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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5년 막스 베버는 유교와 도교에 관한 연구서를 펴냈다. 영어권에서는 The Religion of China(중국의 종교)라는 제목으로 알려진 책이다. 베버는 이 책에서 근대 자본주의가 왜 중국에서 자생적으로 생겨나지 않았는지를 설명하는 데 유교 윤리가 한몫했다고 체계적으로, 그리고 길게 논증했다. 유교의 합리주의는 세계를 지배하는 것이 아니라 세계에 순응하는 것을 뜻했다. 인간의 이상은 부지런한 성자가 아니라 교양 있는 군자였다. 생산적 금욕으로 바뀔 예정설의 불안도, 부의 축적을 거룩하게 만들어 줄 신의 소명이라는 개념도 없었다. 베버 자신은 신중한 단서를 하나 달았다. 일단 자본주의가 존재하게 되면 중국인은 아마 일본인보다도 더 능숙하게 그것을 받아들일 것이라고. 독자들은 그 단서를 버렸다. 20세기의 상당 기간 동안 그의 책은 유교 문화가 자본주의에 맞지 않는다는 증거로 인용되었다.

그런데 한국이 30년 동안 해마다 9퍼센트씩 성장했다. 대만도 그만큼 성장했다. 경제사에서 가장 빠른 축에 드는 지속 성장률이다. 두 나라가 정점에 있던 수십 년만 놓고 보면, 프로테스탄트 유럽이 일찍이 이룬 그 어떤 성장보다도 빨랐다.

대중화된 베버는 내기를 걸었고, 그 내기에서 졌다. 증거가 보여 주는 것은 그의 옹호자에게도 비판자에게도 껄끄럽다.

테제, 그리고 그것이 옳아 보였던 이유

1904~1905년에 “Die protestantische Ethik und der ‚Geist‘ des Kapitalismus”(프로테스탄티즘의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이라는 제목으로 발표된 베버의 논증은, 그보다 오래 살아남은 범퍼 스티커식 요약보다 훨씬 정밀했다. “프로테스탄트 노동 윤리”라는 말은 프로테스탄트가 그저 더 열심히 일했다는 뜻으로 들린다. 베버의 논증은 그보다 좁고, 더 기묘했다. 그 축은 칼뱅주의의 예정설이었다. 신은 창조 이전에 이미 선택받은 자들을 정해 두었고, 구원은 노력으로 얻을 수 없었다. 그런데도 신자들은 자신이 구원받은 무리에 속한다는 심리적 확신이 필요했고, 어떤 행위도 그 확신을 직접 가져다줄 수는 없었다. 베버의 설명에 따르면 여기서 일종의 전위가 일어났다. 세속적 성공을 은총의 표지로 읽을 수 있게 된 것이다. 소비보다 재투자를, 향락보다 규율을 앞세우는 체계적인 이윤 추구는 종교적 의미를 띤 행동이 되었다. 그런 행동 자체가 거룩한 것은 아니었지만, 자신이 선택받은 자일지도 모른다는 신호로 읽힐 수는 있었다.

토대에 금을 낸 것은 이미 루터였다. 그는 성경을 번역하면서(베버에 따르면 집회서에서 처음으로) 사람의 일상적인 일을 가리키는 낱말을 “소명”을 뜻하는 Beruf(베루프)로 옮겼고, 이로써 세속의 직업을 신의 부르심에 용접해 붙였다. 가톨릭 전통은 수도원을 계산대보다 높은 자리에 두었다. 루터는 그 서열을 없앴다. 농부도, 상인도, 직조공도 저마다 어느 수도사의 소명 못지않게 참된 소명에 응답하는 셈이 되었다. 평범한 경제 활동이 영적 무게를 얻었다. 베버의 설명에 따르면 가톨릭의 관행이 그 무게를 가장 높은 형태로 부여해 온 곳은 수도원이었다. 베버가 들려주는 이야기 속에서는 단 한 번의 번역 행위가 상업과 구원의 관계를 다시 썼다.

