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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1년 5월 2일, 독일의 고위 차관들이 병참 문제 하나를 풀기 위해 베를린에 모였다. 의제는 식량이었다. 동쪽으로 진격해 소련으로 들어갈 300만 대군을 무엇으로 먹일 것인가. 조달 메모처럼 무덤덤하게 회의록에 적힌 결론은, 국방군은 점령지에서 식량을 조달할 것이고 그 결과 “수천만 명”이 굶어 죽으리라는 것이었다. 3주 뒤 ‘바르바로사 작전 경제정책 지침’이 그 추산을 재확인했다. “수천만 명”이 쓸모없는 잉여가 된다는 것이었다.
회의록에는 이의가 기록되어 있지 않다. 전략 자체는 오래된 것이었다. 카이사르의 갈리아에서 사우디아라비아 주도 연합군의 예멘에 이르기까지, 군대가 도시를 포위해 온 세월만큼 지휘관들은 똑같은 계산을 해 왔다.
독일인들이 남달랐던 점은 그것을 글로 적었다는 것뿐이다. 그렇다면 군사사에서 가장 효과적인 이 무기는 왜 번번이 부수적 피해로 분류되는가?
빈 위장의 논리
기아를 전략으로 삼는 논리는 복잡하지 않다. 굶주린 주민은 싸우지도, 생산하지도, 저항하지도 못한다. 포격과 달리 기아에는 탄약이 들지 않고, 공격하는 쪽이 사상자를 내지 않고도 항복을 받아 낸다. 정복자가 쓸 기반 시설도 고스란히 남는다. 함락된 도시에는 포격이었다면 부서졌을 곡물 창고와 도로와 작업장이 그대로 있다. 이 무기는 수비군을 무너뜨리면서 전리품은 지켜 준다.
카이사르는 기원전 52년 알레시아에서 이를 꿰뚫어 보았다. 베르킨게토릭스가 이끄는 갈리아인 약 8만 명이 지키는 언덕 위 요새를 앞에 두고 그는 강습을 택하지 않았다. 대신 둘레 약 16킬로미터에 보루 23개를 촘촘히 박은 안쪽 방어선을 쌓고, 그 뒤로 갈리아 구원군을 향한 약 21킬로미터의 바깥 방어선을 둘렀다. 구원군이 밖에서 공격하고 수비대가 안에서 돌격해 나왔을 때 이중 방어선은 버텨 냈다. 그러나 마지막 전투가 벌어지기 전에 이미 굶주림이 할 일을 다 해 놓은 뒤였다. 카이사르 자신의 기록에 따르면 수비대의 곡식은 이미 바닥나 있었다. 한 갈리아 귀족은 싸우기엔 너무 늙거나 약한 이들의 시신으로 버티자고 동료들을 다그쳤고, 도시의 민간인들은 성 밖으로 내쫓겨 두 방어선 사이에서 굶어 갔다. 구원군이 바깥 방어선에 부딪혀 무너지자 수비군에게는 더 기다릴 것이 남지 않았다. 이튿날 베르킨게토릭스는 항복했다.
그보다 80년 앞서 스키피오 아이밀리아누스는 누만티아에서 같은 논리를 썼다. 켈티베리아 전사들은 20년 동안 탁 트인 전장에서 로마군에 피를 흘리게 했다. 스키피오는 아피아노스의 집계로 전쟁이 시작되기 전에도 전투원이 8,000명에 불과했던 도시를 상대로 6만 병력을 끌고 왔고, 공격하는 대신 망루와 해자를 갖춘 성벽을 쌓았다. 강에는 방재(防材)를 쳐서 아무것도 떠내려가지 못하게 막고는 기다렸다. 이후 몇 달 동안 누만티아인들은 삶은 가죽을 씹었고, 이어 죽은 이들을 먹었다. 마침내 생존자들이 비틀거리며 항복하러 나왔을 때 그들은 사람의 모습을 거의 알아볼 수 없을 지경이었다. 몸은 앙상했고 머리털은 엉겨 붙었으며 손톱은 짐승의 발톱처럼 자라 있었다. 끝내 나오지 않기로 한 이도 많았다. 아피아노스에 따르면 수비군은 아직 자유를 놓지 못한 이들이 스스로 목숨을 끊을 수 있도록 하루의 말미를 청했다. 스키피오는 개선식에 세울 생존자 50명을 남기고 나머지는 노예로 팔았으며 도시를 완전히 허물어 버렸다.
