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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9조 6000억 달러가 세계 외환시장에서 거래된다. 세계가 하루에 소비하는 석유는 대략 1억 200만~1억 300만 배럴이다. 2026년 브렌트유 평균 가격 전망치인 배럴당 약 96달러로 치면 약 100억 달러어치다. 다시 말해 하루 통화 거래는 세계가 하루에 태우는 모든 석유의 가치보다 1000배 가까이 크다. 이 비교에는 단서가 필요하다. 달러는 석유나 밀과 같은 범주의 상품이 아니다. 원자재 교역을 결제하는 통화는 그 통화가 가격을 매기는 원자재와 규모의 자릿수부터 다르다. 그러니 두 숫자를 나란히 놓는 일은 부조리에 가깝다. 그 이유를 따져 보면 세계 금융의 배관 어디에 권력이 자리하는지, 그리고 미국 달러의 지위가 어디에서 단단하고 어디에서 취약한지가 드러난다.
상품 순위표와 그 한계
어떤 상품(commodity)이 가장 많이 거래되느냐는 질문의 답은 어떤 종류의 거래를 재느냐에 달려 있다. 톤, 배럴, 세제곱미터, 부셸로 세는 물리적 물량은 하나의 답을 내놓는다. 선물과 현물 거래의 명목 가치로 재는 금융 계약 규모는 또 다른 답을 내놓으며, 두 답에는 공통점이 거의 없다.
원유는 에너지 부문의 최중량급이다. 석유와 기타 액체연료의 세계 소비량은 하루 대략 1억 200만~1억 300만 배럴에 이르고, 이 수요가 유조선 항로와 송유관, 저장 시설을 오가는 그만큼의 실물 교역을 움직인다. 천연가스는 두 번째로 큰 에너지 상품이지만 시장의 구조가 다르다. 가스관 인프라 탓에 가스 가격은 하나의 세계 가격으로 수렴하지 않고 지역별 기준가격(유럽 TTF, 미국 헨리허브, 아시아 JKM)으로 쪼개진다. 이렇게 쪼개져 있다 보니 석유와 견주기 어렵고, 가스의 “거래량”을 세계 단위로 의미 있게 합산하기도 어렵다.
밀, 대두, 옥수수 같은 농산물은 물리적 톤수로는 엄청나며, 세계에서 유동성이 가장 풍부한 선물시장 몇 곳을 떠받친다. 커피는 고부가가치 농산물 수출품이지만 곡물에 비하면 작다. 이들 중 어느 것도, 하나씩이든 모두 합쳐서든, 금융 거래 규모로는 석유 교역에 근접하지 못한다.
외환은 또 다른 차원에 있다. 2025년 4월 외환시장의 하루 거래액은 9조 6000억 달러에 이르렀다. 세계 밀 교역의 연간 금액(대략 500억 달러)이나 커피 원두 수출액(2024년 약 340억 달러)의 몇 배나 되는 규모다. 하루 금융 거래 규모라는 잣대로 보면 통화, 특히 미국 달러는 어떤 실물 상품과도 같은 범주에 있지 않다.
반론은 뻔하다. 통화를 “상품”이라 부르는 것은 범주 오류라는 것이다. 일상에서 “상품”은 물리적인 것, 즉 재배하거나 캐내거나 정제한 무언가를 뜻하게 됐다. 경제학자들은 이 말을 더 넓게, 표준화되어 서로 바꿀 수 있는 모든 재화에 쓰지만, 그런 용법조차 대개 물질성의 감각을 간직한다. 반면 통화는 발행되고 관리되며, 그 보유자가 가진 것은 하나의 청구권이다.
무엇이 상품이 되는가
경제학에서 상품이란 표준화되고 대체 가능한 모든 재화, 즉 한 단위가 같은 등급의 다른 단위와 서로 바꿀 수 있는 재화를 말한다. 이 정의에 따르면 통화도 자격이 있다. 1달러는 1달러이고, 외환시장은 구조적으로 보면 각국 통화를 사고파는 상품시장이다. 트레이더들 역시 주요 통화를 다른 유동성 높은 상품과 똑같이 다룬다. 통화는 석유나 밀에 쓰이는 것과 같은 수단(선물, 옵션, 스와프)으로 사고팔리고, 보관되고, 헤지된다.
