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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 아르헨티나의 공공부채는 경제 규모 대비 대략 세 배로 불어났다. GDP의 절반쯤이던 것이 150% 안팎까지 치솟았다. 정부가 돈을 마구 빌리거나 펑펑 쓴 것이 아니었다. 부채가 늘어난 주된 이유는 페소가 더는 1달러의 가치를 지니지 못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1991년부터 두 통화를 1대 1로 묶어 두었던 태환 계획(Convertibility Plan)이 1월에 무너졌다. 6월에는 페소 가치가 달러당 4페소 가까이로 떨어졌다. 달러 부채는 달러로 따지면 그대로였지만, 페소로 환산하면 서너 배나 무거워졌다. 은행에 대한 보상으로 발행한 채권과 갚지 못한 체납금이 나머지 증가분을 채웠다. 국민이 벌고 저축하고 세금으로 내는 모든 것에 견주어 보면, 이 나라는 하루아침에 빚더미에 짓눌리고 말았다.

이 급증 뒤에 있는 산술은 단순하며, 스스로 찍어 낼 수 없는 돈으로 빌려야 하는 모든 나라에 똑같이 적용된다. 그런 나라는 대개 규모가 작은 경제다.

자동 부채 증폭기

간단한 예에서 출발해 보자. 어떤 나라가 외국 채권자들에게 100억 달러를 빚지고 있다. 환율이 달러당 현지 통화 2단위라면 이 부채는 현지 통화로 200억이다. 그런데 정부가 평가절하를 하든, 시장이 통화 가치를 끌어내리든, 고정환율이 깨지든, 환율이 4대 1로 바뀐다. 똑같은 100억 달러가 이제 현지 통화로 400억이다. 국내에서 실제로 의미를 갖는 통화로 따지면, 새로 빌린 돈도 새로운 정치적 결정도 없이 부채가 두 배가 된 것이다.

이를 아르헨티나에 적용해 보자. 2001년 말 이 나라는 외국 채권자들에게 약 1,500억 달러를 빚지고 있었고, 그해 마지막 며칠 사이 약 810억 달러어치 국채의 상환을 중단했다. 당시로서는 역사상 최대 규모의 국가 디폴트였다. 페소가 1대 1 고정환율에서 떨어져 나와 4대 1을 향해 미끄러지자, 이 채무를 현지 통화로 환산한 무게는 세 배 넘게 늘었다. 2002년 GDP는 11% 줄었다. 1990년대 중반 이후 사실상 제자리였던 물가는 단 1년 만에 41% 올랐다. 몇 달 지나지 않아 인구의 절반 이상이 빈곤층으로 떨어졌다.

이 메커니즘은 위기 때만 작동하는 것이 아니다. 양방향으로, 쉬지 않고 돌아간다. 한 나라의 통화가 달러 대비 완만하게 약해져 예컨대 1년 동안 가치의 10%를 잃으면, 그 나라 달러 부채의 현지 통화 환산액은 약 11% 늘어난다. 연방준비제도(연준)가 금리를 올리면 자본은 달러 자산 쪽으로 흘러가는 경향이 있고, 그러면 개발도상국 통화에 대해 달러가 강해지면서 수십 개국의 달러 표시 부채 부담이 현지 통화 기준으로 한꺼번에 커진다.

2022년 3월부터 2023년 7월까지 이어진 연준의 금리 인상 사이클은 연방기금금리를 525베이시스포인트 끌어올렸다. 이는 미국 인플레이션을 잡기 위해 정한 미국의 통화정책이었다. 달러가 강해지자 튀르키예 리라, 아르헨티나 페소, 콜롬비아 페소, 이집트 파운드는 2022년 한 해에만 달러 대비 가치가 저마다 15% 이상 떨어졌다. 앙카라와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는 국내 인플레이션이 피해의 상당 부분을 만들었지만, 치솟는 달러는 이들 모두를 같은 방향으로 밀어붙였다. 달러가 1%포인트 강해질 때마다, 2002년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작동했던 바로 그 산술을 통해 새로 빌린 돈 없이도 이들 나라 하나하나의 현지 통화 기준 부채 부담이 커졌다.