포위전을 그저 잔혹한 것이 아니라 합리적인 것으로 만드는 것은 열량의 산술이다. 인구 8만 명이 먹고살려면 1인당 하루 0.5~0.75킬로그램으로 어림잡아 하루에 대략 40~60톤의 곡물이 필요하다. 이 보급망은 깨지기 쉽다. 열린 도로, 돌아가는 시장, 농업 배후지, 일정에 맞춰 움직이는 수레와 짐 끄는 가축이 있어야 한다. 이 보급망을 끊을 수 있는 공격자는 성벽을 뚫을 필요가 없다. 등 뒤로 보급선이 열려 있는 포위군은 수비군의 몸이 스스로를 소모해 가는 동안 기다리기만 하면 된다. 몇 주 동안 몸은 주로 비축된 지방으로 버티고, 근육은 되도록 아끼지만 완전히 아끼지는 못한다. 지방이 바닥나면 본격적으로 근육과 장기 조직을 태우기 시작하고, 그사이 감염을 물리치는 면역계의 능력은 무너진다. 시간표는 예측 가능하고 결과는 거의 확실하며, 포위군의 손실은 굶주린 이들이 점점 힘을 잃어 가는 돌격으로 입힐 수 있는 정도에 그친다. 포위군은 포위선만 유지하면 된다.
게다가 이 무기는 쓸수록 위력이 불어난다. 기아로 끝난 포위전은 다음 도시에 대한 경고가 되므로, 한 번 쓸 때마다 다음번의 비용이 줄어든다. 포위자의 명성이 군대보다 먼저 가서, 첫 참호를 파기도 전에 일의 일부를 해 놓는다.
카이사르는 이 명성의 산술을 알고 있었다. 알레시아 이듬해, 언덕 도시 욱셀로두눔이 곡물 창고를 가득 채운 채 버티자 그는 대신 물길을 끊었다. 도시가 항복하자 그는 무기를 들었던 남자들의 손을 모조리 자르게 했다. 저항하고 싶은 다른 누구에게든 경고가 되라는 것이 분명한 목적이었다.
굶주림의 산업화
고대의 포위전은 물리적 봉쇄로 작동했다. 도시를 둘러싼 돌벽, 손으로 판 해자, 보초를 서는 병사들. 포위자는 특정한 장소에 특정한 병력을 묶어 두어야 했다. 20세기는 성벽 없이도 같은 결과를 낼 수 있다는 것을 알아냈다. 생계 수단을 장악해 주민을 꺾는다는 원리는 그대로였다. 바뀐 것은 장악의 규모와 수단이었다. 곡물 징발의 행정 관리, 철도 운행표, 항구 출입, 배급 관료 조직이 언덕 하나가 아니라 대륙 전체에 걸쳐 주민을 굶길 수 있었다. 정부는 더 이상 도시를 에워쌀 필요가 없었다. 누가 먹고 누가 굶을지 정하는 서류만 장악하면 됐다.
1941년 5월의 그 회의 이후 몇 주 사이에 공식화된 나치의 기아 계획은 기아를 국가 정책으로 삼은 사례 가운데 가장 명시적으로 문서화된 경우다. 계획의 주된 설계자인 헤르베르트 바케는 바르바로사 작전 동안 농업 생산물을 국방군에 돌리기 위해 소련 시민 약 3,000만 명을 의도적으로 굶기는 계획을 세웠다. 틀은 제로섬 병참이었다. 소련 점령지는 곡물을 생산하고, 독일군은 그것을 먹으며, 곡물을 기른 사람들은 굶는다. 계획 문서들은 완곡어법 하나 없이 하나의 자원 배분 문제를 펼쳐 놓았고, 그 문제에서 소련 사람들의 목숨은 제거해야 할 변수였다.
