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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제금융 패키지는 1997년 방콕에, 1998년 모스크바에, 2001년 부에노스아이레스에, 2010년 아테네에 도착했다. 조건은 매번 한 가지 주제의 변주였다. 공공 지출을 줄이고, 지켜야 할 자국 통화가 있는 곳에서는 금리를 올리고, 국유 자산을 팔 것. 이 모든 일이 외국 자본에 열린 채로 남은 경제에서 벌어졌다. 정치적 여파도 공통된 궤적을 그렸다. 패키지를 받아들인 정부는 무너지거나 신뢰를 잃었고, 그 뒤에 온 정치는 그에 대한 반작용 위에 세워졌다. 태국과 아르헨티나, 그리스에서는 조건에 정면으로 맞선 운동들이 그 정치를 세웠다.
네 사건은 세 대륙과 13년에 걸쳐 있지만, 이 위기들을 다루는 대중적 서술은 좀처럼 이들을 하나의 이야기로 엮지 않는다. 태국의 정치적 단절은 동남아시아 포퓰리즘으로, 러시아의 붕괴는 탈소련의 병리 현상으로, 아르헨티나는 페론주의로(마치 그 단어가 문제에 이름을 붙이는 데 그치지 않고 문제를 설명해 주기라도 하듯), 그리스는 유럽의 부채 관리 실패로 분류된다. 각 사건은 저마다 특유의 원인과 정치적 결과, 처방을 지닌 지역의 이야기가 된다. 정치학자들은 긴축 프로그램 뒤에 따라오는 시위를 목록으로 정리했고 IMF와 세계은행의 대출이 정부를 무너뜨리는지 검증했는데, 결과는 조건부였고 엇갈렸다. 그 전문 문헌 바깥에서 이 패턴에는 통용되는 이름이 없다.
이 사건들 하나하나를 날씨나 천재지변이라도 되는 양 “위기”라고 부르는 것은 하나의 선택이고, 이들을 따로따로 분류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두 선택 모두 특정한 이해관계에 복무한다. 네 사례를 한데 묶어 서술하면 구제금융 자체가 다시 이야기 속으로 들어온다.
표준 패키지가 하는 일
흔히 구조조정이라는 이름으로 뭉뚱그려지는 IMF의 위기 프로그램에는 세 가지 핵심 요소가 있다. 각 요소가 실제로 무엇을 하는지 보면 정치적 후폭풍이 왜 매번 같은 선을 따라 번지는지 설명된다.
첫째 요소는 재정 긴축이다. 기초재정수지 흑자를 내기 위해 정부 지출을 삭감한다. 내세운 목적은 부채의 지속 가능성이다. 실제로는 병원과 학교, 보조금에 쓰이던 돈이 대외 부채 상환으로 돌아간다. 국내 주민은 삭감을 떠안고 외국 채권자는 상환금을 받는다.
둘째 요소는 금리 인상이다. 명목상으로는 통화를 방어하고 인플레이션을 잡기 위해 금리를 올린다. 기업과 농민이 은행 신용에 기대는 경제에서 그 효과는 뻔하다. 차입 비용이 치솟고, 한계 기업이 쓰러지고, 농촌 채무자는 빚을 감당할 수 없게 된다. 자산이 헐값에 나오고, 그것을 거둬들이기에 가장 좋은 자리에 있는 쪽은 경화나 여유 신용을 가진 이들, 흔히 외국 투자자와 펀드다. 자산을 내놓는 빚진 소유주들은 대개 그 안에 들지 못한다.
조지프 스티글리츠는 세계은행 수석 경제학자로 일하며 아시아 위기를 안에서 지켜보았다. 2002년 그는 IMF의 고금리 처방이 빚을 많이 진 동아시아 기업 수천 곳을 파산으로 몰아넣고 금융 공황을 깊은 경기 침체로 바꾸어 놓았으며, 아직 경화를 쥔 사람이면 누구든 집어 갈 수 있도록 부실 자산을 탁자 위에 남겨 두었다고 주장했다.