베버는 프로테스탄티즘이 자본주의를 발명했다고 주장하지 않았다. 그가 주장한 것은 칼뱅주의 신학이 체계적인 축적을 도덕적으로 정합적인 일로 만드는 심리적 전제 조건을 제공했다는 것, 그리하여 이윤 추구를 죄나 노골적인 탐욕에서 선택받았다는 증거로 바꾸어 놓았다는 것이다. 이렇게 읽으면 자수성가한 인간은 신학적 인물이 된다.

게다가 데이터도 그의 편인 듯했다. 1990년 국제달러 기준의 역사적 소득 추정치를 보면, 1850년 프로테스탄트 국가인 영국과 네덜란드는 1인당 약 2,300달러로 유럽에서 앞서 있었고, 가톨릭 국가인 스페인과 포르투갈은 1,000달러 안팎에 머물렀다. 1900년에 영국은 약 4,500달러에 이르렀고, 스페인은 1,800달러였다. 패턴이 완벽하게 깔끔했던 적은 없다. 가톨릭 국가인 벨기에와 프랑스는 프로테스탄트 국가인 스웨덴과 노르웨이보다 부유했다. 그래도 대륙을 이끈 것은 프로테스탄트 북서부였다. 두 교파가 하나의 법체계 아래 나란히 살던 프로이센 안에서도 프로테스탄트 군(郡)들이 눈에 띄게 더 부유했다. 스위스 서부에서는 한때 균질했던 지역이 16세기에 교파를 따라 갈라졌다. 그 프로테스탄트 쪽은 지금도 여가를 줄이고 재분배를 줄이는 쪽에 표를 던지며, 1인당 소득도 더 높다. 베버는 실재하는 패턴을 찾아냈다. 적어도 그가 들여다본 곳들에서는.

베버가 보기에 가톨릭에 없었던 것

베버의 테제에는 긍정적 사례만큼이나 부정적 사례가 필요했다. 그가 읽기에 가톨릭 신학은 축적과 다른 관계를 낳았다. 연옥이 있으니 죄는 죽은 뒤에도 씻을 수 있었고, 그만큼 이승에서의 행실로 은총을 입증해야 한다는 압박은 약해졌다. 고해성사는 거듭 사죄를 베풀어, 칼뱅주의가 요구한 끝없는 자기 감시를 누그러뜨렸다. 그리고 수도원이 거룩한 노동의 특권적 장소로서 시장과 떨어져 있었기에, 그의 견해로는 평범한 평신도의 일은 영혼의 문제에서 하나의 방법적 생활 체계라기보다 낱낱의 선행을 이어 놓은 것으로 주로 여겨졌다. 베버는 프란치스코회 제3회원 같은 예외를 인정했지만, 고해와 면벌부가 세속 안에서의 규율 있는 삶을 향한 압박을 무디게 했다고 보았다. 가톨릭 신자도 경건하면서 부유할 수 있었다. 그러나 베버의 도식에서 부는 구원에 관해 아무것도 증명하지 못했다. 베버에게는 바로 그 부재가 핵심이었다. 세속을 다스림으로써 선택받았음을 입증해야 한다는 불안한 욕구가 없었기에, 가톨릭 문화에는 칼뱅주의 자본주의를 평범한 상업과 구별 짓는 심리적 엔진이 없었다고 그는 주장했다.

데이터는 들어맞는다, 어느 지점까지는

한 세기에 걸친 연구가 베버의 상관관계를 혹독하게 검증해 왔다. 가장 잘 알려진 검증은 그것을 확인해 주는 듯했다.