실행은 침공 직후 곧바로 뒤따랐다. 1941년 8월 독일군은 강제 노동을 하는 소련군 포로의 공식 배급량을 하루 2,200칼로리로 정했다. 고된 노동을 하면서 목숨을 부지하기에는 이미 모자란 양이었다. 그 배급량마저 허구였다. 실제로 포로들은 훨씬 적게 받았고, 많은 이가 하루 700칼로리 안팎으로 버텼다. 몇 주 안에 장기 부전을 일으키는 섭취량이다. 포로로 잡힌 소련군 570만 명 가운데 약 330만 명이 죽었고, 그 대다수는 의도적인 굶주림과 추위, 그리고 영양 붕괴에서 비롯된 질병으로 숨졌다. 1942년 2월에는 그때까지 잡힌 포로 330만 명 가운데 200만 명이 이미 죽은 뒤였다. 민간인도 죽었다. 티머시 스나이더는 독일군이 레닌그라드 포위전에서 약 100만 명을, 우크라이나 도시들에서 계획된 기근으로 10만 명가량을 더 의도적으로 굶겨 죽였다고 추산한다.
기아 계획은 침공 전에 작성된 자원 계획이었고, 그 병참 스프레드시트에서 소련 사람들의 목숨은 없어도 되는 쪽 칸에 들어가 있었다.
스탈린 정부는 그보다 10년 앞서 우크라이나에서 비슷한 계산을 했다. 다만 독일인들처럼 친절하게 솔직하지는 않았다. 1932년 수확은 나빴다. 강제 집단화, 역축(役畜) 부족, 봄에는 비가 너무 적고 여름에는 너무 많았던 날씨에 시달린 결과였다. 그러나 흉작이 곧 기근은 아니다. 흉작을 기근으로 만든 것은 징발이었다. 모스크바는 우크라이나 농촌에 더 내줄 것이 남지 않은 뒤에도 한참 동안 곡물을 거둬 갔다. 스타니슬라프 쿨치츠키에서 날씨에 더 큰 비중을 두는 스티븐 휘트크로프트에 이르기까지, 다른 거의 모든 문제에서 의견이 갈리는 역사가들도 한 가지 점에서는 일치한다. 국가 정책이 식량 부족을 대량 사망으로 바꾸었다는 것이다. 지방 관리들이 징발 할당량 때문에 사람들이 굶주리고 있다고 보고하자 모스크바는 실제로 우크라이나의 1932년 목표치를 여러 차례 깎아 주었다. 그러나 충분히 깎은 적은 한 번도 없었고, 오히려 단속을 강화했다. 숨겨 둔 곡물을 몰수할 작업대를 파견하고, 마을 전체를 블랙리스트에 올려 공산품 거래를 막고, 국내 여권 통제를 도입해 굶주린 농민들을 그 자리에 가두었다.
인구학자들은 그 결과 일어난 기근으로 우크라이나인 약 390만 명이 숨진 것으로 추산한다. 사망의 90퍼센트는 겨울 비축분이 바닥난 뒤인 1933년에 일어났다.
홀로도모르는 주민이 살아남을 수 있었던 식량을 빼앗아 간 징발 정책이었다. 로버트 콘퀘스트와 쿨치츠키를 따르는 많은 역사가는 이를 제노사이드, 곧 모스크바가 위협으로 여긴 독자적 정체성을 지닌 민족에게 정치적 징벌로 가한 기근으로 본다. 휘트크로프트 같은 다른 이들은 우크라이나인을 겨냥한 사전 계획이라기보다 무자비한 정책이 빚은 소련 전역의 참사로 본다. 소비에트 국가는 우크라이나 주위에 성벽을 쌓을 필요가 없었다. 곡물 저장고와 철도와 국내 국경 검문소를 장악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1943년 벵골은 20세기의 이 패턴을 완성했다. 1870년부터 2016년 사이 인도에서 일어난 대기근 여섯 차례 가운데 1943년 벵골 기근은 토양 수분 가뭄과 연관되지 않은 유일한 기근이었다. 자연이 한몫을 한 것은 맞다. 1942년 말 벵골의 아만 벼 수확은 크게 모자랐다. 그 부족을 200만~300만 명이 숨진 기근으로 바꾼 것은 정책이었다.