셋째 요소는 강제 민영화다. 정부가 지출을 줄이고 금리를 올리는 사이 경제가 쪼그라드는 재정 압박 속에서 국유 자산이 매물로 나온다. 현금을 손에 쥔 매수자가 방금 자기 돈의 가치가 깎인 국내 저축자인 경우는 드물다. 인프라와 공공 설비, 항만, 은행이 투매 시장에서 매겨진 가격에 공공이나 국내의 손을 떠나 외국 소유주에게 넘어갈 수 있다.
시점도 중요하다. 매각은 재정 수축이나 신용 가뭄과 같은 프로그램 안에 일정이 잡혀 있으므로, 자산 가격이 떨어지고 파는 쪽이 절박한 바로 그때 이루어진다. 지출을 줄이고, 자국 통화가 추락하는 것을 지켜보고, 사회 서비스 위기를 맞는 일을 한꺼번에 겪고 있는 정부는 항만과 전력 회사를 팔 조건을 협상하기에 유리한 처지가 아니다.
이 장치가 누구의 이익을 보호하는지는 IMF의 지배구조가 설명해 준다. 미국은 IMF 의결권의 약 16.5%를 보유한다. 주요 결정에는 85%의 특별 다수가 필요하므로 이 지분은 사실상의 거부권이 된다. G7은 합쳐서 약 41%를 보유한다. 의결권은 쿼터를 따르므로 가장 큰 채권국들이 가장 큰 무게를 지닌다.
말레이시아, 1998년: 대조 사례
아시아 위기가 말레이시아에 닥치자 정부는 처음에는 스스로 정책을 긴축했다. 그러다 1998년 9월, 마하티르 모하맛 총리는 반대 방향으로 돌아섰다. 그는 IMF를 불러들이기를 거부하고, 링깃을 달러당 3.80링깃에 고정하고, 자금 유출을 막기 위해 전면적인 자본 통제를 도입했으며, 금리를 올리는 대신 내렸다. 말레이시아는 빠르게 반등했고, 경제학자 이선 캐플런과 대니 로드릭은 훗날 말레이시아의 정책이 IMF 프로그램에 비해 더 빠른 회복을 낳았고 고용과 실질임금의 감소 폭도 더 작았다는 결과를 내놓았다. 당연히 나올 반론은 말레이시아가 특수한 경우였고 한국과 태국도 거의 같은 시기에 회복했다는 것이다. 두 경제학자는 그 두 나라의 위기가 진정됐을 때 말레이시아의 위기는 여전히 깊어지고 있었다고 응수한다.
1997년: 원형
태국 바트화는 1990년대 중반 내내 달러에 고정돼 있었다. 고성장 경제에 돈을 빌려주던 외국 채권자들에게는 편리한 장치였지만, 그 밑에 깔린 경상수지의 취약성을 가렸다. 자본 흐름이 역전되자 태국중앙은행은 고정환율을 지키느라 외환보유액을 빠르게 소진했다. 1997년 7월 2일, 중앙은행은 손을 들고 변동환율제로 넘어갔다. 바트화는 곧바로 폭락했고 이후 몇 달 동안 계속 떨어졌다. 뒤이은 전염은 몇 주 만에 지역 전체로 번졌다.
IMF는 세계은행 및 역내 대출 기관들과 함께 태국을 위해 172억 달러 규모의 패키지를 꾸렸다. 조건은 금리 인상, 재정 긴축, 부실 금융기관 폐쇄였다. 조건을 받아들였던 차왈릿 용짜이윳 정부는 1997년 11월에 무너졌다. 추안 릭파이의 민주당이 집권해 조정을 집행했다.
탁신 친나왓은 1998년 7월 타이락타이당(“태국인은 태국인을 사랑한다”)을 등록했다. 당명 자체가 정치적 선언이었다. 국가 경제 주권을 내주었다는 인식을 정면으로 겨냥한 이름이었다. 당 강령의 상당 부분은 패키지에 대한 응답처럼 읽혔다. 마을 개발 기금은 금리 인상으로 숨통이 막힌 곳에 신용을 공급했고, 농민 부채 상환 유예는 그 금리 환경이 낳은 지급불능 사태를 겨냥했다. 30바트 의료 제도는 한 걸음 더 나아가, 건강보험을 가져 본 적 없는 수백만 태국인에게 보장을 넓혔다. 타이락타이당은 2001년 1월 총선에서 500석 가운데 248석을 얻었고, 약 325석을 장악하는 연립정부를 구성했다. 탁신은 그해 2월 총리가 됐다.
