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이 글은 자동 번역되었습니다. 원문은 영어로 제공됩니다.

최종 업데이트: · 읽는 시간 23분

요약
브라질리아 출범식 22일 뒤, 계획에 자리가 없던 사람들을 위해 새 위성도시가 세워졌다. 오늘날 연방구 인구 약 300만 명 가운데 플라누 필로투에 사는 사람은 21만 명 남짓에 불과하다. 모든 기능에 저마다의 구역이 주어졌다. 주거와 상업이 뒤섞인 공간에는 단 1제곱미터도 주어지지 않았다. 계획 방식 말고는 공통점이 거의 없는 나라들에서, 세인트루이스부터 암스테르담까지 같은 양상이 되풀이됐다. 뒤섞임은 계획이 닿지 않는 곳에서 자라났다. 무단 점유 근절 캠페인이 세운 세일란지아에는 이제 플라누 필로투가 막도록 설계된 바로 그 뒤섞인 거리의 활기가 있다.

칸당구들은 내륙에서 왔다. 가뭄에 땅이 갈라진 북동부에서, 고이아스의 관목 지대에서, 미나스제라이스의 오지에서. 쿠비체크의 건설 회사들은 붉은 흙 위로 솟아오르는 새 수도의 일자리를 광고하고 있었다. 1957년부터 1960년 사이에 그들은 수만 명씩 몰려왔다. 1959년 5월의 시험 인구조사 당시 장차 연방구가 될 땅에는 약 6만 4000명이 살고 있었고, 여성 100명당 남성이 192명이었다. 작업 캠프는 그 남성 노동력을 중심으로 지어졌고, 그래도 찾아온 가족들은 공사 구역 가장자리에 천막을 쳤다. 개발 당국 노바캅은 이 문제를 시야에서 치워 버리는 방식으로 해결했다. 타구아칭가는 수도가 문을 열기 2년 전인 1958년에 공식 설립되었는데, 바로 이 사람들을 플라누 필로투 구역에서 떨어진 곳으로 옮기기 위해서였다. 그렇게 그들은 새 도시가 그린 자화상 바깥에 머물렀다.

출범식은 1960년 4월 21일에 열렸다. 출범식 22일 뒤인 5월 13일, 소브라지뉴가 공식 설립되었다. 10월 12일에는 가마가 뒤를 이었다. 수도가 가장 자랑스러운 순간을 맞은 지 여섯 달 만에, 계획이 자리를 마련해 두지 않은 또 한 무리의 사람들을 받아들이는 세 번째 위성도시였다.

오스카르 니에메예르와 루시우 코스타는 국가의 전폭적인 지원과 무한한 정치적 의지, 한 시대 전체의 지적 자신감을 등에 업고, 백지 위에 처음부터 새로 지어진 도시 가운데 가장 포괄적으로 설계된 도시 하나를 그려 냈다. 출범식이 끝나고 몇 주 만에, 이 도시는 자신이 대체하려던 비공식 도시를 낳기 시작했다.

수도를 지은 노동자 대부분은 끝내 그 안에서 살지 못했고, 그림자 도시는 계획이 가장 위대한 성취를 이룬 바로 그 몇 달 동안 자라났다. 브라질리아는 20세기가 도시를 통째로 설계하려 한 곳이라면 어디서나 되풀이되는 패턴의 가장 선명한 사례다.

플라누 필로투와 그 그림자

브라질리아는 1987년 20세기에 실현된 모더니즘 도시계획의 독보적 사례로 유네스코 세계유산 목록에 등재되었다. 건축과 도시계획의 측면에서 보면 마땅한 지정이었다. 루시우 코스타의 기념비 축, 니에메예르의 쌍둥이 국회의사당 타워, 대성당, 알보라다 궁전. 이 건축은 건축이 좀처럼 해내지 못하는 일을 해낸다. 사람들에게 비를 피할 지붕을 주는 데 그치지 않고 하나의 관념을 눈에 보이게 만드는 일이다. 그 관념은 기능적·공간적·이념적 명료성이고, 건물들은 의심할 여지 없는 권위로 그것을 구현한다.

플라누 필로투의 논리는 내적으로 일관됐다. 축에는 정부, 지정된 상업 구역에는 상업, 규격화된 수페르콰드라에는 주거, 전용 구역에는 문화와 교육. 모든 기능에는 지정된 공간이 있었고, 구역들은 자동차를 위해 설계된 도로로 이어졌다. 자동차가 근대 도시의 매체였기 때문이다. 수페르콰드라 모델은 이 논리를 주거 영역에서 끝까지 밀고 나갔다. 슈퍼블록 안에 아파트 동을 앉히고, 상업은 블록 두 개마다 그 사이에 둔 근린 상가 띠에 가두었다. 상점은 실제로 있었고 걸어서 갈 만한 거리에 있었지만(수페르콰드라는 필로티로 들어 올린 건물 아래로 걸어서 가로지르도록 설계되었다), 집과는 떨어져 있었다. 블록 안에는 길모퉁이 가게도, 1층 카페도, 노점상도 없었다. 계획에서 물리적 범주를 갖지 못한 것은 뒤섞임 그 자체였다. 집과 집 사이에 엮여 든 작은 서비스와 비공식 거래, 앞방에서 일하는 재봉사, 무허가 수리점 같은 것들이다. 거기에 배정된 땅은 1제곱미터도 없었다. 이 누락은 근대 도시 생활을 어떻게 조직해야 하는지에 관한 계획의 이론에서 나왔다. 주거는 기능적으로 순수하게, 상업은 제자리인 띠와 구역에, 문화는 저쪽 전용 구역에, 그리고 그 사이의 더 먼 이동은 자동차로.

그 결과는 사람들이 딱히 살고 싶어 하지 않는 걸작이었다. 초기 주민은 주택 보조금을 받는 공무원들이었고, 이들은 그곳에 살아야만 했다. 소속 부처가 이전했기 때문에 온 사람들이었다. 평범한 브라질 사람들이 브라질리아에서 경제적으로 무엇을 하며 살아야 하는지, 어떻게 일자리를 찾고 비공식 영업을 꾸리고 동네 상권을 일굴지에 대해 계획은 끝내 답하지 않았다. 도시를 사람이 깃들어 사는 경제가 아니라 설계할 대상으로 다뤘기 때문이다.

위성도시들은 노바캅의 행정 결정이었고, 수도 자체와 같은 일정에 따라 내려졌다. 명목상 목적은 계획 구역에 흡수할 수 없는 가족들과, 플라누 필로투 경계 안의 불법 정착지에서 철거되는 주민들을 수용하는 것이었다. 노바캅은 그들을 이주시키고 서류를 정리했으며, 계획의 이미지는 흠 없이 유지되었다.

오늘날 연방구에는 약 300만 명이 산다. 그중 플라누 필로투에 사는 사람은 21만 명 남짓에 불과하다. 나머지 34개 행정구역, 대부분 고원 곳곳에 흩어진 위성도시들에 연방구 인구의 약 93%가 산다.