자샤 베커와 루트거 뵈스만은 19세기 프로이센의 군 단위 데이터로 오늘날 이 분야의 토대가 된 검증을 수행했다. 하나의 정치·법 체계 안에서 종교가 유달리 뒤섞여 있었던 덕분에, 이 데이터는 베버로서는 상상할 수 없었던 세밀함을 지닌다. 프로테스탄트 군들은 경제적으로 앞서 있었다. 제조업과 서비스업 부문이 더 컸고 소득도 더 높았다. 이는 촘촘한 지리적 해상도로 측정되었고, 종교라는 변수를 교란 요인들로부터 떼어 내는 통제도 거쳤다.

그들의 가장 날카로운 발견은 교육에 관한 것이었다. 1871년 전원이 프로테스탄트인 군의 문해율은 전원이 가톨릭인 군보다 약 10퍼센트포인트 높았다. 새로 발굴한 1816년 데이터, 곧 프로이센에 산업화가 뿌리내리기 전의 데이터를 활용한 후속 연구에서는 전원이 프로테스탄트인 군의 취학률이 약 25퍼센트포인트 높았다. 다시 말해 프로테스탄트 지역은 경제 격차가 벌어지기 전부터 이미 더 많은 아이를 학교에 보내고 있었다.

프로이센의 증거는 강력하지만, 그것이 이야기의 전부는 아니다. 다비데 칸토니는 신성로마제국의 도시 수백 곳을 6세기에 걸쳐 살펴보았는데, 프로테스탄티즘이 그 도시들의 성장에 미친 효과를 전혀 찾지 못했다. 언어별로 나누어 보면, 프로이센 격차의 상당 부분은 프로테스탄트와 가톨릭 사이가 아니라 독일인과 폴란드인 사이에서 벌어진 것이었다. 프로테스탄트의 우위는 어떤 곳, 어떤 시기에는 실재했지만 보편 법칙인 적은 없었다.

그러나 상관관계를 확인하는 것은 메커니즘을 확인하는 것과 같지 않다. 프로테스탄트 지역이 실제로 더 빨리 성장한 곳에서도, 그 사실이 말해 주는 것은 프로테스탄티즘과 함께 움직인 무언가가 중요했다는 점뿐이다. 그 원인이 신학적 확신이었는지, 심리적 기질이었는지, 제도의 형성이었는지, 아니면 종교개혁 신학에 우연히 올라탄 다른 어떤 변수였는지는 알려 주지 않는다. 베커와 뵈스만은 바로 이 가능성들을 가려내도록 논문을 설계했고, 그들의 답은 베버의 핵심 주장에서 멀어지는 쪽을 가리킨다.

학교라는 경로

베커와 뵈스만은 비텐베르크로부터의 거리를 도구변수로 썼다. 도구변수란 어느 군이 얼마나 강하게 프로테스탄트로 돌아섰는지는 예측하지만 그 군의 부와는 달리 아무 연관도 없어야 하는 척도다. 종교개혁은 비텐베르크에서 동심원을 그리며 퍼져 나갔고, 저자들은 이 확산 패턴이 기존의 부나 인적 자본과 무관했다고 주장한다. 그 주장이 맞다면, 비텐베르크로부터의 거리는 특정 지역을 다른 이유로 더 부유하게 만들었을 수 있는 모든 요인으로부터 프로테스탄티즘의 효과를 분리해 낼 수 있다.

그들이 발견한 것은 이렇다. 문해율을 통제하면 프로테스탄트의 경제적 우위가 사라진다. 그들의 추정에서는 더 높은 문해율이 격차를 거의 전부 설명하며, 이로써 설명의 무게는 문화에서 인적 자본으로 옮겨 간다. 메커니즘은 규율 있는 축적을 향한 기질이나 세속을 다스려 선택받았음을 입증하려는 거룩한 불안 같은 베버의 설명보다 훨씬 덜 낭만적이었다. 그것은 문해력을 거쳐 작동했다. 루터는 모든 신자가 성경을 읽어야 한다고 고집했고, sola scriptura(오직 성경)는 글을 읽을 줄 아는 회중을 필요로 했다. 이것이 산업화가 글 읽는 노동자를 요구하기 수 세기 전에 보편적 초등교육에 대한 수요를 만들어 냈다. 16세기와 17세기에 걸쳐 프로테스탄트 영방들에 학교와 교리문답 교육이 퍼졌다. 19세기에 산업화가 닥쳤을 때 그 지역들에는 이를 활용할 인적 자본이 있었다. 대중 교육을 더 늦게, 덜 집중적으로 갖춘 가톨릭 지역들은 글을 읽을 줄 아는 노동자가 더 적은 상태로 산업 시대에 들어섰다.