타이락타이당의 포퓰리즘은 하나의 정책 제안이었다. 패키지가 만들어 낸 구체적 조건들에 직접 대응하도록 짜인 정치 프로그램이었다. 반면 탁신의 비판자들은 이를 일종의 표 매수로 다뤘다. 부유한 사업가가, 장기적인 재정 위험을 알아보기에는 너무 순진한 농촌 지지층에게 혜택을 나눠 주었다는 것이다.
그런 해석을 받아들이려면, 비판자들이 지목한 장기적 재정 위험을 바로 앞선 몇 년 동안 관리한 것이 IMF였고 그 관리가 대량 실업과 기업 도산, 정부 붕괴를 낳았다는 사실을 잊어야 한다. 타이락타이당에 표를 던진 태국 농촌 유권자들은 이전 프로그램이 만든 조건을 정면으로 다루는 프로그램을 합리적으로 선택하고 있었다.
인도네시아는 같은 궤적을 더 빠른 속도로 밟았다. 루피아화는 위기 이전 가치의 약 6분의 1로 떨어졌다. IMF와 협력 기관들은 430억 달러 규모의 국제 패키지를 꾸렸고, 조건은 통화 긴축, 은행 부문 구조조정, 그리고 연료·식량 보조금 삭감이었다. 가장 폭발력이 컸던 것은 마지막 조건이었다.
연료 보조금 삭감은 IMF 프로그램에 명시돼 있었지만, IMF는 이를 단계적으로 시행하는 데 동의한 상태였다. 1998년 5월 초, 상황을 장악하고 있다고 자신한 수하르토는 IMF 자신의 권고를 거스르고 삭감을 한꺼번에 밀어붙였고, 반응은 즉각적이었다. 자카르타와 메단, 수라카르타에서 폭동이 일어났다. 5월 12일 보안군이 자카르타 트리삭티 대학교에서 시위하던 학생들에게 발포해 학생 네 명이 숨졌다. 그 죽음은 시위에 가속을 붙였다. 핵심 군부 지지 세력이 이탈하기 시작했다. 수하르토는 5월 21일 사임했고, 32년의 통치가 막을 내렸다.
인도네시아에서는 연쇄가 짧았다. 스스로를 건드릴 수 없는 존재라 여긴 정권이 IMF의 조건을 갑작스럽게 적용하자 가격 충격이 일어났고, 그로 인해 터져 나온 시위가 수하르토의 통치를 끝냈다.
한국에서 사람들은 자신들에게 닥친 일을 IMF 자체의 탓으로 돌리게 됐고, 그 판단은 오래 살아남았다. IMF 내부의 독립평가실은 훗날 한국 프로그램 초기의 재정 긴축이 불필요했다고 결론지었다.
“IMF 사태”: 한국이 붙인 이름
한국의 공론장에서 1997~98년은 으레 “IMF 사태”라고 불린다. 이 이름에는 인과관계에 대한 대중의 판단이 담겨 있다. 위기에는 통화 붕괴에 대응해 경제에 가해진 조치까지 포함된다는 판단이다. 영향을 받은 사람들이 결정적 사건으로 경험한 것을 정확히 묘사하는 이름이다. IMF의 평가자들도 훗날 처방의 일부, 곧 초기의 재정 긴축이 불필요했다고 인정했다.
러시아와 아르헨티나: 두 가지 변주
1998년 러시아의 붕괴는 보통 올리가르히와 옐친 시대의 기능 부전에 관한 이야기로 전해진다. 그 틀에는 1998년 8월을 가능하게 한 10년의 맥락이 빠져 있다.