ADVERTISEMENT

그리고 위성도시를 플라누 필로투와 구별 짓는 것은 바로 플라누 필로투에서 배제된 것, 곧 도시 생활을 경제적으로 살아 있게 하는 상업과 주거의 비공식적 겹침이다. 그것이 위성도시에 쌓인 까닭은 위성도시가 플라누 필로투의 규칙 바깥에 있었기 때문이다. 위성도시도 계획된 도시였다. 노바캅의 건축가들은 블록을 구획하고 학교와 교회, 상점을 위한 땅을 떼어 두었다. 다만 규모는 훨씬 소박했다. 개별 필지 위의 작은 집들을 주민이 직접 짓고 늘리고 세를 놓았으며, 앞방은 가게와 미용실이 되었다.

명성의 문제

유네스코의 1987년 등재는 사회적 비판이 한창일 때 이루어졌다. 비판보다 먼저 온 것이 아니었다. 브라질 학자들은 1960년대부터 플라누 필로투의 형식 논리가 주민들에게 어떤 대가를 치르게 했는지 기록해 왔고, 곧 제임스 홀스턴의 1989년 저서 《모더니즘 도시》가 그 작업을 종합하게 된다. 그럼에도 세계유산위원회는 건축과 도시계획을 근거로 그 걸작을 등재했다. 형태를 평가하고 사회적 결과는 제쳐 둔 것이다.

이 지정은 플라누 필로투의 물리적 형태를 유산 자산으로 굳혀 놓는다. 그래서 수페르콰드라를 크게 고치려면, 예컨대 설계가 배제한 1층 상업 활동을 허용하려 해도 문화유산 보존 규정을 통과해야 한다. 실패를 낳은 계획이 이제 그 실패를 낳은 바로 그 형태로 법의 보호를 받는다. 위에서 내려다본 시선은 1987년 연방구 법령과 1990년 연방 차원의 등록을 거쳐 브라질 문화유산법에 새겨졌고, 유네스코의 승인까지 받았다. 거리의 눈높이에서 본 도시가 얻은 것은 훨씬 적었다. 1988년 연방구는 빌라 플라날투를 문화유산으로 등록했다. 삼권 광장 근처의 건설 캠프들이 모여 이룬 동네로, 주민들이 철거에 맞서 싸워 지켜 낸 곳이다.

패턴은 반복된다

브라질리아 이야기에는 빤한 출구가 있다. 냉전기의 브라질, 권위주의에 가까운 국가, 재산권이 약하고 불편한 이미지를 지키려고 불편한 사람들을 쫓아내던 전통이 있는 개발도상국에서 허영의 사업을 벌인 대통령. 이것은 도시계획 일반이 아니라 브라질에 관한 이야기다. 칸당구들이 쫓겨난 것은 그곳에서는 원래 일이 그렇게 돌아갔기 때문이고, 이 이야기는 미니애폴리스나 맨체스터에 대해 아무것도 알려 주지 않는다.

다른 곳에서 일어난 일이 그 출구를 막는다. 로버트 모지스는 제대로 작동하는 민주주의 안에서 건설했다. 1950년대 뉴욕에는 법원과 재산법, 조직된 주민 반대 운동, 자유 언론이 있었다. 그 무엇도 그를 막지 못했다. 모지스가 크로스브롱크스 고속도로를 이스트트레몬트로 관통시킬 때, 남쪽으로 두 블록쯤 떨어진 크로토나 공원 가장자리를 따르는 대안 노선이 있었다. 그 노선이었다면 건물 159채가 아니라 작은 건물 여섯 채만 헐면 됐다. 그런데도 모지스는 더 파괴적인 경로를 택했다. 로버트 캐로의 판정은 직설적이다. 비용도, 계획도, 보통의 인간애도 아무 의미가 없었다. “중요한 고려 사항은 단 하나, 로버트 모지스의 의지뿐이었다.” 법원도, 동네 위원회도, 신문 사설도 모두 나섰지만, 민주적 제도 안에서 그만큼의 관료적 지렛대를 쌓아 올린 사람을 누구도 막지 못했다.

고속도로가 나기 전의 이스트트레몬트는 임대료가 저렴하고 기관들이 안정적이며 수십 년간 공동체 생활이 이어져 온 노동계급 동네였다. 1940년대 말에는 주민 대다수가 유대인이었고, 흑인과 푸에르토리코계 인구가 늘어나고 있었다. 인구 약 6만 명의 동네에서, 그 1마일 구간 하나 때문에 약 1530가구가 쫓겨났다.

부동산 가치는 폭락했고 공동체는 흩어졌다. 그전에는 그런 식으로 가난하지 않았던 동네에 집중된 빈곤이 뿌리를 내렸다. 70년이 지난 지금까지 이 가운데 어느 것도 되돌려지지 않았다.

두 번째 설명은 자원 부족이다. 개발도상국이나 자원이 부족한 환경에서는 포괄적 계획이 무딘 도구로 일하고 뒷마무리도 부실하다는 것이 문제일지 모른다. 1950년대 중반의 미국은 전후 산업 번영의 정점에 선 세계 최고의 부국이었다. 다만 연방정부의 비용 상한 때문에 개별 주택 사업은 빠듯한 예산에 묶여 있었다. 훗날 세계무역센터를 설계하는 야마사키 미노루는 세인트루이스의 프루이트아이고 주택단지에 11층짜리 타워 33동을 설계했고, 단지는 1954년에 첫 입주자를 받았다. 1960년대 중반의 모습은 이랬다. 높은 공실률, 만성적인 기물 파손, 그리고 건축가들이 예상하지 못했고 관리 측은 손쓸 방도가 없던 방식으로 단지의 수직 복도와 계단실에 몰린 범죄.

1972년 3월 첫 타워가 발파 해체로 무너졌고, 건물이 주저앉는 텔레비전 화면은 모더니즘 주택이 받은 가장 유명한 부고가 되었다. 1976년에는 33동 모두가 사라졌다.

프루이트아이고 문제

채드 프리드릭스의 다큐멘터리 《프루이트아이고 신화》는 진지한 응답을 받을 만한 진지한 주장을 편다. 프루이트아이고가 실패한 주된 이유는 세인트루이스가 그 주위에서 무너졌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백인 이탈, 재정 위기, 1950년부터 1970년 사이에 인구의 4분의 1 이상을 잃은 도시, 편의시설을 없애고 높이가 다른 건물들을 섞은 건축가들의 원안을 획일적인 고층 건물로 몰아간 연방정부의 비용 제한, 그리고 입주율과 함께 줄어드는 임차인 임대료로 유지 보수비를 감당해야 했던 주택 당국. 이렇게 읽으면 건축은 그것을 둘러싼 도시보다 덜 중요했다.