이 경계를 그을 만한 이유가 있다. “가장 많이 거래되는 상품”은 물리적인 것이어야 한다는 통념이 세계경제가 실제로 돌아가는 방식을 가리기 때문이다. 금융 청구권 위에 세워진 체제는 톤으로 잴 수 없다.
달러가 이기는 이유
2025년 4월 미국 달러는 전체 장외 외환 거래의 89.2%에서 한쪽 통화로 등장했다. 장외 거래란 은행과 딜러가 거래소를 거치지 않고 서로 직접 맺는 거래를 말한다. 2022년의 88.4%보다 높아진 수치로, 달러의 비중은 여전히 오르고 있다. 모든 거래에는 두 통화가 끼므로 전체 통화의 비중을 더하면 200%가 되고, 한 통화가 가질 수 있는 최대 비중은 100%다. 두 번째로 많이 거래되는 통화인 유로는 28.9%의 거래에 등장했다.
GDP가 세계 생산의 대략 4분의 1인 나라로서는 놀라운 수치다. 단순한 의미의 시장 선호로는 이 수치가 설명되지 않는다. 이 수치는 세계 교역 체제의 구조를, 구체적으로는 미국이 거래 당사자이든 아니든 국제 교역의 송장을 달러로 발행하는 관행을 반영한다.
수출 송장 통화, 즉 국경을 넘는 교역 계약을 표시하는 통화를 보면 그 관행이 얼마나 멀리 미치는지 알 수 있다. 1999년부터 2019년까지 아메리카 대륙에서는 교역의 96%, 아시아·태평양에서는 74%, 유로가 앞서는 유일한 지역인 유럽을 제외한 그 밖의 지역에서는 79%가 달러로 송장이 발행됐고, 이후 어떤 데이터도 이 패턴을 뒤집지 못했다. 말레이시아산 팜유를 사는 일본 기업은 대개 엔이나 링깃으로 거래하지 않는다. 계약서는 달러로 쓰이고, 대금은 달러로 치러지며, 그 사슬 어딘가에서 외환 거래가 한 나라의 통화를 달러로, 그리고 결국 달러를 또 다른 통화로 바꾼다. 하루 거래액 수치가 세는 것이 바로 그 외환 거래다.
9조 6000억 달러는 달러 패권의 원인이라기보다 증상이다. 그 거래액의 대부분은 수출업체가 송장 대금을 결제하는 거래보다 은행과 펀드가 서로 하는 거래에서 나오지만, 이들이 달러로 거래하는 것은 교역과 부채, 준비자산이 달러로 표시되기 때문이다. 이렇게 보면 그 규모도 덜 놀랍다. 시장이 이만큼 큰 것은 수십 년 전 세계 교역의 가격을 무엇으로 매길지에 관해 내린 결정들 때문이다.
의존의 설계
규모도 한몫했지만, 달러가 세계의 결제 통화가 된 것은 단순히 미국이 가장 큰 경제였기 때문도, 시장 선호만의 결과도 아니다. 전후 통화 질서는 처음부터 달러를 중심으로 의도적으로 지어졌다.
1944년 브레턴우즈 회의에서 당시 세계 최대 채권국이자 세계 금 보유고의 과반을 쥐고 있던 미국은 달러를 국제통화체제의 닻으로 삼는 합의를 얻어 냈다. 다른 통화들은 달러에 고정됐고, 달러는 온스당 35달러에 금으로 태환됐다. 이 체제를 감독하기 위해 국제통화기금(IMF)이, 재건에 자금을 대기 위해 세계은행이 세워졌다. 브레턴우즈 체제에서 달러는 국제적 채무를 결제하는 단위였고, 환율을 표시하는 단위였다.
1971년 8월 리처드 닉슨이 달러의 금 태환을 정지하고 이후 2년에 걸쳐 브레턴우즈의 고정환율이 무너져 갔을 때도 달러는 중심 자리를 잃지 않았다. 1971년 무렵 세계 금융 체제는 브레턴우즈의 규칙보다 더 큰 무언가, 곧 유로달러 시장을 중심으로 짜여 있었다. 미국 밖에 예치된 달러 표시 예금은 1950년대와 1960년대 내내 꾸준히 불어나, 어느 정부도 직접 통제할 수 없는 거대한 달러 유동성의 저수지를 만들어 냈다. 미국 국채시장은 어떤 대안도 따라올 수 없는 깊이와 유동성, 법적 예측 가능성을 제공했다.