영국의 거부 정책은 진격해 오는 일본군이 쓰지 못하도록 벵골 해안 지대의 쌀 비축분과 배를 몰수했다. 이 초토화 조치가 지역의 식량 유통망을 무너뜨렸다. 버마 함락으로 벵골의 평소 쌀 수입은 이미 끊긴 상태였고, 1943년 내내 런던의 전시 내각은 인도의 곡물 수입 요청을 거절하거나 줄였다. 1943년 가을 인도 담당 국무장관 레오폴드 에이머리가 전시 내각에 선박을 더 내달라고 마지막으로 호소했을 때, 그는 처칠이 “인도인들은 토끼처럼 새끼를 치는데 전쟁을 위해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서 우리한테서 하루 100만씩 받아 간다는 서두의 일장 연설”로 응수했다고 일기에 적었다. 벵골을 두고 처칠이 쏟아 낸 폭언의 주된 출처가 에이머리의 일기이며, 마두스리 무커지는 처칠을 겨냥한 논지의 상당 부분을 이 일기 위에 세운다.
구조적 결정은 분명했다. 자원의 위계에서 식민지 신민은 유럽 전선보다 아래에 있었다. 처칠을 옹호하는 이들은 선박 부족, 벵골만에서 일본 해군의 차단 작전, 그리고 결국 도착한 곡물 수송을 근거로 든다. 그러나 그 제약에는 결핍뿐 아니라 우선순위도 반영되어 있었다. 다른 전선이 먼저였다. 인도는 1943년 여름 밀 50만 톤을 요청했고, 그해 말까지 받은 것은 약 8만 톤의 밀이었다.
벵골 기근: 논쟁 중인 역사 서술
처칠의 책임 문제는 지금도 활발히 다투어지고 있다. 국제처칠협회와 힐스데일 처칠 프로젝트는 전시 선박 손실, 일본 해군의 활동, 그리고 실제로 인도에 도착한 곡물을 들어 의도적 방치가 아니라 실질적 제약이 있었다고 주장한다. 이에 맞서는 근거는 이렇다. 1870년 이후 인도의 다른 모든 대기근과 달리 벵골 기근은 가뭄과 연관되지 않았다는 토양 수분 분석 결과가 있다. 벵골의 식량 공급 총량이 유난히 적지 않았으며 기근은 전시 인플레이션과 투기가 일으킨 분배 붕괴의 결과였다는 아마르티아 센의 주장도 있다. 다만 코르막 오 그라다를 비롯한 후대 역사가들은 1942년의 수확 부족이 실제로 있었고 심각했다고 본다. 그리고 런던이 다른 전선에는 물자를 대면서 식량 수입 요청은 거듭 거절하거나 미뤘다는 문서 증거가 있다. 학계의 무게는 정책 실패를 주된 원인으로 보는 쪽에 실려 있다. 그 실패가 의도적인 무기화였는지, 전시의 제약 속에서 벌어진 파국적 태만이었는지는 여전히 논쟁 중이며 정치적으로도 민감하다.
20세기에 근대 국가들은 이 무기의 규모를 키웠다. 기아 계획은 칼을 뽑는 지휘관 하나 없이 수백만 명을 죽였고, 홀로도모르는 징발 할당량과 철도 운행표로 한 민족을 굶겼다. 벵골은 그들을 살릴 수도 있었던 배가 다른 곳에 배정되는 동안 200만 명이 넘는 사람이 죽을 수 있다는 것을 보여 주었다. 관료제는 또한 어떤 포위 성벽도 허락하지 않았던 방식으로 기아를 부인할 수 있는 것으로 만들었다.
비아프라, 그리고 텔레비전에 비친 기근의 탄생
1967년에 시작된 나이지리아 연방 정부의 비아프라 봉쇄는 빈틈이 없었다. 항구는 봉쇄되었고 육로는 연방군이 장악했다. 1968년 내내 연방군이 진격하면서 비아프라의 영토는 줄어들었고, 보급 수단은 포화 속에서 운영되는 활주로 몇 곳으로 좁혀졌다.