상당 부분 옳은 말이지만, 그래도 이 모델을 완전히 구해 주지는 못한다. 이유는 두 가지다. 첫째, 프루이트아이고에서는 설계와 자금, 관리, 인구 동향이 함께 실패했고, 돈과 입주자가 부족해질 때 이토록 여유를 남기지 않는 설계도 그 실패의 일부다. 둘째, 암스테르담도 교외로 가족들을 잃고 있었다. 1959년부터 1985년 사이에 인구의 5분의 1 이상이 줄었다. 그러나 베일메르메이르 뒤에는 세계에서 가장 부유하고 가장 잘 운영되는 복지국가 가운데 하나가 버티고 있었고, 그런데도 같은 패턴으로 실패했다.

또 하나의 아이러니는 건축에 있다. 야마사키 미노루의 세계무역센터는 첫 프루이트아이고 타워들이 무너진 지 1년 뒤인 1973년 4월에 헌정식을 열었다.

세 번째 설명은 미국 도시의 기능 장애다. 전후 수십 년 동안 미국 도시를 빚어낸 인종, 불평등, 지방정부의 투자 철회라는 특유의 병리가 모델을 탓하지 않고도 프루이트아이고를 설명할 수 있을지 모른다. 네덜란드는 세인트루이스가 아니다. 네덜란드 사회민주주의에는 미국 도시학자들이 사려 깊은 공공 거버넌스의 모범으로 으레 인용하는 계획 전통과 복지국가, 시민 제도가 있다. 1966년 암스테르담은 베일메르메이르를 짓기 시작했다. CIAM 원칙에 따라 설계된 벌집 모양 블록에 약 1만 3000가구의 아파트가 들어섰다. 고층 타워, 엄격한 기능 분리, 고가도로 위로 올린 자동차, 그 아래 지면에 남겨진 보행자와 자전거. 10년도 안 되어 이곳은 공실과 범죄, 마약 사용으로 얼룩진, 네덜란드에서 가장 낙인찍힌 주택단지가 되었다. 결국 20년 넘게 이어진 재생 과정에서 주택의 절반이 철거되었다.

암스테르담만의 일도 아니었다. 프랑스와 영국은 그런 단지를 국가 프로그램으로 지었다.

파리, 리옹, 마르세유를 둘러싼 빛나는 도시 모델의 외곽 단지, 곧 프랑스의 그랑 앙상블은 1970~1980년대에 걸쳐 수십 곳에서 쇠락했다. 영국의 공공임대 타워 프로그램은 모든 주요 도시로 퍼졌다. 가장 극적인 실패는 공학적인 것이었다. 1968년 5월 뉴엄의 로넌 포인트가 가스 폭발 뒤 부분 붕괴했다. 사회적 실패는 더 느리고 더 광범위했으며, 1980년대부터 2000년대까지 철거로 이어졌다.

미국, 영국, 프랑스, 네덜란드, 브라질은 계획 방식을 공유할 뿐 그 밖에는 사실상 아무것도 공유하지 않는다. 정치 체제, 복지국가, 역사, 토지와 재산을 대하는 방식, 경제 발전 수준, 인종 구성, 그리고 저마다 빠지기 쉬운 사회적 병리가 다 다르다. 그토록 다른 나라들에서 되풀이되는 실패 패턴은 그들이 공유하는 것을 가리킨다.

도시를 읽을 수 있게 만들기

되풀이되는 실패에는 메커니즘이 있다. 제임스 C. 스콧이 거기에 이름을 붙였다. 야심 찬 국가들이 왜 그토록 어김없이 자신이 개선하려던 것을 파괴하는지에 관한, 손꼽히게 명쾌한 설명 가운데 하나에서다.

스콧의 핵심 개념은 가독성이다. 국가 체계가 인구와 토지 이용을 감시하고, 분류하고, 과세하고, 관리하는 능력을 말한다. 국가는 또렷하게 볼 수 있는 것만 통치할 수 있고, 또렷하게 보려면 단순화가 필요하다. 복잡하고 다양하며 서로 겹치는 배치를 지도에 그리고, 세고, 구역을 나누고, 관리할 수 있는 균일한 범주로 줄이는 일이다. 단순화 자체가 재앙은 아니다. 스콧의 설명에서 피해가 생기는 것은 단순화가 합리적 설계에 대한 하이 모더니즘의 신앙, 그것을 강제할 힘을 가진 국가, 그리고 맞서기에는 너무 약한 시민사회와 결합할 때다. 그때 체계를 행정 기구가 읽을 수 있게 만드는 단순화는 범주에 들어맞지 않는 모든 것을 파괴하는 과정이 된다.

포괄적 도시계획은 도시에 바로 그런 가독성을 강요한다. 용도를 구역별로 나누고, 활동마다 지정된 공간을 배정하고, 주민을 주거 유형별로 분류하고, 계획이 예상하지 못했고 지도가 나타낼 수 없는 비공식적 겹침을 없앤다. 그 결과는 통치 기구가 최대한 관리하기 쉬운 도시, 그리고 도시 생활을 돌아가게 하는 비공식적 복잡성에는 적대적인 도시다.

“가독성”이 뜻하지 않는 것

스콧의 용어는 시각적 질서를 가리키는 말로 곧잘 오독된다. 마치 깔끔한 도시는 읽을 수 있고 혼란스러운 도시는 읽을 수 없다는 듯이. 가독성은 행정적 개념이다. 국가 체계가 침투하고, 분류하고, 통제하는 능력이다. 도시는 시각적으로 혼란스러우면서도 행정적으로는 읽힐 수 있다. 자리 잡은 파벨라 상당수는 지도에 그려지고, 집계되고, 공공 설비망에 연결되어 있어서, 물리적 무질서에도 불구하고 국가의 눈에 보인다. 반대로 도시는 완벽하게 질서 정연해 보이면서도 행정적으로는 불투명할 수 있다. 유럽 중세 도시 조직의 상당 부분은 근세 국가가 침투하기가 대단히 어려웠고, 19세기의 근대화 사업이 그것을 표적으로 삼은 데에는 그런 이유도 있었다. 두 속성은 서로 따라 움직이지 않는다. 포괄적 계획이 이루어 내는 것은 행정적 가독성이다. 모든 것을 분류할 수 있고, 모든 것이 제 범주에 들어가 있는 상태다. 그것이 시각적 질서를 낳느냐는, 그것이 일으키는 피해와는 상관없는 부차적 문제다.

가장 먼저 지워지는 것은 비공식 경제다. 자본도 자격도 없는 주민들이 들어서는 입구다. 노점상, 1층 집을 개조한 무허가 수리점, 상업 등록부에 나타나지 않으면서 가계 소득을 대 주는 앞방 장사. 비공식 경제는 공식 범주들 사이의 틈에 존재한다. 용도지역제는 그 틈을 없애고, 그와 함께 그 경제도 없앤다. 바닥 면적이 싼 오래된 건물이 이 생태계를 떠받친다. 새 건물 1층은 감당하지 못해도 오래된 건물 1층은 감당할 수 있는 수리점, 번듯한 가게 자리가 아니라 값싼 방 한 칸이 필요한 지역 단체 같은 것들이다. 낡은 건물을 밀어 버리고 새로 지으면 이런 용도는 다른 갈 곳을 찾지 못한다. 그냥 사라진다.