브레턴우즈 이후 달러의 지위는 오히려 제약이 덜했다. 달러를 금으로 바꿔 줄 의무에서 풀려난 미국은 금 태환이 이론상 부과하던 규율 없이 적자를 낼 수 있었다. 그다음에 벌어진 일은 이미 자리 잡고 있던 이 달러 중심성을 토대로 세워졌다.
1974년, OPEC의 석유 금수 조치가 남긴 여파 속에서 워싱턴과 리야드는 양자 간 정치적 합의를 맺었다. 6월에는 헨리 키신저 국무장관과 당시 제2부총리 겸 내무장관이던 파흐드 왕자가 미국·사우디 경제협력공동위원회를 출범시켰고, 7월에는 윌리엄 사이먼 재무장관이 사우디아라비아로 건너가 왕국이 석유 수입의 잉여를 미국 국채에 재투자한다는 비밀 합의를 얻어 냈다. 이 합의는 한 번도 조약으로 공식화되지 않았고, 사우디아라비아에 석유를 달러로 팔라고 강제한 문서도 없었다. 왕국은 자국 석유 산업이 늘 써 온 통화로 계속 송장을 발행했다. 석유 수출 가격을 달러로 매기고, 잉여 달러 수입을 미국 국채와 달러 표시 금융자산에 재투자한 것이다. 미국은 안보 보장과 군사 장비, 정치적 후원을 제공했다. OPEC이라는 기구 차원에서는 석유 가격을 달러로 매기겠다는 공식 약속에 서명한 적이 없다. 이 관행은 카르텔 전반에서 유지됐고, 네트워크 효과를 통해 다른 원자재 시장의 달러 가격 책정을 강화했다. 세계 최대의 에너지 상품이 어디서나 달러로 가격이 매겨지자, 다른 원자재를 다른 통화로 표시하려면 소수의 시장만이 치르기로 하는 비용이 들었다. 다만 그 비용을 치르는 시장도 있다. 유럽의 가스 기준가격은 유로로 표시된다.
페트로달러 환류는 어떻게 작동하는가
페트로달러의 순환 고리는 이렇게 돌아간다. 산유국은 달러로 가격이 매겨진 판매에서 달러 수입을 번다. 이 수입은 어딘가에 투자해야 하는 달러 흑자로 쌓인다. 1970년대 중반 이후 그 흑자의 상당 부분이 미국 국채와 미국 금융자산으로 흘러들었고, 경제학자들은 이 과정을 페트로달러 환류라고 부른다. 그 결과는 구조적이다. 산유국은 미국 정부의 차입을 뒷받침해 미국 금리를 낮게 유지하고, 다른 투자자들이 안전성과 유동성을 얻기 위해 의존하는 미국 국채시장의 깊이를 더한다. 그 깊이가 세계의 달러 수요를 유지하고, 그와 함께 애초에 흑자를 낳는 송장 관행도 유지한다.
이 합의는 미국이 무역적자를 지속할 수 있는 능력에도 보조금을 준다. 다른 나라들은 석유를 사고 준비자산으로 보유하기 위해 달러가 필요하고, 그럴 의무가 없는데도 달러를 받아들이기 때문이다. 원래의 합의는 양자적이고 비공식적이며 미국 안보 공약의 신뢰도에 기대고 있었기에 조약 문구로 쓰여 있지 않고 재협상도 필요 없다. 그러나 그 지속성은 미국이 이 합의를 유지할 가치가 있게 만드는 안보 공약과 금융 신뢰도를 지키느냐에 달려 있다.
석유는 거의 모든 공산품의 투입 비용이므로, 에너지 가격 결정에서 달러가 차지하는 지위는 바깥으로 연쇄적으로 번진다. 인도네시아산 원유를 사는 베트남의 제조업체, 연료값을 치르는 그리스의 해운사, 천연가스 원료를 구매하는 브라질의 비료 생산업체까지, 이 모든 거래가 달러로 이뤄지거나 달러 기준가격에 맞춰 표시된다. 이 통화는 미국과 직접 아무 관련이 없는 공급망 깊숙이까지 뻗어 있다.
석유 가격이 왜 달러로 매겨지는지를 이해하는 것과 그 달러가 어떻게 오가는지를 이해하는 것은 같은 일이 아니다.