개발도상국 부채 위기를 다루는 보도는 이것을 직접적 원인으로 지목하는 일이 드물다. 흔히 거론되는 용의자는 방만한 재정, 거버넌스 실패, 정책 실수다. 이런 요인이 실제로 작용할 때도 있다. 그러나 증폭기는 위기 이전에도, 위기 동안에도, 위기 이후에도 돌아간다. 누가 어떤 통화로 빌릴 수 있는지를 정하는 구조 자체에 내장되어 있기 때문이다. 정부는 차입의 더 많은 부분을 자국 통화로 옮겨 증폭기의 영향 범위를 줄일 수 있다. 하지만 달러 빚이 남아 있는 한 이를 끌 수는 없다.

원죄

개발도상국은 애초에 왜 외화로 빌리는가? 가장 먼저 떠오르는 설명은 거버넌스다. 인플레이션 전력이 나쁜 나라의 통화를 대출자들이 믿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 설명은 문제를 차입국 쪽에 두며, 그 처지가 자초한 것이므로 고칠 수 있다고 암시한다. 인플레이션 전력을 바로잡고 신뢰를 다시 쌓으면 대출자들도 결국 그 나라 통화를 받아들이리라는 것이다.

1999년 배리 아이컨그린과 리카르도 하우스만은 이 상태에 이름을 붙였다. “원죄(original sin)”, 즉 한 나라의 자국 통화를 “해외에서 빌리는 데 쓸 수 없고, 국내에서조차 장기로 빌리는 데 쓸 수 없는” 상황이다. 원죄를 지닌 나라는 자국 통화로 국제 채권을 발행하지 못한다. 남의 통화로 빌려야 하고, 그것은 곧 환율 증폭기가 늘 돌아가고 있다는 뜻이다.

거버넌스 설명은 1990년대 데이터 앞에서 잘 버티지 못했다. 인플레이션 이력은 한 나라가 자국 통화로 국제 차입을 할 수 있는지를 잘 예측하지 못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수십 년 동안 물가 안정을 누린 나라도 원죄에서 벗어나지 못했고, 통상적 지표로 보면 모든 것을 “올바르게” 해 온 나라도 여전히 달러로 빌리고 있었다.

그 시기에 원죄와 실제로 맞아떨어진 것은 나라의 크기, 정확히는 세계 금융시장에 견준 경제 규모였다. 큰 경제는 국제시장에서 자국 통화로 채권을 발행할 수 있었다. 중소 규모의 경제는 대부분 그러지 못했다. 1993~1998년 개발도상국은 국제 부채의 약 10%를 차지했지만, 국제 부채 가운데 이들 나라의 통화로 표시된 비중은 1%에도 못 미쳤다. 해외에서 빌리기는 했으되, 자기 돈으로 빌린 일은 거의 없었다.

원죄에서 가장 뚜렷한 예외는 국제 채권시장을 지배하는 다섯 통화, 즉 미국 달러, 유로, 엔, 파운드스털링, 스위스 프랑의 발행국이었다. 1999~2001년 발행 잔액이 5조 8,000억 달러에 가까웠던 국제 증권 가운데 5조 6,000억 달러가 이 다섯 통화로 표시되어 있었다. 캐나다, 오스트레일리아, 뉴질랜드, 남아프리카공화국, 그리고 몇몇 중부 유럽 국가처럼 부분적으로 빠져나온 소규모 경제도 몇 있었지만 손에 꼽을 정도였다. 이 다섯은 자국 통화가 세계 기축통화나 주요 무역 통화 구실을 하는 경제다. 이들 대부분의 공통점은 크기이며, 금융 중심지인 스위스는 예외다. 국제 투자자들이 그 통화를 직접 보유할 이유가 있을 만큼 크고, 그 덕분에 그 통화로 표시된 자산에 대한 실질적 수요가 생겨난다.