거리의 사회적 결도 사라지는데, 이것은 세기가 더 어렵다. 그것은 어느 이웃이 사흘째 보이지 않는지 아는 가게 주인 안에, 그리고 동네 정보의 비공식적 결절점(누가 이사 가는지, 누가 배관공을 찾는지, 어느 건물이 관리 문제를 겪고 있는지) 안에 산다. 이런 결절점은 밀도 높은 복합 용도 거리에서는 번성하고 주거 전용 슈퍼블록에서는 힘겨워한다. 이것은 밀도와 다양성, 기능의 비공식적 겹침이 만들어 낸다. 설계로 집어넣을 수는 없다. 공간을 함께 쓰는 사람들이 오랜 시간에 걸쳐 날마다 벌이는 즉흥에서 생겨나기 때문이다.

이 가운데 어느 것도 계획도에 나타나지 않고 구역을 갖지 않으며, 단순히 명시한다고 만들어지지도 않는다. 계획은 가게와 길, 열린 1층으로 그 여지를 마련할 수 있지만, 관계 자체가 명시되는 순간 그것은 다른 무언가, 즉 관리되는 편의시설, 지정된 커뮤니티 공간, “복합 용도 개발”이 되고, 그것을 작동하게 했던 특성을 잃는다.

가독성은 국가의 행정적 이익에 봉사한다. 집계하고, 과세하고, 치안을 유지하고, 다음 개입을 계획하는 일이다. 행정적 가독성에 최적화된 도시는 통치를 위해 지어지고, 20세기의 지배적 계획 전통은 통치하기 쉬운 도시가 살기에도 쉬우리라고 가정했다.

스콧의 눈으로 보면 수페르콰드라 모델은 가독성의 승리였다. 모든 기능이 제 구역으로 분류되었다. 수페르콰드라의 삶이 텅 빈 것은 아니다. 신문 가판대는 만남의 장소이고, 돌아가며 서는 장터에서는 음식과 공예품을 팔며, 밤이면 빈 주차 공간에 푸드트럭이 자리를 편다. 그러나 그런 거래는 왔다가 사라지고, 계획이 막아 낸 것은 동네를 경제적으로 돌아가게 하는 주거와 영업의 상설적 혼합이었다. 그런 활동은 위성도시에 쌓였다. 위성도시는 플라누 필로투의 범주 바깥, 그 손이 닿지 않는 곳에 있었다. 행정 당국은 그곳을 관리하기 어렵다고 여겼고, 주민들은 그곳에서 살길을 꾸릴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거리 생활의 네 가지 조건

스콧의 틀은 파괴의 메커니즘을 설명한다. 제인 제이컵스는 무엇이 파괴되고 있었는지, 그것이 왜 작동했는지, 그리고 왜 그것을 없앤 바로 그 도구로는 다시 지을 수 없는지를 설명한다.

《미국 대도시의 죽음과 삶》은 1961년에 출간되었다. 제이컵스가 목격자로서 썼다는 뜻이다. 그는 그리니치빌리지 허드슨가의 자기 아파트에서, 계획 정통파가 미국 도시들을 실시간으로 뜯어고치는 광경을 지켜보고 있었다. “복잡한 발레” 대목은 보도의 삶을 낯선 사람들 사이의 유기적 조율로 묘사한다. 누가 설계하지 않았는데도 안전과 사회적 정보, 경제 활동을 만들어 내는 조율이다. 그것은 그 거리의 삶에 직접 참여한 사람이 자기 거리에서 써 보낸 보고서다.

그 발레가 작동한 것은 허드슨가가 시간대마다 다른 일을 하는 다른 사람들로 채워졌기 때문이다. 아침 등굣길, 오전 중반의 배달, 점심 인파, 저녁 술집 손님. 이 가운데 무엇도 조율된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주거, 상업, 서비스, 교통 용도의 겹침에서 생겨났고, 그 겹침이 매시간 다른 사람들을 거리로 내보냈다. 결코 비지 않는 거리는 안전하고, 안전한 거리는 더 많은 사람을 끌어들이며, 그래서 거리는 더욱 안전해진다.

제이컵스는 이런 거리 생활을 만들어 내는 네 가지 조건을 꼽았다. 지구는 하나 이상의 주요 기능을 수행해 하루 중 서로 다른 시간에 보행 인구를 만들어 내야 한다. 블록은 짧아야 한다. 그래야 다양한 경로가 생기고, 밀도 높은 거리에 결을 주는 길모퉁이 교차로가 생긴다. 지구에는 연대가 서로 다른 건물들이 있어야 한다. 특히 오래된 건물이다. 바닥 면적이 싸서, 신축 건물의 임대료를 감당할 수 없는 용도를 가능하게 하는 건물이다. 수리점, 공동체 부엌, 예술가의 작업실 같은 것들이다. 넷째, 출퇴근 시간 바깥에도 보행 인구를 유지할 만큼 충분한 인구 밀도, 그곳에 사는 사람들까지 포함한 밀도가 있어야 한다.

네 조건은 서로 맞물려 있다. 하나가 손상되면 나머지도 약해진다. 단일 용도의 유클리드식 용도지역제는 첫 번째 조건을 정면으로 친다. 그와 함께 들어온 더 넓은 계획 체제는 오래된 건물을 밀어 버리고 밀도에 상한을 씌우며 나머지 조건까지 공격했다.

주거 구역은 주민이 도착하고 떠날 때만 보행 인구를 만든다. 상업 지구는 영업시간에 가장 붐빈다. 둘을 충분히 멀리 떨어진 별개의 지구로 밀어내면 교차 이용의 상당 부분이 사라진다. 퇴근길에 카페에 들를 수도 있었을 주민, 서점을 기웃거릴 수도 있었을 회사원이 사라진다. 유클리드식 용도지역제 위에 세워진 미국 지자체 대부분에서는, 위층에 집이 있는 가게 하나도 예외 허가나 용도지역 변경 없이는 주거지역에 들어설 수 없다. 제이컵스의 살아 있는 거리가 지역 인허가 문제로 바뀌는 것이다.

“유클리드식 용도지역제”라는 이름은 오하이오주 유클리드에서 왔다. 미국 전역에 용도 분리의 법적 틀을 세운 1926년 연방대법원 사건 Village of Euclid v. Ambler Realty Co.의 무대다. 다수의견은 생활방해 법리의 논리를 빌렸다. 한 장소에서 허용되는 용도라도 다른 장소에서는 배제할 수 있고, 상업과 공업, 아파트를 주거지역에서 배제하는 것은 그것들을 그 자체로 생활방해라고 선언하지 않더라도 경찰권의 정당한 행사라는 것이다. 이로써 지자체가 배제할 수 있게 된 것은, 35년 뒤 제이컵스가 도시 활력의 원천으로 꼽게 될 바로 그 복합 용도 활동이었다. 전국의 지자체가 그 세기의 남은 기간을 용도 분리를 지역 조례에 써넣는 데 보냈다.