배관: 환거래은행과 SWIFT
국제 지급은 지급인과 수취인 사이의 직통 경로로 움직이지 않는다. 대부분의 은행은, 미국 밖의 대형 은행들까지 포함해, 다른 모든 관할권의 은행과 직접 양자 관계를 맺고 있지 않다. 이들은 환거래은행을 통해 국경 간 지급을 처리한다. 환거래은행은 대개 미국 규제를 받는 더 큰 금융기관으로, 외국 상대 은행을 대신해 계좌를 보유하고 그 계좌를 통해 거래를 처리한다.
미국 달러를 청산하는 거의 모든 은행은 직접 또는 중개기관의 사슬을 거쳐 미국 규제를 받는 기관의 계좌를 통해 청산한다. 그 결과 미국 은행 규제 당국은, 그리고 그들을 통해 미국의 법 집행 기관과 제재 당국은, 미국 당사자가 끼어 있든 없든 달러로 표시된 국제 거래 대부분에 대해 사실상의 관할권을 갖는다. 싱가포르 기업과 남아프리카공화국 기업 사이의 거래에 달러 송장이 발행되고 뉴욕의 환거래은행을 통해 결제된다면, 두 기업 모두 미국에 근거지를 두지 않았는데도 그 거래는 미국의 규제 감독 아래를 지나간다.
국제은행간통신협회(SWIFT)는 200개가 넘는 국가와 지역의 1만 1500곳이 넘는 금융기관이 국제 송금 뒤에 놓인 지급 지시를 주고받는 메시지 네트워크다. 2025년 1월 SWIFT를 통해 전송된 지급에서 달러가 차지하는 비중은 금액 기준으로 50%를 살짝 넘어, 당시로서는 SWIFT가 2023년 중반 데이터 집계 방식을 바꾼 이후 최고치를 기록했고, 2026년 여름에도 여전히 대략 절반이거나 그보다 약간 많았다. SWIFT가 달러 전용 인프라는 아니다. 유로, 파운드, 엔 등 다른 통화의 거래도 모두 SWIFT를 거친다. 그러나 SWIFT 트래픽에서 달러가 차지하는 비중은 그토록 많은 국제 거래에서 달러 청산을 필수로 만드는 환거래은행 구조를 반영하는 동시에 강화한다.
달러 권력의 원천은 SWIFT보다 한 층 아래, 미국 규제 당국이 세계 어디서든 거의 모든 달러 거래에 손을 뻗을 수 있게 해 주는 환거래은행 구조에 있다. SWIFT는 그 권력을 전달하고 그 구조를 눈에 보이게, 서로 맞물리게 만든다. 지렛대 자체는 청산의 층위에서 작동한다.
러시아, SWIFT, 그리고 배제의 대가
2022년 3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유럽연합은 미국, 영국과 공조해 러시아 은행 7곳을 SWIFT 메시지 네트워크에서 퇴출하도록 했다. VTB은행, 브네셰코놈방크, 로시야방크, 소브콤방크, 오트크리티예은행, 노비콤방크, 프롬스뱌지방크다. 러시아 최대 은행인 스베르방크는 유럽연합의 에너지 대금 흐름을 지키기 위해 처음에는 제외됐다가 약 석 달 뒤 후속 제재에서 퇴출됐다. 즉각적인 효과는 상당했다. 러시아 금융기관들은 국제 지급의 표준 인프라에 접근할 수 없게 됐고, 무역금융과 환거래, 외환 거래가 꼬였다.
장기적인 효과는 더 복잡했다. 러시아는 자국 금융 메시지 시스템인 SPFS의 사용을 서둘렀고, 중국, 인도 등 교역 상대국과의 양자 결제 협정을 넓혔다. 이미 가동 중이던 중국의 위안화 국제결제시스템(CIPS)은 SWIFT에 대한 노출을 줄이려는 비서방 금융기관들에게 더 매력적인 대안 인프라가 됐다. 당시 아직 BIS 혁신허브의 주관 아래 있던 mBridge 프로젝트는 개발 의제에서 한층 앞자리로 올라섰다. 2022년의 퇴출은 SWIFT와 연결된 달러 인프라의 영향력을 보여 줬고, 동시에 그 특유의 약점도 드러냈다. 외교 정책 수단으로서 배제가 지닌 바로 그 힘이 다른 행위자들에게 대안을 만들 구체적인 동기를 준다는 것이다. 그 동기는 이미 병행 시스템의 구축을 앞당기고 있다. 이 시스템들은 달러에 대한 의존을 주변부에서 줄이지만 달러 체제를 대체하지는 않는다.