1992년부터 러시아의 경제 전환은 IMF의 자문을 받았고 나중에는 IMF의 자금을 받았으며, 그 돈에는 조건이 붙어 있었다. 급속한 자유화와 대규모 민영화, 가격 통제 철폐로 이루어진 “충격 요법” 프로그램은 서방 채권자들의 지원을 등에 업고 하나의 패키지로 집행됐다. 1998년 무렵 러시아의 단기 국채인 GKO 시장은 재정 적자를 메우는 수단이 돼 있었다. 자유화가 만들어 낼 것으로 기대됐지만 끝내 만들어 내지 못한 조세 수입이 없는 상태에서였다. 세계 원자재 가격이 떨어지고 아시아 위기 이후 신흥시장에서 자본이 빠져나가기 시작하자, 정부는 GKO 채무를 차환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1998년 8월 17일, 세르게이 키리옌코 총리의 정부와 중앙은행은 루블화를 평가절하하고, GKO 상환을 동결해 국내 부채에 대해 사실상 디폴트에 들어갔으며, 러시아 은행들이 외국 채권자에게 하는 상환에 90일 모라토리엄을 부과했다. 앞서 7월 IMF와 세계은행, 일본은 증세와 적자 감축, 연금 개혁을 조건으로 226억 달러 규모의 패키지에 합의했다. 두마는 이를 뒷받침할 법안의 핵심 부분을 통과시키기를 거부했다. IMF는 48억 달러를 내주고, 항의의 뜻으로 8억 달러를 묶어 두었다. 4주 뒤 러시아는 디폴트에 빠졌다.
1998년의 붕괴는 정치 이념으로서 옐친 시대 자유주의 개혁 구상이 지녔던 정당성을 완전히 무너뜨렸다. 그해 8월에 이르자 IMF가 주도한 민영화와 자유화 프로그램은 러시아에서 대중적 신뢰를 조금도 남기지 못한 상태였다. 그 혼란을 정당화해 줄 번영 대신 이 프로그램이 가져다준 것은 올리가르히의 국가 포획, 재정 불안정, 그리고 10년 사이 두 번째로 평범한 사람들의 저축을 날려 버린 통화 붕괴였다. 붕괴는 키리옌코 정부를 끌어내렸고, 서방 금융기관과의 통합이 공동의 번영을 가져오리라는 주장에 자신의 권위를 걸었던 개혁파의 신뢰를 무너뜨렸다.
붕괴 한 달 전 연방보안국(FSB) 국장에 임명된 블라디미르 푸틴은 1년 뒤 총리가 됐고 2000년 3월 대통령에 당선됐다. 붕괴가 그를 만든 것은 아니지만, IMF가 지원한 충격 요법이 빚어낸 형태의 자유주의 구상에는 옹호자가 거의 남지 않게 됐고, 그는 그 실패가 비워 놓은 자리로 올라섰다. 그는 시장경제의 상당 부분을 유지했고, 시장경제와 함께 왔던 정치적 약속은 내버렸으며, 2005년에는 IMF 채무를 예정보다 일찍 갚았다.
러시아의 취약성이 국채와 핫머니 흐름에서 왔다면, 아르헨티나의 취약성은 고정환율에서 왔다. 1991년 확립된 페소와 달러의 등가 제도인 태환 제도는 수년간의 초인플레이션 끝에 물가 안정을 가져다주었고, 정치적으로 신성불가침이 됐다. 고정환율은 자본 흐름이 우호적인 동안에만 유지될 수 있었다. 1990년대 후반 내내 IMF의 긴축 조건은 고평가된 고정환율과 악화하는 재정 상황 사이의 근본적 모순은 건드리지 못한 채 경기 침체만 깊게 만들었다. 2001년 말 정부는 악순환에 갇혀, 경제가 주위에서 쪼그라드는 와중에도 적자 목표를 맞추려 지출을 줄이고 있었다.
2001년 12월 정부는 이미 외환보유액을 바닥낸 자본 도피를 막으려고 은행 인출을 제한하는 코랄리토를 도입했다. 이 제한은 제도를 믿었던 사람들, 곧 중산층 저축자들을 직접, 그리고 즉시 강타했다. 대규모 시위가 뒤따랐다. 열흘 사이 대통령 두 명이 물러났다. 2주도 안 되는 기간에 다섯 명이 대통령직을 거쳤다. 12월 23일 아돌포 로드리게스 사아 임시 대통령은 아르헨티나가 대외 부채 상환을 중단한다고 발표했다. 약 820억 달러어치 채권에 대한 디폴트로, 그때까지 역사상 최대 규모의 국가 부도였다.