1990년대와 2000년대 초반 데이터로 보면 원죄는 주로 규모의 문제다. 경제의 덩치가 인플레이션 이력보다 원죄를 훨씬 잘 예측하며, 원죄는 놀라울 만큼 끈질기다. 인플레이션 전력을 깨끗이 정리한 나라도 수십 년 동안 달러로 빌리는 일이 흔하다. 따라서 환율 변동이 부채를 증폭하는 방식은 단순히 거버넌스 실패의 결과가 아니다. 그것은 거버넌스 실패가 일어나는 환경의 일부다.

되돌아온 원죄

2000년대 중반 이후 일부 신흥시장국은 국제 투자자들에게 자국 통화 표시 채권을 발행해 왔고, 이를 금융 혁신의 압력 아래 원죄가 녹아 사라지는 현상으로 읽는 시각도 있었다. 국제결제은행(BIS)의 아구스틴 카르스텐스와 신현송은 이 진전이 실재하지만 불완전하다고 판단했고, 실제로 일어난 일에 “되돌아온 원죄(original sin redux)”라는 이름을 붙였다. 통화 불일치가 자리를 옮겼다는 것이다. 한 나라가 외국 투자자에게 자국 통화 채권을 발행하면 환위험은 그 투자자들이 떠안는다. 현지 통화가 떨어지면 그들은 채권을 팔고, 빠져나가는 자본이 통화를 더 끌어내리면서 원래의 문제가 다른 경로로 재현된다. 해외에서 자국 통화로 빌린다고 불일치가 끝나지는 않는다. 불일치가 글로벌 대출자들의 대차대조표로 옮겨 갈 뿐이어서, 해외의 긴축은 달러 부채만큼은 아니어도 여전히 신흥시장의 금융 여건을 조인다. 달러 차입에서 가장 멀리 벗어난 나라들은 대체로 튼튼한 제도, 깊이 있는 국내 채권시장, 신뢰할 만한 물가안정목표제를 갖추고 있다. 그러니 정책은 불일치를 없애지는 못하더라도, 한 나라가 그 불일치를 얼마나 떠안을지는 바꿀 수 있다.

아르헨티나: 되풀이되는 덫

1991년의 태환 계획은 실제 위기에 대한 합리적인 대응이었다. 아르헨티나의 초인플레이션은 1989년 연간 약 3,000%에 이르렀고, 달러 고정환율이 이를 끝냈다. 그러나 고정환율은 1990년대 내내 아르헨티나를 달러 표시 대외부채에 묶어 두기도 했다. 국제시장에서 빌린다는 것은 달러로 빌린다는 뜻이었고, 고정환율의 신뢰를 지키려면 경상수지 적자를 해외 자금으로 메워야 했다. 성장기에도 지나치게 느슨했던 재정정책이 빚더미를 더 키웠다. 1990년대 말에 이르자 이 구조는 덫이 되어 있었다.

2001년 아르헨티나의 대외부채는 약 1,500억 달러에 달했고, 정부는 국내외 민간 채권자들에게 약 810억 달러의 채권을 빚지고 있었다. IMF는 고정환율이 유지될 수 있는 조건을 지키기 위해 재정 조정, 즉 적자 감축과 공공부문 임금 삭감을 압박하고 있었다. 조정은 불황을 깊게 했다. 깊어진 불황은 세수를 줄이고 적자를 키웠으며, 그러면 다시 더 많은 조정이 필요해졌다. 2001년 말 IMF는 예정된 분할 지원금의 집행을 거부했고, 위기는 빨라졌다. 2002년 1월 고정환율이 깨졌고, 6월에는 페소가 달러 대비 4대 1에 가까워졌다. 환율 하나가 움직이는 사이에 공공부채는 GDP 대비 대략 세 배로 불어나 150% 안팎에 이르렀다.

2018년의 아르헨티나 정책 체계는 2001년과 전혀 달라 보였다. 고정환율은 없었고, 중앙은행은 물가안정목표제를 운영했으며, 정부는 적자 감축을 약속하고 있었다. 서류상으로 이 나라는 더 이상 통상적인 부채 위기 서사 속 재정적으로 무책임한 악당처럼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아르헨티나는 국제시장에도 대거 복귀해, 대외부채를 2015년 약 1,770억 달러에서 2017년 약 2,260억 달러로 늘려 놓았다. 그런데도 페소는 2018년 첫 여덟 달 동안 가치의 절반 이상을 잃었다.