환거래은행 구조는 달러 지배를 운영의 차원에서 굳혀 놓는다. 대안이 글자 그대로 불가능하지는 않다. 그러나 믿을 만한 대안을 세우려면 수년간의 투자와 규제 공조, 유동성 공급이 필요하고, 이는 정치적 선언으로 건너뛸 수 없다. 미국이 그 뿌리 깊은 지위에서 얻는 이점에는 1960년대부터 이름이 있었다.
과도한 특권
이 말을 만든 사람은 1960년대 중반 프랑스 재무장관을 지내던 발레리 지스카르데스탱이며, 그것은 구체적인 무언가를 가리켰다. 미국이 자국만 발행할 수 있는 통화로 대외 부채를 쌓을 수 있는 능력이다. 이 말은 흔히 샤를 드골의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드골은 분명 이 특권을 가장 극적으로 비판한 사람이었다. 1965년 2월 4일 기자회견에서 드골은 그 불만을 공식적으로 제기했다. 미국은 사실상 공짜로 세계에 빚을 질 수 있고, 다른 나라들이 보유할 수밖에 없는 달러로 적자를 메운다는 것이었다. 그의 설명에 따르면 준비통화 발행국은 특권을 누리고 나머지 모두가 그 대가를 치렀다.
이 특권에는 세 가지 구체적인 차원이 있고, 이들은 스스로를 강화하는 하나의 체계로 맞물려 돌아간다. 지스카르데스탱의 한마디는 그 체계를 하나의 불만으로 압축한 것이다.
세계 각국의 중앙은행은 달러를 준비자산으로 보유한다. 세계 외환보유액에서 달러가 차지하는 비중은 2026년 중반 56.7%였다. 이 준비자산 수요는 미국 국채에 대한 구조적 수요를 만든다. 외국 중앙은행이 주로 미국 국채를 사들이는 방식으로 달러를 쌓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수요는 미국의 차입 비용을 낮춰 준다. 낮은 차입 비용은 페트로달러 합의가 의존하는 안보 보장 뒤의 군사적·정치적 공약에 자금을 대는 데 보탬이 되고, 그렇게 송장 관행과 준비자산 수요를 다시 강화한다. 기존의 지위가 이 자리를 보호하는 힘은 흔히 생각하는 것보다 약하다. 1920년대에는 달러와 파운드 스털링이 그 역할을 나눠 맡았기 때문이다. 그 지위는 미국이 재정과 금융의 살림을 건전하게 꾸리는 동안에만 유지된다.
두 번째 차원은 국제수지 위기를 일으키지 않고 경상수지 적자를 지속할 수 있는 능력이다. 다른 나라들은 수입 대금을 치르려면 외화를 벌어야 한다. 적자를 내는 나라는 언젠가 그것을 바로잡아야 하고, 그 방법은 통화 가치 하락이거나 내수 조정이다. 미국은 수입 대금을 달러로 치르고, 다른 나라들은 석유 계약을 결제하고 대외 부채를 갚고 준비자산으로 보유하기 위해 그 달러가 필요하다. 미국은 이것을 수입원으로 바꾼다. 달러로 단기 차입을 해서 위험이 더 큰 해외 자산에 장기 투자하고, 지속적인 초과 수익을 거둔다. 거래의 다른 면은 세계적 위기 때 미국이 큰 평가손실을 떠안으며, 따라서 초과 수익은 나머지 세계가 내는 보험료처럼 작동한다는 점이다.
세 번째 차원은 제재의 힘이다. 달러 인프라 덕분에 미국은 자국이 치르는 직접 비용은 비교적 적게 들이면서 적대국을 금융적으로 고립시킬 수 있다. 달러 교역 흐름에 깊이 편입된 나라에게 달러 청산에서의 배제, 또는 유럽의 감독 당국이 워싱턴과 함께 행동할 때 SWIFT에서의 배제는 경제적으로 심각한 타격이 될 수 있으며, 다른 어떤 통화 발행국도 이에 견줄 만한 지렛대를 쥐고 있지 않다.