네스토르 키르치네르는 2003년 5월 겨우 22%의 득표로 취임했다. 아르헨티나 역사상 가장 낮은 대통령 득표율이었다. 여론조사에서 압도적 패배가 예상되던 카를로스 메넴이 결선 투표에서 물러나면서, 키르치네르에게는 1차 투표 득표율이 유일한 위임으로 남았다. 키르치네르가 내건 강령은 분명했다. 경제에 대한 국가 개입, 임금 인상, 그리고 채권자가 아닌 아르헨티나의 조건에 따른 부채 재협상. 2005년의 채무 재조정은 채권자들에게 큰 손실을 안겼고 그 조건에 대한 IMF의 반대를 무릅쓰고 강행됐다. 적격 채무 보유자의 약 76%가 이를 받아들였고, 이 재조정은 이후의 본보기가 됐다.
NML 캐피털 대 아르헨티나 공화국: 메커니즘의 법적 연장
NML 캐피털이 이끄는 헤지펀드들은 디폴트 이후 아르헨티나 국채를 헐값에 사들였고, 채권자 대다수가 받아들인 2005년과 2010년의 채무 재조정에 참여하기를 거부했다. 이들은 뉴욕 남부 연방지방법원에 소송을 냈다. 토머스 그리사 판사는 이들의 손을 들어 주었고, 이어 재조정에 응하지 않은 채권자들(홀드아웃)에게 동시에 전액을 지급하지 않는 한 아르헨티나가 재조정 채권자들에게 상환하지 못하도록 막는 금지명령을 내렸다. 사실상 이 판결은 미국 법원을 동원해, 채무를 재조정한 주권국가를 상대로 원래의 채권자 청구권을 집행한 셈이었다. 아르헨티나 정부는 홀드아웃들을 “벌처 펀드”라고 불렀다. 이 딱지에는 감정이 실려 있지만, 그것이 가리킨 전략은 단순했다. 펀드들은 부실 채권을 싸게 사들였고, 집단적 재조정에서 빠졌으며, 아르헨티나가 채권을 발행할 때 스스로 관할권을 받아들였던 뉴욕 법원을 이용해 이자를 포함한 전액 지급 판결을 얻어 냈다. 2016년 그들은 그 청구액의 약 75%에 소송 비용을 더한 금액으로 합의했는데, 채권을 사들인 값의 몇 배에 이르는 액수였다. 이 소송은 패키지의 채권자 보호 논리를 디폴트 몇 년 뒤 맨해튼의 법정으로까지 끌고 갔다.
러시아와 아르헨티나는 같은 압박을 겪고 전혀 다른 정치를 안고 빠져나왔다. 러시아는 권위주의적 폐쇄로 끝났고, 아르헨티나는 채권자들에 맞서 선거를 치른 정부를 뽑으면서도 선거 민주주의의 틀 안에 머물렀다. 어느 나라에서도 조정을 집행한 정치 질서는 다시 일어서지 못했다. 조건을 받아들인 정당과 정부는 거의 모두 그 대가를 치렀고, 대부분은 혹독하게 치렀다.
유로존: 같은 조건, 다른 관할권
한 가지 반론이 남는다. 이런 일은 제도가 약하고 정부가 부패했으며 법치가 허술한 나라에서나 일어난다는 반론이다. 2010년 유로존 위기는 같은 패키지를 유로 회원국들에 가져왔다.
IMF와 유럽중앙은행(ECB), 유럽연합 집행위원회로 이루어진 트로이카는 2010년부터 그리스, 아일랜드, 포르투갈, 키프로스에 조정 프로그램을 집행했다. 조건은 낯익었다. 연금 삭감, 공무원 임금 삭감, 국유 자산 민영화. 후속 프로그램에 따라 그리스는 피레우스 항만공사의 지배 지분 51%를 중국 국유 해운 대기업 코스코(COSCO)에 팔았다. 지방 공항 14곳은 프라포트가 이끄는 운영사에 넘어갔다. 아일랜드 은행들의 선순위 채권자가 아니라 아일랜드 납세자들이 은행 부문 구제금융 비용의 대부분을 떠안아야 했다. 이 결정은 ECB의 강한 압력 아래 내려졌다. 프랑크푸르트는 아일랜드 은행들에 대한 추가 긴급 자금 지원에 아일랜드가 구제금융 프로그램에 서명해야 한다는 조건을 걸었다. 그리스의 실업률은 2013년 27%에 이르렀다. 청년 실업률은 60%를 넘었다.