정부는 당시 IMF 역사상 최대 규모인 500억 달러의 IMF 대출을 따냈고, 이 대출은 나중에 570억 달러로 늘었다. 그래도 위기는 일어났다. 유럽 부채 네트워크인 유로다드(Eurodad)는, IMF가 이전 위기의 교훈을 체화했다고 주장했는데도 2018년 협약에 붙은 조건이 2000년 프로그램보다 더 많다고 집계했다. IMF가 나중에 직접 실시한 평가는 이 프로그램이 아르헨티나의 더 깊은 약점, 즉 취약한 공공재정과 높은 인플레이션, 그리고 여전히 달러로 저축하는 경제를 제대로 다루지 못했다고 결론지었다. 사람들이 저축을 페소 밖으로 옮기자 떨어지는 환율이 공공부채의 페소 가치를 끌어올렸고, 해결되지 않은 통화 불일치가 페소 대량 이탈을 부채 위기로 바꿔 놓았다.

아르헨티나의 연쇄 디폴트

아르헨티나는 국가 부채에 대해 아홉 차례 디폴트를 선언했다. 이 기록은 흔히 상습적인 무책임, 부채의 지속 가능성을 지켜 낼 능력이 없는 정치 문화의 표지로 읽힌다. 정책 실패도 그 기록의 일부이지만, 매번의 디폴트는 똑같은 통화 불일치 위에서 벌어졌다. 페소를 약하게 만들 만큼 큰 충격이 오면 달러 표시 부채는 현지 통화 기준으로 커지고, 정부가 재정을 책임 있게 운영해 왔을 때조차 그 부채가 정부의 재정 능력을 넘어설 수 있다. 거듭된 IMF 의존은 실수들과, 충격을 자꾸만 위기로 바꾸는 부채 구조를 함께 반영한다.

튀르키예: 같은 덫, 다른 구조

2018년 튀르키예 위기는 아르헨티나 사례가 가릴 수 있는 사실 하나를 보여 준다. 원죄가 드러나는 데 반드시 국가 부채 위기가 필요하지는 않다는 것이다. 2018년 무렵 튀르키예의 문제는 주로 정부가 아니라 기업 부문의 대차대조표에 있었다.

그해 튀르키예는 1년 안에 만기가 돌아오는 대외부채를 약 1,810억 달러 안고 있었고, 그중 상당 부분은 은행과 기업의 빚이었다. 이미 2010년대 중반에 기업 부채의 약 60%가 외화였으며, 매출이 거의 전부 튀르키예 리라로 들어오는 건설업에서는 그 비중이 70% 안팎이었다.

기업들은 리라로 벌고 달러로 빚졌고, 이는 같은 메커니즘을 다른 대차대조표 위에서 돌아가게 했다. 2018년 8월 한 달 동안에만 리라는 달러 대비 가치의 약 4분의 1을 잃었다. 월말에 1달러를 사는 데 드는 리라는 월초보다 3분의 1이 더 많았다.

은행들은 곧바로 리라 매출로는 외화 채무를 감당할 수 없게 된 기업들의 압박에 직면했고, 구조조정 요청이 쏟아져 들어왔다. 부담은 은행에 떨어졌지만, 그 근원은 이번에는 기업 대차대조표 위에서 작동한 환율 증폭기였다.

그리고 2021년이 왔다. 3월에 에르도안 대통령은 인플레이션과 싸우려 금리를 올리고 있던 나지 아발 중앙은행 총재를 해임하고 샤합 카브즈오울루를 앉혔다. 카브즈오울루는 9월부터 네 차례에 걸쳐 정책금리를 19%에서 14%로 내렸다. 리라는 해임 발표 직후 곧바로 떨어졌고, 이후로도 계속 떨어졌다. 2021년 말까지 리라는 그해에만 가치의 44%를 잃었고, 12월 인플레이션은 36%에 이르렀다.