1932년의 소련이나 1943년의 대영제국과 달리, 나이지리아의 일부 고위 지도자들은 이를 공공연히 말했다. 연방 재무장관 오바페미 아월로워 추장은 “전쟁에서는 모든 것이 공정하며, 기아는 전쟁 무기 가운데 하나”라고 기자들에게 말했다. “결국 우리와 더 세게 싸울 뿐인 적을 배불리 먹여야 할 이유를 모르겠다.” 구호는 양쪽 모두의 협상 카드가 되었다. 라고스는 야간 구호 비행이 무기 수송의 엄호막이 된다고 반발했고, 비아프라 지도자 오두메구 오주쿠는 안보를 이유로 울리 활주로로 들어오는 주간 구호 비행을 거부했다. 둘 사이에 낀 고립 지역의 민간인들은 굶어 갔다.
기근이 정점에 이른 1968년 하반기의 사망률 추정치는 믿을 만한 집계가 거의 뒷받침되지 않은 구호 단체와 기자들에게서 나왔다. 그 수치는 하루 수천 명에서 많게는 1만 명에 이르렀고, 사망자 다수는 어린아이였다. 굶주린 아이들 특유의 부푼 배를 만드는 심각한 영양실조인 콰시오커가 이 기근의 상징이 되었다.
주로 기아로 인한 전체 사망자 추정치는 50만 명에서 200만 명에 이르며, 많게는 300만 명으로 보는 추정도 있다. 누구도 꼼꼼히 세지 않았다. 기근을 멈출 힘이 있는 누구도 그 숫자를 우선순위로 여기지 않았기 때문이다.
비아프라가 달랐던 것은 처음으로 세계가 지켜보았다는 점이다. 전쟁 보도 수단으로는 아직 비교적 새로웠던 텔레비전 카메라가 며칠 만에 앙상한 아이들의 모습을 서구의 거실로 실어 날랐다. 그 영상들은 오늘날까지 이어지는 기근 보도의 시각 문법을 만들었고, 국경없는의사회를 탄생시킨 계기가 되었다. 국경없는의사회는 비아프라에서 적십자와 함께 일했던 프랑스 의사들이 의학 전문 기자들과 함께 1971년에 세웠다. 비아프라의 의사들은 공개적으로 말하지 않은 채 증언만 하는 것은 침묵의 공모라고 결론 내렸다.
세계는 눈앞에 드러난 대량 기아에 자선으로 답했다. 교회와 인도주의 단체들은 비아프라 공수 작전을 벌여, 나이지리아군의 대공포화를 뚫고 밤마다 포위된 활주로로 식량을 날랐다. 비행기는 비행이 가능한지조차 의심스러운 화물기인 경우가 많았다. 공수 작전은 병참과 용기의 위업으로서는 놀라운 것이었지만 전략적으로는 아무것도 바꾸지 못했다. 봉쇄는 계속되었고, 굶주린 이들은 계속 굶었다. 그중 일부가 조금 더 천천히 굶었을 뿐이다. 나이지리아는 민간인 수십만 명을 죽인 봉쇄에 대해 어떤 법적 책임도 지지 않았다. 질 수도 없었다. 1967년에는 기아를 전쟁 수단으로 삼는 것을 금지하는 조약법이 없었기 때문이다. 정부는 분리주의 반란을 진압할 주권적 권리를 내세웠고, 당시 국제법은 중립국이 선포된 봉쇄를 깨뜨릴 근거를 주지 않았다.
비아프라가 촉발하는 데 한몫한 법 개혁은 1977년에 찾아왔다. 제네바 협약 제1추가의정서 제54조는 “전투 수단으로서 민간인을 기아에 빠뜨리는 것은 금지된다”고 선언했고, 제2추가의정서 제14조는 같은 금지를 나이지리아 내전 같은 내전으로 확대했다.
그것은 전쟁이 끝나고 7년 뒤, 죽은 이들이 묻히고 카메라가 떠난 뒤에 왔다. 법은 분노가 지나간 뒤에야 도착했고, 자신들의 죽음으로 그 법을 낳은 이들에게는 너무 늦었다.
종이 위에 세운 금지의 건축물
비아프라의 유산은 대가 없이는 기아를 무기로 쓸 수 없게 만드는 법적 틀이 될 터였다. 이 무기는 법의 문구와 집행 사이의 틈새에서 살아남는다.