1926년의 법적 토대

Village of Euclid v. Ambler Realty Co. 사건에서 서덜랜드 대법관의 다수의견은 용도지역 배제가 왜 합리적인지 설명하려고 농가 마당의 비유를 끌어왔다. “생활방해란 그저 잘못된 자리에 놓인 옳은 것일 수 있다. 헛간 마당이 아니라 응접실에 들어온 돼지처럼.” 주거지역 안의 상업 용도와 아파트 용도가 바로 응접실의 돼지였다. 주거 구역은 그것들로부터 보호받아야 했다.

실제 결과는 전후 미국 지자체 대부분의 주거지역에서 복합 용도 개발이 신축 시 용도지역 위반이 되었다는 것이다. 이것은 제대로 작동한 전쟁 이전 미국과 유럽 도시 거의 모두, 그리고 20세기 이전 인류 역사의 거의 모든 도시를 떠받친 형태였다. 1층에 가게를 두고 위층에 아파트를 둔 건물, 수천 년 동안 가장 기본적이었던 도시 건축 형태를 지으려면, 미국 도시 주거지역 대부분에서 예외 허가나 특별지구 지정이 필요하다. 가장 오래된 도시 형태를 가로막은 이 법적 장벽은 미국 도시가 지금의 모습이 된 이유 가운데 하나다.

자동차 의존이 뒤따른다. 용도가 차로 다녀야 할 만큼 먼 거리로 갈라져, 가장 가까운 식료품점이 보도 없는 도로를 따라 가장 가까운 집에서 2마일 떨어져 있다면, 그 사이를 오가려면 차가 있어야 한다. 용도지역제가 환경을 만들었고, 자동차는 그 환경에 대한 적응이었다. 척 마론의 주장도 그렇다. 전후 미국의 개발 패턴은 사람들이 더 넓은 선택지 가운데서 자유롭게 골랐을 것이 아니라, 규제 틀이 버텨 낼 수 있게 해 준 것을 반영했다는 것이다.

제이컵스의 운동은 모지스의 사업 두 건을 무산시키는 데 힘을 보탰다. 처음에는 워싱턴스퀘어를 관통하는 도로, 다음에는 로어맨해튼 고속도로였다. 제이컵스가 지키려던 것은 하나의 생태계였다. 빌리지가 작동한 것은 오래되었기 때문이다. 바닥 면적이 싼 오래된 건물들, 짧은 블록과 여러 갈래 길을 갖춘 오래된 가로 패턴, 한 번도 정리되어 사라지지 않은 채 수십 년간 쌓인 복합 용도. 이런 조건은 신축 건물에 명세로 집어넣을 수 없다. 규제 환경이 그것들이 시간을 두고 자라도록 허용해야 한다.

ADVERTISEMENT

하향식 계획이 성공할 때

포괄적 계획이 앞에서 설명한 방식으로 고장 나 있다면, 오스만의 파리와 싱가포르는 설명이 필요하다. 둘 다 위에서 강요되었고 둘 다 성공했기 때문이다.

나폴레옹 3세 치하의 센 도지사 오스만 남작은 1853년부터 1870년 사이에, 일부 추산으로는 파리 주택의 약 60%를 어떤 식으로든 바꿔 놓았다. 그는 중세 동네들을 허물고, 기존 도시 조직을 꿰뚫는 대로를 내고, 도시의 광대한 구역에 걸쳐 건물 높이와 파사드를 규격화했으며, 공원과 근대적 하수도, 깨끗한 상수도를 더했다. 주민을 몰아낸 규모는 모지스가 오히려 절제해 보일 정도였다. 임대료가 오르고 옛 구역이 헐리자 중세 도심의 가난한 사람들은 대거 도시 가장자리로 밀려났다. 이것은 제국의 권위를 등에 업고 민주적 책임 없이 실행된, 최대 강도의 포괄적 하향식 계획이었다.

수백만 명이 파리에 살기를 선택하고, 제이컵스가 도시 활력의 징표로 꼽은 거리 생활은 오스만식 도시 조직 곳곳에 일상의 평범한 모습으로 존재한다. 밀도 높고, 경제적으로 뒤섞여 있고, 여러 시간대에 걸쳐 활발하며, 제이컵스가 발레라 부른 비공식적 조율을 낳는 거리다.

오스만은 거리 생활을 작동하게 하는 것을 갈아 치우지 않고 거리 규모에서 다시 설계했다. 대로변 건물들은 인간적 척도의 균일한 처마선을 지켰고, 거의 모든 블록에 1층 상업 공간이 있었다. 오스만식 건물 유형은 밀도 높은 복합 용도 형태다. 거리 층에는 가게와 서비스, 위층에는 아파트, 그리고 여러 시간대에 보행 인구를 만들어 내는 기능의 겹침. 그는 도시의 생태를 파괴하지 않고 도시에 행정적 가독성을 부과했다. 주요 축 바깥의 대부분 지역에서 필지 구조는 살아남았다. 용도는 뒤섞인 채로, 밀도는 유지된 채로 남았고, 그래서 거리는 계속 작동했다.

성공담이 흔히 빠뜨리는 것은 정치다. 발터 베냐민은 오스만 공사의 진짜 목적이 내전에 맞서 도시를 지키는 것이었다고 주장했다. 바리케이드를 치기에는 너무 넓은 대로, 1848년을 기억하는 정권이 놓은 길이었다는 것이다. 이 계획은 국가의 가독성 이익에 숨김없이 봉사했고, 노동계급 파리 시민들을 도심에서 변두리로 대거 몰아낸 일은 그 문제에 아무런 발언권도 없던 사람들이 치른 대가였다.

오스만의 긴 그림자

1860년대 파리 중심부에서 치솟는 집값에 밀려난 노동계급 주민들은 1860년에 편입된 외곽 구로, 그리고 갈수록 더 그 너머의 공업 교외로 옮겨 갔다. 이후 한 세기 반 동안 프랑스 수도의 사회 지리를 규정하게 될 고리였다.

20세기 프랑스가 그랑 앙상블을 지은 곳이 바로 이 주변부 지리였다. 1950년대 말부터 빛나는 도시 모델에 따라 건설된 외곽 주택단지들이다. 파리시 공공주택청이 시 경계 밖으로 파리 시민을 재정착시키려고 라쿠르뇌브에 지은 시테 데 4000, 툴루즈의 시테 드 라 레느리, 2005년 폭동 때 불탄 파리 주변의 거대한 단지들. 이 단지들은 부분적으로 오스만이 만든 사회적 지형 위에 지어졌다. 경제 중심지와 공간적으로 분리되고, 거리 차원의 상업과 제도적 기반, 도시 생활을 경제적으로 자립하게 하는 복합 용도 조직이 결여된 노동계급 주변부였다.