이 비판에는 국내판도 있다. 특권은 주로 미국 금융 부문과 정부의 차입 능력에 돌아간다. 그 비용, 즉 만성적인 경상수지 적자와 억눌린 수출 경쟁력, 공동화된 제조업 부문은 교역재 산업에 종사하는 미국 노동자들에게 불균형하게 떨어진다. 달러 지배는 지속적인 적자를 더 쉽게 유지할 수 있는 조건을 강화한다. 다만 준비통화 지위와 제조업 쇠퇴 사이의 인과관계에는 이론이 있고, 기술 변화와 노동시장 제도, 무역 정책도 각기 상당한 독자적 무게를 지닌다. 이런 구조적 결과에 대한 정치적 반발은 이제 미국 정치의 지속적인 특징이 됐고, 그것은 지정학적 경쟁이 미치지 못하는 방식으로 특권의 국내적 지속 가능성을 좌우한다.
진짜 위협과 가짜 위협
달러가 밀려날 것이라는 가장 요란한 주장은 지정학적 선언에서 나온다. 브릭스 정상회의는 탈달러화 의제를 발표하고, 페트로위안이 거론되며, 중국과 러시아 관리들은 달러 패권의 종말이 임박했다고 공언한다. 이런 주장은 배관의 현실과 맞닥뜨리면 버티지 못한다. 달러 지배가 영원하지는 않을지 모르지만, 그것은 선언으로는 대체할 수 없는 인프라 위에 서 있다.
국제 금융 체제에서 위안화가 차지하는 위치가 그 간극을 보여 준다. 2026년 중반 위안화는 세계 외환보유액의 약 2%, SWIFT를 통한 세계 지급액의 약 3%를 차지해 통화 가운데 5위였고, 2024년 중반의 약 4.5%에서 내려왔다. 어느 수치도 달러를 밀어낼 문턱에 선 통화를 가리키지 않는다. 구조적 제약은 태환성이다. 중국은 자본 통제를 유지하고 있어, 달러 규모의 준비통화에 필요한 위안화의 자유로운 국경 간 이동을 막고 있다. 외국 중앙은행과 금융기관은 준비자산을 최대한 적은 제약 아래 보유하고, 옮기고, 운용하기를 원하며, 위안화는 현재 그 기대에 크게 못 미친다. 자본 계정 자유화는 기술적으로 가능하므로 이 조건이 영구적일 필요는 없다. 그러나 이것은 브릭스 공동성명이 다루지 않는 실질적 제약이며, 이를 풀려면 상당한 국내적 비용을 수반하는 정책 선택이 필요하다.
지금 일어나는 일의 대부분은 탈달러화보다 디리스킹에 가깝다. 각국은 외환보유액을 다변화하고, 양자 결제 협정을 넓히고, 대안 지급 시스템에 투자하는 방식으로 달러 인프라에 대한 노출을 줄이고 있지만, 쓸 만한 대체재를 갖고 있지는 않다. 이것들은 위험 회피 수단이며, 모두 합치면 달러의 역할을 대체하지 않은 채 희석한다.
준비자산 다변화는 진짜 위협 가운데 가장 점진적이고 가장 덜 극적이다. 세계 외환보유액에서 달러가 차지하는 비중은 2001년 약 71.5%에서 2026년 중반 56.7%로 떨어졌다. 하락은 느리고 직선적이지 않아서, 안정기가 이어진 해들도 있었고 부분적인 반등까지 있었지만, 사반세기에 걸친 방향은 한결같다. 약 15%포인트의 하락은 중앙은행 포트폴리오의 구성이 구조적으로 바뀌었음을 뜻한다. 달러는 여전히 지배적이지만 그 지배력은 주변부에서 줄어들고 있으며, 그 축소에는 후계자가 필요하지 않다.
장기적으로 더 파괴적인 것은, 비록 현실화하는 속도는 더디더라도, 대안 지급 인프라의 구축이다. 중국의 위안화 국제결제시스템(CIPS)은 가동 중이며 커지고 있다. BIS의 주관 아래 개발된 다중 통화 국경 간 지급 플랫폼인 mBridge 프로젝트는 2024년 중반 최소 기능 제품 단계에 이르렀고, 2024년 10월 국제결제은행은 이를 참여 중앙은행과 통화 당국, 즉 중국, 홍콩, 태국, 아랍에미리트, 그리고 2024년 초에 중앙은행이 정식 참여자로 합류한 사우디아라비아에 넘겼다. 사우디아라비아는 2025년 5월 개념 검증을 마친 뒤 참여를 끝냈는데, 이 탈퇴는 2026년 9월에야 알려졌다. 마카오 금융관리국은 2026년 그에 앞서 합류해 6월 2일 마카오 은행들을 위해 시스템을 가동했다. 2025년 말까지 mBridge는 누적 거래액 약 550억 달러를 처리했고, 그 가운데 약 95%가 중국의 디지털 위안화로 결제됐다. 이 규모는 SWIFT의 하루 트래픽에 비하면 작다. 중요한 것은 그것이 계속 커지느냐다.
