈이라는 메커니즘은 교란을 겪고도 고스란히 살아남았다.
끝까지 밀어붙인 독점
네덜란드는 포르투갈의 구조적 약점을 간파했다. 포르투갈은 유통 사슬을 장악했지만, 향신료 나무는 여전히 현지인의 손에 있었고, 그들은 더 좋은 조건을 내미는 누구에게나 팔 수 있었다. 포르투갈의 위치는 그 사실에 좌우되었다. 네덜란드는 중개 단계 너머를 겨냥했다. 그들은 원산지 자체를 소유하고 싶어 했다.
1602년 네덜란드 연방의회의 특허장을 받아 설립된 네덜란드 동인도회사(Vereenigde Oost-Indische Compagnie, VOC)는 흔히 세계 최초의 공개 상장 기업으로 불린다. 주식 공모가 일반에 열려 있었고, 첫 주식 발행 때 암스테르담 지부에서만 1,143명의 투자자가 청약했다. 그러나 이 꼬리표는 이 회사의 실체 대부분을 빠뜨린다. VOC의 특허장은 전쟁을 벌이고, 조약을 맺고, 요새를 짓고, 영토를 다스릴 법적 권한을 부여했고, 주주들은 그 모든 일에서 배당을 챙겼다.
네덜란드 상인들은 1599년 반다 제도에 닿았다. 그들이 발견한 것은 제대로 돌아가는 열린 시장이었다. 반다의 재배자들은 여러 세대 동안 그래 왔듯 포르투갈, 잉글랜드, 아랍, 자와 상인들에게 동시에 육두구를 팔고 있었다. 이 방식은 반다 사람들에게 유리했다. 구매자가 여럿이면 가격 협상력이 생기고, 그것은 모든 거래에서 더 나은 조건을 뜻했다. VOC에게는 바로 그 이유 때문에 용납할 수 없는 일이었다. 네덜란드의 독점 모델은 그 협상력을 빼앗아야만 성립했다.
VOC는 반다의 공동체들에 독점 계약을 강요했다. 반다 사람들은 거부했다. 그들의 거부는 경제적으로 너무나 당연했다. 단일 구매자 체제를 받아들이는 것은 열린 시장을 자기들에게 유리하게 작동시키던 구조적 우위를 내주는 일이었다. 바타비아에 있던 VOC 총독 얀 피터르스존 쿤은 VOC의 특허장이 가능하게 해 준 방식으로 교착 상태를 풀었다. 그는 더 좋은 값을 제시하거나 협상하는 대신 파는 사람들을 없앴다.
1621년 네덜란드의 원정 이전 반다 제도에는 아마 1만 5,000명이 살고 있었을 것이다. 네덜란드 병사들과 일본인 용병으로 이루어진 쿤의 군대는 대량 학살을 저질렀고, 주민들을 내륙으로 강제 행군시켰으며, 식량과 식수원을 파괴하고, 생존자들을 바타비아로 강제 이송했다. 역사학자 빈센트 로트의 집계에 따르면 원정이 끝났을 때 섬에 남은 반다 사람은 추산 1만 5,000명 가운데 약 1,000명에 불과했고, 그중 수백 명은 룬섬에 있었다. 그들이 전투를 피할 수 있었던 것은 오로지 그곳에 잉글랜드인이 있었기 때문이다. 또 다른 역사학자 프랑크 돈트는 그 결과를 군도에서 일어난 반다 문명의 파괴라고 부른다.
그 뒤 섬들은 페르컨(perken)으로 나뉘었다. 네덜란드인 정착민 농장주, 곧 페르커니르스(perkeniers)에게 나눠 준 농장 구획이다. 이들은 육두구와 메이스 수확물 전량을 고정 가격에 VOC에 팔아야 했다. 구획에서 일한 것은 군도 곳곳과 인도, 중국 연안에서 끌려온 노예들이었다. 반다 사람들을 노예 노동자로 대체한 일은 노동만이 아니라 가격 결정권도 옮겨 놓았다. 반다 주민들은 세계 유일의 육두구 공급원에 대해 독립적인 가격 결정권을 쥐고 있었지만, 그들을 대신한 노예 노동력은 아무런 결정권도 갖지 못했다.
“식민지 폭력”이라는 범주는 반다에서 일어난 일을 흡수해 버리고, 그럼으로써 가려 버리기 쉽다. 반다 제노사이드는 사업 모델 그 자체였다. 한 자원의 가격에 대해 독립적인 권리를 주장할 수 있는 유일한 주체가 없애 버릴 수 있는 주민 집단일 때, 독점의 논리가 다다르는 합리적 종착점이었다. 쿤은 1623년 칭송받는 인물이 되어 네덜란드로 돌아갔다. 레이크스 미술관은 그의 공식 초상화를 소장하고 있다. 그의 동상은 1893년부터 고향 호른의 중앙 광장에 서 있다. 2012년에는 그의 성공이 매우 폭력적인 방식으로 이루어졌다는 문구가 받침대에 덧붙여졌고, 몇 년 동안 결정을 미뤄 온 시의회는 2026년 동상의 운명을 새로 꾸려진 연정에 넘겼다. 동상은 아직 서 있다.