또 하나 제기된 경로는 따져 보면 작아진다. 칼뱅은 돈은 돈을 낳을 수 없다는 아리스토텔레스의 교리를 거부했다. 그는 자본은 생산적이며 이자를 받고 돈을 빌려주는 것은 정당하다고 주장했다. 이것이 중세의 고리대금 금지에 여전히 묶여 있던 가톨릭 경제들에 비해 프로테스탄트 경제들에 금융상의 이점을 주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경로는 보기보다 좁다. 가톨릭의 관행은 여러 세대에 걸쳐 빠져나갈 구멍을 열어 왔다. 교황 마르티노 5세와 갈리스토 3세는 15세기에 연금 계약이 정당하다고 확인했고, 요한 에크는 1515년에 5퍼센트 이자의 투자 계약을 옹호했다. 모두 칼뱅이 상업 대출의 이자를 받아들인 1545년의 편지보다 앞선 일이다. 그 뒤 도밍고 데 소토와 루이스 데 몰리나 같은 스페인 스콜라 학자들은 대부자에게 보상해야 한다는 논리를 다듬었다. 한편 루터와 칼뱅을 따르는 사람들 대부분은 가톨릭 이웃들만큼, 혹은 그 이상으로 고리대금에 적대적이었다. 칼뱅의 견해가 준 이점이 무엇이었든 그것은 크지 않았고, 유럽의 은행가들을 교파에 따라 깔끔하게 나눈 적도 없다.

필립 고르스키는 제도적 논증을 더 밀고 나간다. 고르스키에 따르면 칼뱅주의의 가장 중요한 유산은 개별 신자의 내면 생활이 아니라 칼뱅주의 공동체가 함께 세운 것들이었다. 공동체의 상호 감시, 교회 치리, 빈민 구제와 치안, 그리고 프로이센에서는 연줄보다 능력을 중시하는 관료제가 그것이다. 네덜란드 공화국과 브란덴부르크-프로이센은 모두 이러한 칼뱅주의 규율의 틀 위에 강력한 국가를 세웠는데, 네덜란드는 중앙 행정보다 사회적 규율을 통해서였다. 이 유산들은 제도적인 것이므로, 원칙적으로는 처음에 그것을 낳은 신학 없이도 복제될 수 있다.

그렇다면 프로이센에서 베버가 “프로테스탄트 문화”라고 부른 것의 상당 부분은 프로테스탄티즘이 어쩌다 한데 모아 놓은 제도들의 묶음처럼 보인다. 그 맨 앞에 학교가 있었다. 그렇다고 신앙이 무의미해지는 것은 아니다. 옛 스위스 교파 경계선의 프로테스탄트 쪽 유권자들은 지금도 여가를 줄이는 쪽을 택하는데, 이 선호는 학교 교육만으로는 쉽게 설명되지 않는다. 소명과 불안은 주변부에서 의미가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프로이센에서 측정된 경제 격차는 주로 교실을 거쳐 생겨났다.