오스만의 이름난 성공은, 그의 후계자들이 전후 유럽에서 가장 문제 많은 주택 프로그램 가운데 하나를 짓게 될 도시 지리를 만드는 데 한몫했다. 연대기는 한 세기에 걸쳐 있다. 1860년대의 축출, 1920년대의 모더니즘 계획안, 1930년대의 빛나는 도시 이론, 1960년대의 타워 건설, 2005년의 폭동.

1960년에 설립된 싱가포르 주택개발청(HDB)은 현재 싱가포르 거주 가구의 약 77%에 집을 제공한다. 어느 민주국가에서도 유례가 없는 공공주택 공급 비율이다. HDB는 첫 3년 동안 2만 1000가구가 넘는 아파트를 지어, 민간 개발로는 그 속도와 규모로 감당할 능력이 없던 극심한 주택난을 해소했다.

이것을 가능하게 한 조건은 다른 곳에 옮겨 심을 수 없다. 싱가포르는 물러날 농촌 배후지가 없는 도시국가다. 1966년 토지수용법은 국가가 법적으로 확정적인 효력을 갖는 선언 하나로 토지를 수용할 수 있게 했다. 소유자는 보상에 대해서는 이의를 제기할 수 있었지만 수용 자체는 악의 같은 제한된 사유가 있을 때만 다툴 수 있었고, 2007년까지 보상은 현재 시장가치가 아니라 과거의 고정된 평가 기준일에 묶여 있었다. 인민행동당은 수십 년 동안 주택 결정에서 이렇다 할 선거상의 반대 없이 통치했다.

싱가포르의 HDB 단지는 빛나는 도시식 타워와도 다르다. 호커 센터, 재래시장, 공동체 공간, 그리고 보이드 데크가 있다. 보이드 데크는 주거동 아래 1층을 일부러 비워 공동체 용도로 남겨 둔 공간으로, 장례식과 결혼 피로연, 비공식적 모임에 쓰인다. 호커 센터 자체도 가독성 프로젝트였다. 1968년과 1969년에 정부는 거리 노점상들을 등록하고 면허를 주었으며, 1971년부터 그들을 도로에서 전용 센터로 옮기기 시작했다. 그러나 센터 덕분에 값싼 음식과 소상인이 주거동에서 걸어갈 만한 거리에 남았고, 1층은 장사와 모임에 열려 있었다.

이렇게 읽으면 싱가포르의 공공주택은 부분적으로, 다른 곳에서 실패한 모델에서 벗어났기 때문에 성공했다. 권위주의적 조건이 대규모 개입을 가능하게 했고, 관리된 형태로나마 일상의 장사와 모임을 지면에 남겨 둔 것이 그곳을 살 만한 곳으로 만들었다.

하향식 계획이 성공한 곳에서 그 성공은, 지배적 계획 전통이 다른 곳에서 파괴하고 있던 도시의 복잡성을 어떤 형태로든 보존한 데서 나왔다.

계획이 할 수 있는 일과 할 수 없는 일

제이컵스가 반대한 것은 특정한 계획 도구들이었다. 용도를 분리하고, 오래된 건물을 밀어 버리고, 밀도를 억누른 뒤에 왜 거리가 죽었는지 어리둥절해한 포괄적 용도지역 체제였다. 제이컵스의 적극적 주장은 조건에 관한 것이었다. 도시의 복잡성이 쌓일 수 있는 규제 환경을 만들고, 행정 논리가 거기에 들이대려는 단순화로부터 그것을 보호하고, 그 밖에는 그대로 내버려 두라는 것이다.

계획 개입에는 두 가지 방식이 있다. 설계는 도시가 어떠해야 한다는 개념을 바탕으로 부지에 형태를 부과하고, 그 개념을 실제로 지어 내는 것이다. 브라질리아와 프루이트아이고, 크로스브롱크스 고속도로가 그랬다. 육성은 도시의 복잡성이 자랄 수 있는 조건을 찾아내 보호하는 것이다. 복합 용도를 허용하고, 주거 건물에 1층 상업 활동을 의무화하고, 오래된 건물을 철거로부터 보호하고, 밀도를 제한하는 대신 의무화하는 일이다. 육성도 설계 못지않게 강력할 수 있지만, 그것은 조건을 정하고 형태는 그 위에 짓는 사람들에게 맡긴다.

교정의 움직임은 단편적으로나마 보인다. “미싱 미들(missing middle)” 주택 운동과 형태 기반 용도지역 조례는 20세기가 해체한 것을 되살리려는 시도다. 이들은 거리와 블록 규모에서 작동한다. 도시의 복잡성을 설계가 아니라 육성할 수 있는 유일한 규모다.

대규모 인프라(대중교통망, 하수도, 홍수 방어, 전력망, 기후 적응)에는 하향식 조정과 공공 투자가 필요하고, 점진적 도시주의를 아무리 쌓아도 지하철망은 생기지 않는다. 그러면 더 좁은 주장이 남는다. 국가는 정착지를 짓는 일을 멈춰야 한다. 정착지에는 오랜 세월에 걸친 수많은 조율되지 않은 결정에서만 자라나는, 비공식적이고 켜켜이 쌓이며 시간이 축적한 복잡성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브라질리아는 그 주장의 두 반쪽을 모두 보여 준다. 인프라는 눈부셨다. 상수도는 작동했고, 도로는 제 기능을 했으며, 시민 축은 설계된 그대로의 건축적 선언을 정확히 해냈다. 정착지, 즉 사람들이 경제적·사회적 삶을 살고 가족을 꾸리고 일자리를 찾고 동네를 일구기로 되어 있던 곳은 대부분 그 바깥에서 자라났다. 플라누 필로투가 셈에 넣는 것을 잊은 사람들이 상당 부분 손수 지은, 소박하게 계획된 위성도시들에서였다.

세일란지아는 1971년 3월 27일 Campanha de Erradicação de Invasões, 즉 무단 점유 근절 캠페인이 세웠다. 플라누 필로투 경계 주변에 쌓인 비공식 정착지들을 철거하고 주민을 더 먼 곳으로 옮기는 정부 사업이었다. 이름은 관료적인 합성어다. 캠페인의 포르투갈어 약자 CEI에 땅을 뜻하는 -lândia를 붙였다.

세일란지아에는 현재 약 29만 명이 산다. 무질서하게 뻗어 나간 파생 지역 솔나센치가 별도의 행정구역으로 떨어져 나간 뒤에도, 연방구에서 인구가 가장 많은 행정구역이며 플라누 필로투 전체보다 크다. 이곳에는 플라누 필로투가 막도록 설계된 것들, 즉 상업과 주거가 뒤섞인 조직, 거리 차원의 경제 활동, 밀도와 다양성이 있다. 세일란지아가 이것들을 키운 것은 계획이 소박했기 때문이다. 이곳을 설계한 노바캅 건축가 네이 가브리엘는 학교와 교회, 상점을 위한 중앙의 띠 주위로 개별 주택 필지들로 이루어진 근린 단위를 배치했고, 모퉁이 필지는 옛 정착지에서 장사를 하던 가족들에게 돌아갔다. 그 뒤 주민들은 반세기 동안 그 위에 덧지었다. 세놓을 뒷마당 집, 덧올린 층, 가게와 미용실로 바뀐 앞방. 그렇게 플라누 필로투가 떼어 놓았던 주거와 장사가 한데 섞였다.