네덜란드의 도박은 왜 합리적이었고, 왜 실패했나
1667년 무렵 반다 제도의 VOC 플랜테이션 체제는 설계된 그대로의 결과를 내고 있었다. 육두구 독점은 그 어느 때보다 완벽했다. 남은 틈은 단 하나, 룬섬이었다. 잉글랜드 상인들이 논란 속에 발판을 유지하던 군도의 마지막 섬이었다. 너새니얼 코트호프는 죽을 때까지 몇 년 동안 그 발판을 지켰다.
뉴암스테르담은 1664년 잉글랜드에 점령되어 뉴욕으로 이름이 바뀌었다. 이 도시가 수도였던 뉴네덜란드 식민지 전체의 정착민은 9,000명이 채 되지 않았고, 도시는 변경 시장과의 교역으로 먹고살았다. 대체할 수 없는 것은 아무것도 생산하지 않았고, 어떤 것에서도 독점적 지위를 갖고 있지 않았다.
브레다 조약은 양측이 점령한 곳을 서로 인정한다는 것을 공식화했다. 잉글랜드는 뉴욕을 지켰고, 네덜란드는 룬섬에 대한 자기들의 권리를 잉글랜드로부터 인정받았다.
네덜란드는 맨해튼을 섬 하나와 맞바꾼 것이 아니었다. 맨해튼은 이미 잃은 뒤였다. 그들은 상당한 대가를 치르고 사들인 독점의 마지막 틈을 메우는 대가로 그 상실을 받아들인 것이었고, 1667년의 경제 논리로 보면 룬섬이 더 나은 전리품이었다.
네덜란드가 예측하지 못한 것은 피에르 푸아브르였다. 프랑스의 박물학자이자 일드프랑스(오늘날의 모리셔스)의 왕실 행정관이던 푸아브르는 1750년대 초부터 네덜란드가 장악한 말루쿠 제도에서 살아 있는 육두구를 몰래 빼내려 애썼지만, 처음에는 거의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1769~1770년, 그가 동쪽 군도로 보낸 배들이 마침내 육두구와 정향 묘목을 넉넉히 싣고 돌아왔다. 일드프랑스에서는 식민지 개척자들과 노예 정원사들이 시행착오 끝에 그것을 키우는 법을 익혔고, 식물은 다른 프랑스 식민지로 전해졌다. 푸아브르가 시작한 일을 마무리한 것은 영국이었다. 나폴레옹 전쟁 중에 영국은 반다 제도를 점령하고 육두구 묘목을 제국 곳곳의 플랜테이션으로 실어 갔으며, 육두구 나무는 결국 카리브해 그레나다의 주요 작물이 되었다. 군함이 섬을 빼앗았고, 묘목이 그 상실을 영구적인 것으로 만들었다.
19세기를 거치며 육두구는 평범한 부엌 향신료가 되었다. 룬섬의 전략적 가치도 그와 함께 사라졌다. 한편 맨해튼의 가치는 이제 막 커지기 시작한 참이었다. 1667년 조약의 두 당사자는 모두 자기들이 알 수 있는 범위 안에서 현명하게 선택했고, 그럼에도 네덜란드의 도박은 실패했다.
같은 틀, 지금도 돌아간다
육두구는 값싸졌지만, 육두구를 귀하게 만들었던 메커니즘은 다른 자원에서 여전히 작동한다.
페르시아만의 5대 산유국(사우디아라비아, 이라크, 이란, 아랍에미리트, 쿠웨이트)은 세계 확인 석유 매장량의 약 53%를 보유하고 있다. 메커니즘은 구조적으로 반다 제도의 것과 같다. 자원의 지리적 집중이 세계 소비의 필수 길목을 만든다. 차이가 있다면 걸프 국가들은 물리적으로 제거될 수 있는 국가 없는 섬 주민이 아니라, 군사력과 온전한 법적 지위를 갖춘 주권 정부라는 점이다. 20세기 대부분의 기간에 이 원산지와 소비자 사이의 중개 단계는 서방 석유 메이저들의 컨소시엄, 세븐 시스터스였다. 뉴저지 스탠더드 오일, 로열 더치 셸, 앵글로페르시안, 모빌, 셰브런, 텍사코, 걸프가 그들이다. 이 회사들은 세계의 생산, 정제, 유통을 지배하며 생산 원가와 시장 가격 사이의 차액을 모든 단계에서 챙겼다. 이 구조의 기본 논리는 포르투갈의 것이었다. 유통 사슬을 장악하고, 모든 마디에서 수탈하고, 그 체제가 유지될 만큼의 무력으로 뒷받침하는 것이다.