“믿음 대 소속”이라는 발견

경제학자 로버트 배로와 레이철 매클리리는 여러 나라를 아우르는 폭넓은 패널 데이터에서 또 하나의 복잡한 사정에 부딪혔다. 경제성장은 종교적 믿음, 특히 천국과 지옥에 대한 믿음과는 양의 상관관계를 보이지만 교회 출석과는 음의 상관관계를 보인다는 것이다. 믿음을 고정하면 출석률이 높을수록 성장이 느리고, 출석률을 고정하면 믿음이 강할수록 성장이 빠르다. 배로와 매클리리는 이를 믿음이 노동 윤리나 정직처럼 경제성장에 도움이 되는 특성을 빚어내는 반면, 출석은 종교 부문이 흡수하는 시간과 자원을 나타낸다는 뜻으로 해석한다. 이는 베버의 비판자들보다 베버 쪽에 가깝다. 사람들이 무엇을 믿느냐가 경제적으로 중요할 수 있다는 말이기 때문이다. 이 연구가 할 수 없는 일은 칼뱅주의의 예정설을 따로 집어내는 것이다. 이 연구가 측정하는 것은 천국과 지옥처럼 여러 신앙이 공유하는 믿음이지, 베버 논증의 핵심에 있는 특정한 신학이 아니다.

학교가 경제적인 일을 해냈다면, 학교에는 종교가 전혀 필요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베버 자신도 일단 존재하게 된 자본주의에 대해 그만큼은 말했다. 자본주의는 자신의 기계 장치로 돌아간다고 그는 썼다. “승리를 거둔 자본주의는 기계적 토대 위에 서 있으므로 더는 그 버팀목이 필요 없다.” 종교적 정신은 쇠우리를 지어 놓고는 그곳을 떠났다. 남는 물음은 애초에 그 기계 장치를 짓는 데 종교가 필요했느냐는 것이다.

동아시아라는 시험대

The Religion of China는 The Protestant Ethic(프로테스탄티즘의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의 테제를 가장 어려운 시험대로 확장한다. 그래서 베버의 메커니즘이 실재했는지를 판단하는 데 가장 중요한 책이 된다.

유교의 이상적 인물은 정치적으로 교양을 갖추고, 고전에 통달하고, 사회적 위계 속에 조화롭게 자리 잡은 사람이었다. 부를 적극적으로 좇는 일은 군자의 품위에 어울리지 않았다. 과거 제도는 인재를 상업적 기업이 아니라 관료로서의 봉직으로 이끌었다. 친족 간의 의무는 자원을 개인의 손에 쌓아 두기보다 씨족 네트워크를 통해 나누어 주었다. 그리고 세속의 노동을 향한 신의 소명이라는 개념, 베버의 설명으로는 프로테스탄트 경제 문화를 뿌리부터 바꾸어 놓은 그 Beruf가 유교의 도덕 어휘에는 없었다. 칼뱅주의의 합리주의가 규율 있는 행동으로 세계를 다스리는 것을 뜻했다면, 유교의 합리주의는 세계에 이미 있는 조화에 자신을 맞추는 것을 뜻했다. 베버의 결론은 단호했다. 근대 자본주의는 유교 문화 자체의 토양에서 자라나지 않았다. 그러나 그는 거기서 선을 그었다. 책의 마지막 대목에서 그는 자본주의가 다른 곳에서 일단 발전하고 나면 중국인은 아마 일본인보다도 더 능숙하게 그것을 흡수할 것이라고 썼다.

그 뒤에 벌어진 일은 유교 사회가 자본주의에 서툴다는 베버의 대중적 해석을 거의 우스꽝스럽게 만들었다. 1965년부터 1990년까지 성과가 뛰어난 아시아 경제들의 1인당 소득은 서구 선진국들보다 대략 두 배 빠르게 늘었다.

공정한 비교는 발전의 정점에 있던 동아시아 유교 경제들을 오늘날의 선진국들이 아니라 정점에 있던 프로테스탄트 유럽 경제들과 나란히 놓는 것이다. 베버를 대중화한 이들이 쓴 잣대, 곧 한 문화 체계가 자본주의적 팽창을 지탱하는 능력으로 재면, 그들이 해낼 수 없다고 한 문화들이 해낼 수 있다고 한 문화들을 앞질렀다.