비공식 도시를 근절하려고 만든 사업이 또 하나의 도시를 구획했고, 그 주민들은 자기들 방식대로 그 도시를 돌아가게 만들었다.

관련 기사

더 읽을거리

아마존 어소시에이트로서 Eikleaf는 적격 구매를 통해 수익을 얻습니다. 아래 도서 링크는 제휴 링크로, 이를 통해 구매하시면 추가 비용 없이 소정의 수수료를 받을 수 있습니다.

  • 미국 대도시의 죽음과 삶 — Jane Jacobs (2010). 글이 거리의 ‘복잡한 발레’를 인용한 책으로, 마스터플랜 없이 생겨난 복합 용도, 짧은 블록, 밀도를 옹호한 제이컵스의 주장을 담았다.
  • 국가처럼 보기 — James C. Scott (2010). 글이 사용하는 ‘가독성’ 개념의 출처로, 하이모더니즘 계획과 브라질리아를 다룬 장들은 설계된 도시가 장소를 살아 있게 하는 요소를 왜 놓치는지 설명한다.
  • The Power Broker: Robert Moses and the Fall of New York — Robert A. Caro (1974). 글이 다시 들려주는 이스트 트레몬트의 ‘1마일’ 장이 실린 퓰리처상 수상 전기로, 한 계획가가 뉴욕을 어떻게 바꿔 놓았는지 보여 준다.

추천 영상

이 글 인용하기
Lena Martin. “도시는 왜 계획가의 의도대로 돌아가지 않는가, 그리고 최고의 도시는 왜 처음부터 계획된 적이 없는가.” Eikleaf, 2026년 6월 2일, 업데이트 2026년 10월 25일. https://www.eikleaf.com/ko/why-cities-dont-work-the-way-their-planners-intended-and-why-the-best-ones-were-never-planned-at-all/

생성형 AI 고지

이 페이지의 일부 내용은 생성형 AI의 도움을 받아 생성 및/또는 편집되었습니다.

미디어

Stavanger bykart – kart over Stavanger – Stavanger kart (City map with transport and city facilities) – Wikipedia

주요 출처 및 참고문헌

Robert A. Caro, The Power Broker: Robert Moses and the Fall of New York, Alfred A. Knopf, 1974 (chapter 37, “One Mile”). Primary source for the East Tremont narrative, the alternative Crotona Park alignment and displacement figures.

TriplePundit, “Bronx Highway May Get Capped: Here’s Why It Matters,” 2021. Quotes Caro on Moses’s route choice; six buildings and 19 families on the alternative alignment against 159 buildings on Moses’s line; some 1,530 families displaced. https://triplepundit.com/2021/bronx-highway-capped/

James C. Scott, Seeing Like a State: How Certain Schemes to Improve the Human Condition Have Failed, Yale University Press, 1998. Primary source for the legibility framework and its application to urban planning and high-modernist design. https://yalebooks.yale.edu/book/9780300078152/seeing-like-a-state/

Jane Jacobs, The Death and Life of Great American Cities, Random House, 1961. Primary source for the “intricate ballet” passage and the four conditions required for living streets.

The Guardian, “Jane Jacobs” (obituary), April 28, 2006. Source for Jacobs’s campaigns against Moses’s Washington Square road and the Lower Manhattan Expressway. https://www.theguardian.com/society/2006/apr/28/communities.guardianobituaries

James Holston, The Modernist City: An Anthropological Critique of Brasília, University of Chicago Press, 1989. Source for the structural social critique of the Pilot Plan.

UNESCO World Heritage Centre, “Brasília,” inscribed 1987. Source for the inscription, its criteria, and the Brazilian legal protection of the Pilot Plan. https://whc.unesco.org/en/list/445

Agência Brasil / EBC, “Censo populacional de 1959 revela quem eram os candangos que construíram Brasília,” April 21, 2010. Source for the May 1959 experimental census figure of approximately 64,000 people in the future Federal District and its sex ratio (192 men per 100 women). https://memoria.ebc.com.br/agenciabrasil/noticia/2010-04-21/censo-populacional-de-1959-revela-quem-eram-os-candangos-que-construiram-brasilia

Instituto de Pesquisa e Estatística do Distrito Federal (IPEDF), Atlas do Distrito Federal, “Territorial division.” Source for the formation of the satellite towns and the Federal District’s administrative regions. https://atlas.ipe.df.gov.br/en/?p=1129

Correio Braziliense, November 1, 2022, p. A17. Source for Lúcio Costa’s local-commerce strip in each entrequadra. https://edicao.correiobraziliense.com.br/correiobraziliense/2022/11/01/1405ef/pdf/A17-CID-0111-DIG.pdf

Instituto do Patrimônio Histórico e Artístico Nacional (IPHAN), Superintendência do Distrito Federal, Superquadra de Brasília: preservando um lugar de viver, Brasília, 2015. Source for the entrequadras (local commerce, recreation, shared facilities) between the superquadras and the free pedestrian movement under the pilotis. Archived copy of IPHAN’s own PDF (the original portal link now redirects to the IPHAN home page): https://web.archive.org/web/20260517082231/http://portal.iphan.gov.br/uploads/ckfinder/arquivos/cartilha_unidade_vizinhanc%CC%A7a_iphan_df.pdf

Frederico de Holanda, “Inclusão e exclusão em Brasília,” urbe. Revista Brasileira de Gestão Urbana 12, 2020. Source for everyday social life and itinerant commerce in the superquadras (newsstands, rotating fairs, food trucks). https://www.scielo.br/j/urbe/a/RDfYDGxcZnQypMgGkTJ8t9n/?lang=pt

Governo do Distrito Federal, Decreto nº 11.079, April 21, 1988. Source for the heritage listing of Vila Planalto. https://www.sinj.df.gov.br/sinj/Norma/16017/Decreto_11079_21_04_1988.html

Jornal de Brasília, “Uma vila para o Planalto.” Source for Vila Planalto’s origin in the construction companies’ camps near the Praça dos Três Poderes. https://jornaldebrasilia.com.br/60anos/uma-vila-para-o-planalto/

Instituto de Pesquisa e Estatística do Distrito Federal (IPEDF), Pesquisa Distrital por Amostra de Domicílios Ampliada (PDAD-A) 2024, released 2025; reported in Jornal de Brasília, March 21, 2025, and Metrópoles, February 24, 2025. Source for the Federal District, Pilot Plan and Ceilândia population figures. https://jornaldebrasilia.com.br/brasilia/ceilandia-continua-sendo-a-cidade-com-maior-numero-de-moradores-segundo-nova-pdad-ampliada/ · https://www.metropoles.com/distrito-federal/casa-propria-cachorro-e-streaming-veja-perfil-de-quem-mora-no-df