VOC와 그 후계자들
오늘날의 자원 채굴 다국적 기업들은 현행 국제법이 허용하는 한도 안에서 구조적으로 VOC와 비슷하다. 이들은 민간 경비 병력을 두고, 채굴 조건을 놓고 주권 정부와 직접 협상하며, 계약상 필요할 때는 역사적으로 본국의 군사적 지원을 받아 왔다. 1953년 CIA가 배후에서 지원한 이란 쿠데타는 모하마드 모사데크의 국유화 이후 석유 회사들의 이권을 되살렸다. 뒤이은 1954년 앵글로이란 합의는 이란의 석유 생산을 서방의 주요 석유 회사들에 나눠 주었다. VOC 시대와 세븐 시스터스 시대 사이에 제도의 형태는 바뀌었다. 구조의 논리는 바뀌지 않았다. 국가의 뒷받침을 받는 민간 주체가 대규모로 자원 채굴을 장악하고, 상업적 압력으로 부족할 때는 그 뒤에 국가의 폭력이 버티고 있었다.
OPEC의 국유화와 1973년 석유 금수 조치는 되풀이되는 구조적 패턴의 또 다른 사례였다. 지리적으로 집중된 자원 생산자들이 중개 채굴 카르텔이 정한 가격을 거부한 것이다. 반다 사람들도 그렇게 해 보려 했고, 파멸당했다. 그들을 지켜 줄 국가 기구도, 군사력도, 법적 지위도 없었기 때문이다. 사우디아라비아, 이란, 리비아, 베네수엘라는 그 셋을 모두 갖추고 있었다. 350년에 걸쳐 생산자들의 권력 위치는 뒤집혔고, 같은 구조가 정반대의 결과를 낳았다.
평상시 호르무즈 해협으로는 하루 약 2,000만 배럴의 석유가 지나간다. 세계 석유 액체 연료 소비량의 대략 5분의 1이다. 이곳은 옛 홍해와 페르시아만 향신료 항로에 가장 가까운 현대의 등가물이다. 사우디아라비아와 아랍에미리트의 송유관이 일부 석유를 해협을 돌아 실어 나를 수 있지만, 남는 우회 수송 능력은 하루 약 260만 배럴에 불과하다. 2026년은 그것이 무엇을 뜻하는지 보여 주었다. 이란에서 전쟁이 터진 뒤 해협을 지나는 물동량은 2025년 말 하루 2,160만 배럴에서 2026년 2분기 약 490만 배럴로 떨어졌다. 그 석유 대부분은 배가 해협을 지나가지 못하면 옮겨 갈 길이 없다.
미국의 셰일은 피에르 푸아브르의 수에 가장 가까운 것이었다. 기존 길목 바깥에서 개발된 새로운 공급원이었고, 식물학이 아니라 채굴 기술을 이용했다. 셰일이 OPEC의 영향력을 끝내지는 못했다. 2026년이 보여 주었듯 걸프는 여전히 세계 가격을 움직일 수 있다. 그러나 셰일은 누구도 걸프를 점령하지 않고도 카르텔의 손아귀를 느슨하게 했다.
희토류가 지금 1667년의 국면에 와 있는 자원이다. 중국은 세계 희토류 채굴의 약 69%를 차지하고, 2023년에는 세계 자석용 희토류의 92%를 정제했다. 2025년 베이징은 희토류 수출 통제를 강화하며 그 지위를 쓸 의지가 있음을 보여 주었다. 첨단 반도체 제조는 대만과 한국에 집중되어 있는데, 그 집중의 방식은 향신료 무역을 공부한 사람이라면 누구나 곧바로 알아볼 만하다. 향신료 무역이 조금이라도 길잡이가 된다면, 묘목은 이미 어딘가의 온실에 있다.
독점은 배의 화물칸에 실린 묘목으로 끝났다. 영국 군함이 섬들을 점령했지만, 해군은 길목을 쥔 주체만 바꿀 뿐이다. 묘목은 그 길목의 힘이 미치지 않는 곳에 공급을 만들어 냈다.
오늘날 룬섬은 아무런 전략적 의미도 없는 양과 가격으로 육두구를 기른다. 한때 맨해튼보다 높은 값어치를 지녔던 이 섬에서 약 1,600명이 물고기를 잡고 육두구 나무를 돌보며 살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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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요 출처 및 참고문헌
Paul Freedman, Out of the East: Spices and the Medieval Imagination, Yale University Press, 2008.
Paul Freedman, “Spices in the Middle Ages,” History Compass, vol. 2, no. 1, 2004. https://doi.org/10.1111/j.1478-0542.2004.00115.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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