그리고 거울에 비친 듯 뒤집힌 테제도 그만큼 빨리 무너졌다. 1980년 로더릭 맥파커는 근면, 검약, 공손, 교육 중시 같은 유교적 가치가 동아시아의 성장을 설명한다고 주장했다. 베버를 물구나무 세운 셈이었다. 논리 구조도 같았고, 저지른 실수도 같았다. 문화 체계와 경제 성과 사이의 상관관계를 메커니즘으로 취급한 것이다.

유교 인구가 다수가 아닌 말레이시아와 태국이 1980년대 말과 1990년대에 비슷한 수출 지향 정책으로 거의 그만큼 빠르게 성장하자, 강한 문화적 설명은 힘을 대부분 잃었다. 더 정교한 논증들은 살아남았다. 그라이프와 타벨리니가 씨족 기반의 신뢰와 법인 기반의 신뢰를 대비한 논증이 그렇다. 그들의 설명에서는 친족이나 더 넓은 결사체에 대한 도덕적 유대와, 그 위에 세워진 제도들이 함께 진화했다. 그러나 유교적 가치가 성장을 일으켰다는 강한 주장을 구해 낼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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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버의 독자들은 그가 유교 사회는 자본주의를 해낼 수 없다고 말한 것으로 받아들였다. 동아시아는 그것을 어떤 프로테스탄트 사회보다도 빠르게 해냈다. 프로테스탄트 윤리가 자본주의의 탄생에서 어떤 역할을 했든, 자본주의가 퍼져 나가는 데에는 그것이 필요하지 않았다.

지리라는 대안

기후, 질병 부담, 항행 가능한 수로를 발전의 일차적 결정 요인으로 보는 제프리 삭스의 지리 가설과 재러드 다이아몬드의 생태학적 논증은 문화적 설명과 제도적 설명 모두에 대한 유물론적 대안을 내놓는다. 두 이론 모두 한 가지 시험에서 애를 먹는다. 지리가 같은 조건에서 벌어지는 격차는 설명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북한과 남한은 같은 반도와 같은 언어, 수백 년의 공통된 역사를 공유한다. 한국은행의 추정에 따르면 지금 남한의 1인당 소득은 북한의 대략 30배다. 지리는 전 세계 편차의 일부를 설명한다. 그러나 비슷한 땅 위의 이웃들이 서로 다른 제도적 선택을 한 끝에 극단적으로 갈라진 이런 사례에 대해서는 거의 아무것도 설명하지 못한다.

성장을 만들어 낸 것

베버의 대중적 해석도, 맥파커의 뒤집기도 모두 반증되었다. 유교적 가치가 동아시아의 성장을 낳지 않았고, 가장 유력한 증거가 프로테스탄트 지역의 성장을 베버가 묘사한 메커니즘보다는 주로 학교 교육으로 거슬러 올라가게 한다면, 그 둘을 만들어 낸 것은 무엇이었을까?

메커니즘이 법률에 그대로 적혀 있었던 한국부터 보자. 박정희 정부 아래의 한국 국가는 문화적 가치가 아래로부터 자본주의를 만들어 내기를 기다리지 않았다. 국가는 입법 지시와 신용 배분으로 자본주의를 세웠다. 1967년에 기계공업진흥법과 조선공업진흥법이, 1969년에 전자공업 관련 법이, 그리고 1960년대에서 1970년대로 넘어가는 무렵에 철강과 석유화학 관련 법들이 나왔다. 각 법은 대상 산업에 보조금이 붙은 저리 신용과 세제 혜택, 기반 시설 우선권을 주었다. 국가는 자본을 선호하는 대기업 집단, 곧 재벌에 몰아주었고 그 대가로 성과를 받아 냈다. 수출 목표, 기술 습득 기준, 그리고 실패하면 실제로 대가를 치러야 하는 측정 가능한 산출물이었다.