고금리가 인플레이션을 억누르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일으킨다는 에르도안의 통화 이론은 틀렸고, 그 이론을 실행하려고 이미 달러에 노출된 나라에서 아발을 해임한 것은 심각한 거버넌스 실패였다. 피해가 더 넓게 번진 것은 튀르키예 기업들이 여전히 막대한 외화 부채를 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기업들이 주로 자국 통화로 빌린 나라였다면 똑같은 금리 결정이 인플레이션과 통화 약세, 어쩌면 불황을 낳았을 것이다. 그러나 리라가 1포인트 떨어질 때마다 기업들의 달러·유로 부채의 리라 기준 비용까지 끌어올려, 매출이 리라에 머물러 있는 기업들을 쥐어짜지는 않았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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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버넌스 실패는 2021~2022년 위기가 언제, 어떻게 전개되었는지를 설명한다. 통화 불일치는 그 위기가 왜 그토록 깊이 파고들었는지를 설명하는 데 도움이 된다. 앞의 것만 남기는 설명은 모든 책임을 정부에 돌린다.

IMF와 덫의 구조

IMF의 위기 해결 논리는 그 자체의 기준으로 보면 비합리적이지 않다. 재정 조정을 대가로 시장보다 낮은 금리로 빌려주면, 조정이 투자자 신뢰를 회복시키고, 신뢰가 국제 자본시장에 대한 접근을 되돌려 주며, 시장 접근 덕분에 그 나라는 부채를 차환하고 성장을 재개한다. 그러나 원죄를 지닌 나라에 위기의 출구는 달러 체제를 거쳐 간다. 시장 접근이란 대개 달러 표시 국제 자본에 대한 접근을 뜻하므로, 그 나라는 위기를 낳았던 바로 그 메커니즘에 다시 노출된 채 위기에서 빠져나온다.

2001년 아르헨티나에서 IMF의 조건은 적자 감축과 고정환율 고수를 요구했다. 페소 고평가가 만들어 내던 경상수지 적자 때문에 고정환율이 치명적인 압박을 받고 있는 와중에 불황은 더 깊어졌다. 2018년 500억~570억 달러 규모의 프로그램에는 2001년 붕괴 직전의 프로그램보다 더 많은 조건이 붙었다. IMF는 스스로 이해하는 아르헨티나의 이익에 반해 행동하는 것이 아니며, 각국에 자국 통화 채권시장을 키우라고 권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것은 더딘 일이고, 구제 프로그램은 더 짧은 시계로 움직인다. 아르헨티나에 시장 접근을 되찾는다는 것은 다시 달러로 빌린다는 뜻이었다.

잠비아의 2020년 디폴트

2020년 11월 잠비아는 유로본드 이자를 지급하지 못하면서 코로나19 시기에 디폴트를 낸 첫 아프리카 국가가 되었다. 콰차는 2020년 한 해 동안 달러 대비 가치의 약 3분의 1을 잃었다. 잠비아의 대외부채는 2012년부터 2015년까지 발행된 총 30억 달러 규모의 달러 표시 유로본드가 큰 몫을 차지했고, 여기에 외화로 계약된 중국 대출과 2021년까지 40억 달러를 넘어선 수출 공급자 신용이 더해졌다. 최대 대출국은 중국이었다. 아르헨티나와 튀르키예에서처럼, 콰차가 1포인트 떨어질 때마다 그 달러 채무의 현지 통화 기준 무게가 커졌다.

부채 경감 협상은 몇 년을 끌었다. 잠비아는 2021년 초 G20의 새로운 공동 프레임워크에 따라 신청했지만, 중국 대출 기관과 서방 채권 보유자, 그 밖의 채권자들을 비슷한 조건으로 끌어들이는 일은 더디기만 했다. 잠비아는 2023년 6월 공적 채권자들과 합의했고, 2024년 3월 채권 보유자들과 조건에 합의했으며, 디폴트로부터 3년 반 이상이 지난 2024년 6월에야 채권 교환을 마쳤다. 길게 늘어진 이 과정은 부채 위기가 일어나는 곳, 즉 외화 부채를 진 개발도상국과, 그 위기를 해결하는 제도가 만들어진 곳 사이의 간극을 드러냈다.