CIPS와 mBridge: 대안의 배관
중국의 위안화 국제결제시스템인 CIPS는 2015년 위안화 표시 환거래·결제 시스템으로 출범했다. 국제 금융기관이 달러 환거래 사슬 바깥에서 위안화 지급을 청산하고 결제할 수 있도록 설계됐지만, CIPS 지급의 대부분은 여전히 SWIFT 메시지망을 타고 오간다. 2025년 말 기준 CIPS에는 124개국과 지역에서 1800곳에 가까운 참가기관이 있었고 대부분 간접 참가기관이었다. 거래 규모는 여전히 SWIFT의 일부에 불과하지만 CIPS는 커지고 있으며, 특히 중국과 동남아시아, 중동, 아프리카 일부를 잇는 교역 통로에서 그렇다.
mBridge는 종류가 다른 프로젝트다. 참여 상업은행들이 중앙은행 디지털 통화로 환거래은행을 완전히 건너뛰고 국경 간 지급을 직접 결제할 수 있도록 설계된, 여러 중앙은행의 디지털 통화 플랫폼이다. 처음에는 BIS 혁신허브 아래에서 개발됐고, 지금은 중국, 홍콩, 태국, 아랍에미리트, 마카오의 중앙은행과 통화 당국이 운영한다. 2025년 말까지 처리한 약 550억 달러의 거래는 최소한의 실행 가능한 규모에서 이뤄진 개념 검증에 해당한다. CIPS도 mBridge도 SWIFT를 곧 대체할 존재는 아니다. 둘 다 비달러 결제의 기술적 장벽을 주변부에서 낮추는 진지한 인프라 투자다.
가장 눈에 덜 띄면서 가장 가까이 있는 위협은 국내에 있다. 특권에는 지속적인 경상수지 적자가 따라왔다. 미국이 국채와 금융자산을 내주고 세계의 달러 저축을 흡수하는 가운데, 미국인들이 이 거래와 결부시키는 비용은 이제 국내 정치를 관통한다. 특권을 유지하려면 자본 계정을 개방하고 국채시장의 깊이를 유지하며 국제 공약에 자금을 대려는 정치적 의지가 필요하다. 그 의지는 보장되어 있지 않으며, 그 의지가 안에서부터 깎여 나가는 것은 외부 경쟁국의 어떤 통화보다 더 가까운 위협이다.
그렇다면 중요한 위협은 내부적이고 점진적이다. 특권이 국내에 지우는 비용을 정치적으로 감당할 수 있느냐, 그리고 자신이 통제할 수 없는 체제에 대한 의존을 줄일 구체적 동기를 가진 행위자들이 대안 인프라를 느리게, 대체로 보이지 않게 쌓아 가느냐다.
희석
그 자체로 보면 하루 9조 6000억 달러는 원유를 초라해 보이게 하고 달러를 이례적으로 보이게 하는, 그저 큰 숫자일 뿐이다. 그것을 세운 메커니즘은 눈에 보였고 의도적이었다. 브레턴우즈의 회의, 헨리 키신저와 윌리엄 사이먼이 협상한 1974년의 합의, 세계의 달러가 뉴욕을 거치게 하는 청산 시스템이 그것이다. 그것을 침식할 메커니즘은 잘 보이지 않는다. 준비자산 비중의 느린 하락, 늘어나는 CIPS 참가기관 명단, 거래 규모가 아직 작은 디지털 플랫폼, 그리고 특권의 비용이 떠안을 가치가 없다고 결론 내린 국내 정치 연합이 그렇다.
이 가운데 어느 것도 달러를 밀어내는 사건은 아니다. 이들이 합쳐 내는 효과는 희석, 곧 달러 밑에 깔린 배관의 점진적 다변화다. 그 밑의 설계가 계속 바뀌는 동안에도 다음 외환 거래 조사에서 달러의 비중은 거의 움직이지 않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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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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