금융 붕괴는 그 나름의 정치적 흔적을 남긴다. 1870년 이후 20개 선진 경제에서 시스템 금융위기 뒤 5년 동안 극우 정당의 득표율은 평균 약 30% 늘었고, 비슷한 깊이의 일반적인 경기 침체 뒤에는 이런 상승이 나타나지 않는다. 그 위기들 가운데 IMF 프로그램이 따라붙은 경우는 거의 없으므로, 이 발견이 IMF에 대해 직접 말해 주는 바는 없다. 다만 금융위기에는 일반적인 경기 하강에는 없는 정치적 휘발성이 있다는 것은 보여 준다. 그리고 네 사례는 그 일부가 구제금융의 대가를 누가 치르게 되는가와 관련이 있음을 시사한다.
2010년 이후의 유럽은 그 패턴에 들어맞았다. 프랑스 국민전선은 2007년 총선 1차 투표에서 4%를 조금 넘게 얻었다. 유로존 조정 프로그램이 절정에 이른 2012년 총선 1차 투표에서는 14% 가까이 얻었다. 5년 만에 득표율이 세 배로 뛴 것이다. 독일을 위한 대안(AfD)은 2013년 유로존 위기에 대한 대응을 명시적으로 내걸고 창당했고, 창당 강령은 구제금융 체제에 대한 반대를 중심에 두었다. 황금새벽당은 2012년 7%의 득표로 그리스 의회에 진입했다.
반발은 우파에서만 나오지 않았다. 그리스의 급진좌파연합 시리자는 트로이카 조건의 재협상을 공약으로 내걸고 2015년 1월 그리스 총선에서 이겼다. 스페인에서는 같은 위기 속에서 포데모스가 등장했다. 방향은 제각각이었다. 되풀이된 것은 조정을 집행한 정당들과의 결별이었다. 그 정당들은 좌우 어디에 서 있든 대가를 치렀다. 앞선 30년 가운데 상당 기간 그리스를 통치해 온 중도좌파 정당 파속(PASOK)은 조정의 청구서가 날아들 때 집권당이었고, 득표율이 2009년 44%에서 2015년 5% 미만으로 무너졌다.
시리자와 2015년 국민투표: 출구 없는 민주적 위임
2015년 6월 말 시리자 소속 총리 알렉시스 치프라스는 2차 구제금융을 마무리하기 위한 채권단의 조건을 놓고 국민투표를 실시하겠다고 발표했다. 7월 5일 그리스 유권자들은 61%로 그 조건을 거부했다. 8일 뒤 치프라스는 3차 구제금융 조건에 서명했는데, 그 조건은 국민투표가 방금 거부한 것만큼, 혹은 그보다 더 가혹했다. 이 일화는 하나의 구조적 한계를 드러냈다. 프로그램에 저항하라는 민주적 위임도 통화 동맹에서 빠져나갈 능력이 없으면 충분하지 않다는 것이다. 채권단은 협상 내내 유로 이탈, 곧 그렉시트 시나리오의 위협을 지렛대로 썼고, 국민투표 결과는 구속력 있는 지시가 아니라 협상의 출발점 정도로 취급됐다.
이 패턴에 이름이 없는 이유
전문가들은 이 패턴의 조각들을 측정해 왔지만, 그것이 하나의 이야기로 대중에게 전해지는 일은 드물다. 몇 가지가 조각들을 서로 떼어 놓는다.
하나는 문서의 언어다. 회원국 정부가 IMF 프로그램을 이행하겠다고 약속하는 공식 서한인 IMF 의향서는 조건을 기술적 필연이라는 밋밋한 어조로 적는다. 정부는 가격을 “인상할 것이다”, 은행을 “폐쇄할 것이다”, 보조금을 “철폐할 계획이다”. 협상으로 정한 선택을 산수처럼 읽히게 하고, 집행된 것을 불가피한 것처럼 보이게 하는 언어다. 1998년 1월 인도네시아의 의향서는 처음부터 끝까지 이런 식으로 읽힌다.