대만은 같은 논리를 전혀 다른 제도적 구조로 운용했다. 한국이 한 줌의 거대 재벌에 힘을 집중했다면, 대만은 수출 경제를 더 작고 다각화된 기업들의 네트워크 위에 세웠다. 수만 개에 이르는 이 기업들은 흔히 가족 소유였고, 전자 부품과 섬유, 기계를 놓고 세계 시장에서 치열하게 경쟁했다.

국가는 다른 조직 경로를 통해 같은 지휘 역할을 했다. 전략적 관세, 보조금이 붙은 투입재, 기술 이전 프로그램, 그리고 민간 혁신의 씨앗을 뿌리는 공공 연구소들이었다. 다른 기업 형태 아래에서도 성장은 똑같이 오래 지속되었으니, 재벌 모델이 그 설명일 수는 없다. 두 나라의 공통점은 투자를 수출로 이끌 수 있는 국가가 높은 저축률, 그리고 널리 보급된 학교 교육과 함께 작동했다는 데 있었다.

칠레는 논증을 한국과 대만 너머로 데려간다. 칠레는 가톨릭 국가이자 라틴아메리카 국가이며, 2006년에는 남아메리카 대륙에서 명목 1인당 GDP가 가장 높았다. 칠레는 2010년 1월 OECD 가입 협정에 서명했고 그해 5월 정회원국이 되었다. 남아메리카 국가로는 처음이었다. 성장은 확인 가능한 정책 개혁 뒤에 따라왔다. 1970년대 중반 시카고 보이스 아래에서 시작된 무역 자유화와 수출 지향, 이어 1980년대 초의 심각한 금융 위기, 그 뒤를 이은 무엇보다 은행과 파산 규정에 관한 두 번째 개혁, 그리고 이후의 민주 정부들이 여러 차례의 정권 교체를 거치면서도 유지하고 심화하기로 한 재정 규율이 그것이다.

그리고 피노체트가 있다. 비인격적인 법적 신뢰에서 수출 지향적 신용 배분, 강제된 재정 규율에 이르기까지 칠레의 성장을 이끈 제도적 기반은 권위주의 통치 아래에서 세워졌고 또 수리되었다. 민주적 후계자들은 그것을 지키고 넓혔다. 이 가운데 어느 것도 독재를 정당화하지 않는다. 다만 제도적 논증은 발전이 민주적 기원을 필요로 한다고 전제할 수 없다.

폴란드, 체코, 슬로바키아는 1989년 이후 EU 가입의 틀과 제도 개혁을 통해 서유럽의 소득 수준으로 빠르게 수렴했다. 폴란드처럼 독실한 가톨릭 사회든, 체코처럼 유럽에서 가장 세속적인 사회 가운데 하나든 마찬가지였다. 압도적으로 가톨릭인 아일랜드에서는 1995년부터 2000년까지 법인세 정책과 교육 투자, EU 구조기금에 힘입어 GDP가 해마다 약 9퍼센트씩 성장했다. 이 이야기들 어디에서도 종교는 설명의 몫을 하지 않는다.

이 사례들을 하나로 묶는 것은 제도다. 애쓰모글루, 존슨, 로빈슨이 식민지 발전에 관한 연구의 중심에 놓은 변수다. 그들은 제도의 기원을 질병까지 거슬러 올라갔다. 유럽 식민자들이 영구히 정착할 수 있었던 곳에서는 재산을 보호하고 통치자를 제약하는 제도를 세우는 경향이 있었고, 정착민 사망률이 높았던 곳에서는 수탈 국가를 세웠다. 그들의 설명에 따르면 제도는 각국 소득의 장기적 격차를 상당 부분 설명하며, 그 효과는 지리와 종교를 통제해도 살아남는다.

한국과 대만은 정착 식민지가 아니라 일본의 식민지였고, 두 나라의 도약은 애쓰모글루, 존슨, 로빈슨이 강조하는 포용적 제도보다는 권위주의 국가와 관치 금융을 거쳐 이루어졌다. 그래도 더 넓게 보면 두 나라가 보여 주는 요점은 같다. 속도를 정한 것은 물려받은 종교가 아니라 제도와 정책 선택이었다. 서로 다른 종교와 문명을 가로질러 어느 경우든 국가가 학교를 세우고, 계약을 집행하고, 수출을 밀어붙였으며, 성장이 뒤따랐다.