개혁에 필요한 것

부분적인 탈출로, 즉 해외에서 자국 통화로 빌리는 방법은 도움이 되지만 일을 끝내 주지는 못한다. 외부 충격에 대한 노출을 줄이고, 자국 금리가 경제를 더 잘 움켜쥐게 해 준다. 하지만 통화 불일치의 일부가 외국 투자자의 대차대조표로 옮겨 가고, 압박이 닥쳐 그 투자자들이 빠져나가면 자본 유출이 통화 가치를 더 떨어뜨린다.

아이컨그린, 하우스만, 파니차는 신흥시장 통화 지수를 만들고, 세계은행과 그 밖의 AAA 등급 국제기구가 이 지수로 표시된 채권을 발행하자고 제안했다. 그러면 국제 투자자들은 단일 통화에 베팅하지 않고도 신흥시장 통화 포트폴리오에 분산 투자할 수 있고, 어느 한 대차대조표에 위험을 몰아넣지 않으면서 신흥시장 통화 자산에 대한 실질적 수요를 만들어 낼 수 있다. 이 제안은 의미 있는 규모로 채택되지 않았다. 서로 협력할 유인이 별로 없는 기관들 사이의 협력이 필요하고, 미국이 혜택을 누리는 달러 표시 자산에 대한 수요를 줄이기 때문이다.

더 근본적인 개혁안은 제2차 세계대전 중에 나왔다가 실행되기도 전에 폐기되었다. 1941년부터 1943년까지 전후 질서를 놓고 영국 수석 협상가로 나선 존 메이너드 케인스는 국제무역 결제를 위한 초국가적 통화 방코르를 제안했다. 방코르는 국제청산동맹이 발행할 예정이었다.

그 계획대로라면 어느 한 나라의 통화정책도 기축통화 특권을 낳지 않았을 것이다. 기축통화를 무역국 가운데 한 나라가 아니라 모든 무역국에 책임을 지는 기관이 발행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 체제는 대칭적인 조정 압력을 가하게 되어 있었다. 무역흑자를 계속 내는 나라는 초과 방코르 잔고에 대해, 적자국이 당좌대월에 대해 그러듯 수수료를 물어야 했다. 그래서 채무국뿐 아니라 채권국도 불균형의 대가를 치렀을 것이다. 케인스의 안대로라면 전후 초기 미국의 지속적인 무역흑자는 미국에 흑자를 줄이라는 압력을 낳았을 것이다. 대신 채택된 체제는 미국이 국제수지 적자를 내는 동안 외국 중앙은행들이 그 결과로 생긴 달러 준비금을 쌓도록 허용했고, 세계 금융 체제를 미국만이 통제하는 통화를 중심으로 짜 맞췄다.

미국은 케인스 안을 끝내 받아들이지 않았다. 브레턴우즈 회의의 의제를 정한 1944년 4월 공동성명 무렵에는 설계가 이미 해리 덱스터 화이트의 안정기금 쪽으로 기울어 있었고, 그해 7월 합의된 체제는 실제로는 금 태환 달러에 닻을 내렸다. 그 선택에 걸려 있던 것은, 1960년대에 당시 프랑스 재무장관이던 발레리 지스카르 데스탱이 “과도한 특권”이라 부른 기축통화 지위의 이득을 어느 나라가 거둬 갈 것인가였다. 그 특권이란 더 낮은 차입 비용, 어느 개발도상국에서든 부채 위기를 촉발했을 적자를 내고도 버틸 수 있는 능력, 전 세계에서 달러 표시 채무를 진 이들에게 어떤 결과가 미치든 국내 목적에 맞춰 통화정책을 펼 수 있는 능력이다.

미국은 1944년에 그 특권을 확보했고 지금도 쥐고 있다. 연준은 미국의 목적에 따라 금리를 정하고, 달러가 움직이면 수십 개 개발도상국의 현지 통화 기준 부채 부담도 함께 움직인다. 다극적 기축통화 체제든, 흑자국과 적자국 모두에 대칭적 조정을 부과하는 케인스식 청산 기구든, 그만한 규모의 개혁을 하려면 미국이 그 특권의 의미 있는 축소를 받아들여야 한다. 역사 기록 어디에도 미국이 그럴 뜻이 있음을 시사하는 대목은 없다. 국제기구 안에서 개혁으로 얻을 것이 가장 많은 나라들은 그것을 이룰 힘이 가장 적고, 개혁을 가로막을 수 있는 나라들은 지금 그 혜택을 거둬 가는 바로 그 나라들이다.