Jornal de Brasília, “Ceilândia comemora 45 anos,” 2016. Source for Ceilândia’s founding by the Campanha de Erradicação de Invasões and the more than 17,000 lots surveyed for it. https://jornaldebrasilia.com.br/brasilia/ceilandia-comemora-45-anos/

Elane Peixoto, Adriana Mara Vaz de Oliveira and Alana Silva Waldvogel, “As casas de Ceilândia,” Revista Brasileira de Estudos Urbanos e Regionais 23, 2021 (DOI 10.22296/2317-1529.rbeur.202104pt). Source for Ney Gabriel’s plan for Ceilândia (neighbourhood units with institutional strips for schools, churches and shops), the corner lots allocated to former traders, and residents’ later extensions, rentals and shopfronts. https://www.scielo.br/j/rbeur/a/GK3bXXxKKCspyM8SSpdbkxJ/

Instituto Brasileiro de Geografia e Estatística (IBGE), “Favelas e Comunidades Urbanas,” territorial typologies, 2022 Census. Source for favelas as census-mapped territories defined by insecure tenure. https://www.ibge.gov.br/geociencias/organizacao-do-territorio/tipologias-do-territorio/15788

University of Missouri–St. Louis, “Pruitt-Igoe and the End of Modernity.” Source for Pruitt-Igoe’s opening (1954), completion (1956), first demolition (March 1972) and final clearance (1976). https://www.umsl.edu/%7Ekeelr/010/pruitt-igoe.htm

U.S. Census Bureau, “Population of the 100 Largest Cities and Other Urban Places in the United States: 1790 to 1990” (Working Paper 27), 1998. Source for St. Louis’s 1950–1970 population figures. https://www.census.gov/library/working-papers/1998/demo/POP-twps0027.html

9/11 Memorial & Museum, “Today Marks 42nd Anniversary of WTC Dedication.” Source for the April 1973 dedication of the World Trade Center. https://www.911memorial.org/taxonomy/term/6251

The Pruitt-Igoe Myth, documentary film, directed by Chad Freidrichs, First Run Features, 2011. Source for the revisionist fiscal-demographic argument regarding Pruitt-Igoe’s failure, including the dependence of maintenance on tenant rents.

Katharine G. Bristol, “The Pruitt-Igoe Myth,” Journal of Architectural Education 44, no. 3 (1991): 163–171. Source for the federal cost limits on Pruitt-Igoe, the eliminated amenities, the architects’ original mixed-height proposal, and the dependence of maintenance on tenant rents. https://doi.org/10.1080/10464883.1991.11102687

99% Invisible, “Bijlmer (City of the Future, Part 1).” Source for the Bijlmermeer’s layout, with raised roads for cars and the ground level for pedestrians and cyclists. https://99percentinvisible.org/episode/bijlmer-city-future-part-1/

Aquilué, I. and Roca, E., “Bijlmermeer: change and hybridization in the city of the future,” ZARCH, 2019 (DOI 10.26754/ojs_zarch/zarch.2019123388). Source for the Bijlmermeer’s scale, stigma and partial demolition. https://papiro.unizar.es/ojs/index.php/zarch/article/view/3388

Centraal Bureau voor de Statistiek (CBS), “1966 Uittocht uit de grootste steden,” 2025. Source for Amsterdam’s population fall from about 872,000 in 1959 to about 676,000 in 1985 as families left for the suburbs. https://www.cbs.nl/nl-nl/longread/diversen/2025/tijdlijn-woningvoorraad/1966-uittocht-uit-de-grootste-steden

BBC On This Day, “16 May 1968: Three killed as tower block collapses.” Source for the Ronan Point collapse. http://news.bbc.co.uk/onthisday/hi/dates/stories/may/16/newsid_2514000/2514277.stm

Village of Euclid v. Ambler Realty Co., 272 U.S. 365 (1926). United States Supreme Court. Primary legal source establishing use-separation zoning as a constitutional exercise of police power, and source of the “pig in the parlor” quotation. https://www.law.cornell.edu/supremecourt/text/272/365

Chuck Marohn, Strong Towns: A Bottom-Up Revolution to Rebuild American Prosperity, Wiley, 2019. Source for the structural argument that car-dependence is produced by single-use zoning rather than consumer preference. https://www.wiley.com/en-us/Strong+Towns%3A+A+Bottom-Up+Revolution+to+Rebuild+American+Prosperity-p-9781119564812

David H. Pinkney, Napoleon III and the Rebuilding of Paris, Princeton University Press, 1958. Foundational historical scholarship on the Haussmann renovation.

Andrew Boyd, “Georges-Eugene Haussmann,” The Engines of Our Ingenuity, Episode 2523, University of Houston. Source for the estimate that Haussmann transformed, by some estimates, about 60 percent of Parisian dwellings and the displacement of the poor to the city’s edges. https://engines.egr.uh.edu/episode/2523

Walter Benjamin, The Arcades Project, trans. Howard Eiland and Kevin McLaughlin, Harvard University Press, 1999. Source for Benjamin’s reading of Haussmann’s boulevards as a defence against barricades and civil war.

Housing & Development Board (HDB), Singapore, “Our History.” Source for HDB’s establishment in 1960 and the more than 21,000 flats built in its first three years. https://www.hdb.gov.sg/about-us/our-story/our-history

Singapore Department of Statistics, “Resident Households — Latest Data.” Source for the share of resident households living in HDB flats (77.2 percent in 2025). https://www.singstat.gov.sg/find-data/explore-data-themes/households/resident-households/latest-news-data

Singapore, Land Acquisition Act, 1966. Legislation enabling compulsory purchase of land for public housing development; section 5 declarations are conclusive evidence that land is needed, and appeals lie against compensation awards. https://sso.agc.gov.sg/Act/LAA1966

Ministry of Law, Singapore, Appeals Board (Land Acquisition), “Decision by the Board.” Source for compensation appeals and the market-value basis for acquisitions from February 12, 2007. https://ab.mlaw.gov.sg/appeals-process/decision-by-the-board/

Teng Fuh Holdings Pte Ltd v Collector of Land Revenue, [2006] SGHC 93. High Court of Singapore. Source for the limited judicial review of land acquisitions, including for bad faith, despite the conclusive-evidence provision of section 5(3). https://www.elitigation.sg/gd/s/2006_SGHC_93

Ryan Kueh, “Hawker Matters: A History of Hawking in Singapore,” Roots (National Heritage Board), 2025. Source for the 1973 hawker licensing drive and the building of hawker centres through the 1970s. https://www.roots.gov.sg/MUSE/articles/Hawker-Matters-A-History-of-Hawking-in-Singapore

National Heritage Board, “The History and Evolution of Singapore’s Hawker Culture,” Roots. Source for the islandwide registration and temporary licensing of street hawkers in 1968 and 1969, and their relocation into markets and hawker centres from 1971. https://www.roots.gov.sg/stories-landing/stories/Serving-Up-a-Legacy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