그 어조가 지워 버리는 것은 뻔한 질문에 대한 답이다. 누가 요구했고, 누구의 이익을 위해서인가? 보호받은 채권자들의 이름을 댈 수 있고, 매각된 자산과 지불된 가격, 매수자도 마찬가지다. 조건은 식별 가능한 이해관계를 대변하는, 식별 가능한 지배구조를 가진 기관이 내린 선택이었다.
또 하나는 학문 분과의 분리다. 금융위기 이후 극우의 급부상을 측정한 경제학자들은 경제사와 금융 분야에서 일한다. 긴축 반대 시위와 IMF 프로그램 아래 정부의 존속을 연구하는 정치학자들은 다른 곳에 논문을 내고, 탁신의 부상과 키르치네르, AfD, 푸틴의 권력 공고화에 관해 쓰는 지역 전문가들은 또 다른 곳에 논문을 낸다. 각 분과에는 경계를 긋는 방법론적으로 타당한 이유가 있다. 조각들은 존재하지만, 구제금융의 조건에서 그 뒤 10년의 정치에 이르는 전체 흐름이 한자리에서 이야기되는 일은 드물다.
언론의 프레임도 조각들을 떼어 놓았다. 각 위기의 정치적 여파는 영어권 언론에 지역 이야기로 도착했다. 언론은 탁시노믹스를 태국의 특이 현상으로, 키르치네르주의를 늘 그래 왔듯 알 수 없는 방식으로 되풀이되는 아르헨티나 페론주의로 그렸다. AfD는 반유로 정당으로 출발했지만 이민 문제로 방향을 틀면서 독일의 정체성과 국민성에 관한 이야기로 읽히게 됐고, 황금새벽당은 재정도 관리하지 못하는 곤경에 빠진 나라의 기능 부전으로 읽혔다. 이런 프레임은 각 반복을 그 지역의 맥락 안에서만 이해할 수 있게 만듦으로써 패턴을 보이지 않게 하고, 지역의 이야기들이 왜 자꾸 같은 구조를 띠는가 하는 점은 설명하지 않은 채 남겨 둔다.
그리고 IMF의 설계가 있다. IMF의 지배구조는 채권국에 과반을 주고 85% 특별 다수 규칙을 통해 미국에 사실상의 거부권을 주며, 채무국에는 채권국의 선호를 뒤집을 길을 전혀 주지 않는다. 그 구조를 감안하면, IMF가 태국, 인도네시아, 러시아, 아르헨티나에서 국내 회복보다 채권자 보호를 거듭 앞세운 것은 의결권 비중으로 보아 예상할 수 있는 일이다. 그 선호가 절대적이지는 않았다. 2010년 아일랜드에서 IMF 실무진은 선순위 채권자들에게 손실을 부과하자고 주장했다가 ECB와의 논쟁에서 졌고, 2015년 7월에는 IMF가 유럽 채권단에게 그리스에는 그들이 고려하려던 것보다 훨씬 큰 부채 탕감이 필요하다고 말하고 있었다.
패턴에 이름을 붙이려면 누가 이득을 보았는지 말하고 조건을 선택으로 다뤄야 한다.
직업적 비용도 한몫할 수 있다. IMF의 조건부 지원을 가장 직접적으로 비판해 온 경제학자들, 이를테면 스티글리츠와 대니 로드릭, 장하준은 이미 명성을 쌓은 뒤에 비판했다. 스티글리츠는 세계은행 수석 경제학자로 있으면서 첫 비판을 내놓았고, IMF 및 미국 재무부와 공개적으로 충돌한 끝에 1999년 그 자리를 떠났다. 국제경제학의 신진 연구자들에게 IMF와 세계은행은 일자리와 데이터, 논문 발표 기회의 주요 원천이다. 그것이 연구 의제를 좌우한다면, 누가 무엇을 억누르지 않아도 어떤 질문이 연구비를 받는지 눈여겨보는 평범한 습관을 통해 그렇게 된다.
이런 구제금융 가운데 하나라도 다르게 끝나려면 무엇이 필요할까? IMF 자체의 개혁은 더뎠다. 2010년에 합의된 쿼터 개편은 2016년에야 발효됐고, 미국의 거부권은 그대로 남았다. 민주적 위임으로도 충분하지 않았다. 7월 5일 치프라스의 뒤에는 국민투표 61%의 표가 있었고, 8일 뒤 그는 서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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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요 출처 및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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