1997년 아시아 금융위기

타이 바트는 달러에 고정되어 있었다. 1997년 중반 이 고정환율은 투기적 공격을 받고 있었는데, 그 공격을 부추긴 요인 가운데 하나가 앞선 10년의 투자 붐 동안 쌓인 달러 표시 기업 부채였다. 타이는 1997년 7월 바트의 고정환율을 풀었고, 바트는 급락했으며, 바트로 환산한 달러 표시 채무는 훨씬 비싸졌다. 몇 달 만에 인도네시아, 한국, 말레이시아가 같은 흐름에 휘말렸다. 저마다 붐 동안 외화 기업 부채를 쌓았고, 전염의 압력 속에 통화가 떨어지자 저마다 그 부채 부담이 증폭되었다. 말레이시아는 IMF 프로그램을 거부하고 자본 통제를 실시했다. 타이와 인도네시아, 한국에서 긴축, 가파른 금리 인상, 구조조정 조건으로 이루어진 IMF의 대응은 당시에도 논란이 되었고 지금도 논란거리로 남아 있다.

위기 당시 세계은행 수석 이코노미스트였던 조지프 스티글리츠는 2002년, IMF가 강요한 재정 긴축이 심각한 불황을 더 깊게 만들었고 금리 인상이 연쇄 파산을 불러 신뢰를 회복하기는커녕 더 무너뜨렸다고 주장했다. IMF 정책이 경기 위축을 심화했는지, 아니면 그저 막지 못했을 뿐인지는 경제학자들 사이에서 아직도 논쟁거리다. 최초의 부채 증폭을 일으킨 메커니즘, 즉 달러 표시 채무에 대해 통화 가치가 떨어지는 현상에는 이견이 없다. 그것은 아르헨티나와 튀르키예에서 작동한 바로 그 메커니즘이었다.

통상적 서사와 그 수혜자들

2002년 초로 돌아가 보자. 1달러의 가치를 지니던 페소는 몇 달 만에 겨우 25센트 남짓으로 떨어졌다.

1990년대 내내 아르헨티나의 재정 운영은 자주 혼란스러웠고, 정치적 제약에 묶여 있었으며, 때로는 무모했다. 그러나 2002년의 부채 폭발을 주로 일으킨 것은 어떤 아르헨티나 정부도 혼자 힘으로는 끌 수 없는 메커니즘이었다. 그 증폭기는 아르헨티나가 재정을 더 잘 운영하는 것만으로는 벗어날 수 없는 통화 불일치에 내장되어 있었다. 당시 원죄는 국내 거버넌스의 질보다 경제 규모와 국제 금융시장의 구조를 훨씬 더 밀접하게 따라갔기 때문이다.

통상적인 설명은 재정 실패는 남기고 메커니즘은 빼 버린다. 위기를 아르헨티나가 실패한 결과로 읽고, 긴축과 조건부 지원을 처방으로 권하며, 새로운 달러 차입을 위기의 출구로 여긴다. 그러면 그 나라는 다음 순환에서 같은 메커니즘에 다시 노출된다.

이 설명은 남들이 빌릴 때 쓸 수밖에 없는 통화를 가진 나라들에도 잘 맞는다. 부채 위기의 원인을 그 위기를 겪는 나라에서 찾음으로써, 국제통화체제의 설계를 설명 바깥에 둔다. 조건부 지원을 거버넌스 실패에 대한 합리적 대응처럼 보이게 하고, 기축통화 발행국의 과도한 특권은 무엇이 위기를 낳았는지에 관한 어떤 표준적 설명에도 등장하지 않게 한다. 다음에 연준이 금리를 올리면, 찍어 낼 수 없는 달러를 빚진 모든 나라에서 똑같은 산술이 다시 돌아가기 시작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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