누가 제도를 세웠는가

서울에서는 권위주의적 명령으로, 타이베이에서는 소기업 네트워크로, 산티아고에서는 시카고에서 훈련받은 경제학자들로, 바르샤바에서는 EU 가입의 틀로 제도를 세울 수 있고, 그 모두가 지배적인 종교와 상관없이 성장을 낳는다면, 제도적 역량이 세계에 어떻게 분포하는지는 정치와 역사의 산물이다.

식민지의 사례가 가장 극명하다. 유럽인들이 질병이 적은 온대 기후에 영구히 정착한 곳에서, 그들은 자신들이 그 아래에서 살 제도를 세웠다. 재산권, 법원, 대의 정치, 학교였다. 높은 정착민 사망률과 열대 질병 때문에 정착할 수 없었던 곳에서는 수탈을 위한 제도를 세웠다. 강제 노동, 집중된 정치권력, 현지 인적 자본에 대한 최소한의 투자, 그리고 부를 바깥으로 빼내도록 설계된 법적 구조였다.

그런 제도적 짜임은 질겼다. 그것을 강요한 제국들보다 수십 년, 어떤 경우에는 수백 년을 더 살아남았다. 그런 곳들에서 독립 뒤에 이어진 빈곤을 설명하는 데 문화가 필요하지는 않다. 콩고가 그 이유를 보여 준다. 레오폴드 2세는 1885년부터 1908년까지 콩고 자유국을 강제 고무 채취에 기반한 사기업으로 운영했다. 1908년에 이를 넘겨받은 벨기에 식민지는 1950년대까지 콩고인의 대학 진학을 막았고, 이 나라는 1960년 대학 졸업자가 손에 꼽을 만큼밖에 없는 상태로 독립을 맞았다. 식민 통치 기구를 대신한 것은 그 수탈의 논리를 물려받았다.

북유럽의 부에 대한 대중적 설명으로서 “프로테스탄트 노동 윤리”는 분석적으로는 허약하고 정치적으로는 편리하다. 이 말은 번영이 문화적 미덕을 반영하며, 부유한 나라와 가난한 나라의 격차가 그들이 지닌 가치관을 드러낸다는 함의를 품고 있다. 그런 틀은 모두를 더 어려운 질문들에서 면제해 준다. 가난한 나라를 가난하게 묶어 두는 제도를 누가, 언제, 누구의 치부를 위해 설계했는가 하는 질문들이다.

제도적 논증은 그 질문들을 되돌려 놓는다. 한국, 대만, 칠레, 아일랜드, 동유럽은 교육, 신용, 법적 기반, 국가 역량에 관한 선택을 통해 성장했다. 그렇다면 끈질긴 빈곤은 문화적 숙명보다는 수백 년에 걸쳐 특정할 수 있는 행위자들이 내린 결정에 더 많은 빚을 지고 있다. 흔히 알면서, 그리고 이득을 보며 세워진 수탈적 제도들은 그것을 필요로 했던 제국들보다 거듭 오래 살아남았다.

베버의 테제는 1904년에 쓸 수 있었던 최선의 분석 도구로 실재하는 패턴을 설명하려 한 독창적이고 진지한 시도였다. 적어도 프로이센에서 그의 실수는 아마 사회과학이 계량경제학을 한 세기 더 발전시키고 나서야 잡아낼 수 있었던 종류의 것이었다. 그는 전달 장치를 보고 그것을 유효 성분이라 불렀다. 그의 테제의 대중판, 곧 경영대학원 강의계획서와, 어떤 문명은 그저 돈 버는 데 더 능하다는 무심한 가정 속에 살아 있는 그 판본은 끝내 그 수정을 받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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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요 출처 및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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