겉으로 보면 법의 연대기는 인상적이다. 1977년에 채택된 제1추가의정서 제54조는 농작물, 가축, 식수 시설, 관개 시설처럼 민간인의 생존에 필수적인 물자를 공격하거나 파괴하거나 제거하거나 쓸모없게 만드는 것을 금지하며, 제2추가의정서 제14조는 같은 규칙을 내전에 적용한다. 로마 규정은 국제적 무력 충돌에서 의도적으로 기아를 일으키는 것을 전쟁 범죄로 규정한다. 2018년 5월 만장일치로 채택된 안전보장이사회 결의 2417호는 무력 충돌과 굶주림의 연관성을 명시적으로 인정한 안보리 최초의 결의였으며, 민간인을 기아에 빠뜨리는 것을 전쟁 수단으로 쓰는 행위를 강력히 규탄했다. 2019년 12월 당사국총회는 스위스가 제안한 개정안을 컨센서스로 채택해, 로마 규정이 비국제적 무력 충돌에서의 기아까지 다루도록 확대했다. 오늘날 기아가 가장 흔히 쓰이는 내전과 반란이 바로 여기에 해당한다. 개정안의 문구는 명확하다. 구호품 공급을 고의로 방해하는 것을 포함해, 민간인에게서 생존에 필수적인 물자를 빼앗음으로써 민간인을 기아에 빠뜨리는 것을 전쟁 수단으로 의도적으로 사용하는 행위다.
종이 위에서 기아를 전쟁 수단으로 쓰는 것은 빈틈없이 불법이다. 현실에서는 그것을 쓸 만큼 강한 누구에게나 여전히 열려 있는 선택지다. 그 틈새 뒤의 구조적 결함은 구체적이며, 채택 당시에 이미 기록되어 있었다.
첫째, 2019년 개정안은 개별적으로 비준을 택한 국제형사재판소(ICC) 회원국에만, 그것도 비준 1년 뒤부터 적용된다. 비준하지 않은 나라는 이 혐의에 관한 한 재판소의 손이 닿지 않는 곳에 남는다.
개정안이 컨센서스로 채택된 다음 날, 한 국제법 논평가는 그 결함을 이렇게 꼬집었다. “언젠가 저지르고 싶어질지도 모를 새 범죄에 스스로 자발적으로 구속되려는 회원국이 있다면 제정신이 아닐 것이다.”
둘째는 관할권이다. ICC가 움직이려면 안보리의 회부가 있거나, 재판소를 받아들인 국가의 영토에서 범죄가 일어났거나, 피고인이 그런 국가의 국민이어야 한다. 안보리 상임이사국 다섯 나라는 거부권을 쥐고 있으므로, 이들이나 이들의 가까운 동맹국을 안보리가 회부하는 일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재판소 밖에 있는 국가가 자국 영토에서 사람들을 굶긴다면, 안보리가 2005년 다르푸르 사태를 회부했듯 회부하거나 그 국가 스스로 재판소의 관할권을 받아들이지 않는 한 손쓸 길이 없다. 재판소에 영토 관할권이 있는 곳에서는 행동할 수 있다. 2024년 11월 ICC는 이스라엘 총리 베냐민 네타냐후와 요아브 갈란트 전 국방장관에 대해 가자지구에서 기아를 전쟁 수단으로 사용한 전쟁 범죄를 포함한 체포 영장을 발부했다. 재판소가 이 혐의를 적용한 것은 처음이었다. 이스라엘은 혐의와 재판소의 관할권을 모두 거부한다. 이 혐의들은 아직 어떤 법정에서도 심리된 적 없는 주장이다.
셋째는 의도의 입증이다. 법적 기준은 구호품 공급의 고의적 방해나 의도적 박탈을 입증하라고 요구하지만, 봉쇄와 접근 제한은 안타까운 인도적 결과를 낳은 정당한 군사 작전으로 포장되기 일쑤다. 법적으로 의도는 사실관계와 정황에서 추론할 수 있다. 그러나 의도를 가장 깔끔하게 입증하는 증거, 곧 내부 교신과 계획 문서와 지휘부 차원의 결정은 정의상 전쟁이 한창일 때는 손에 넣을 수 없다.
다마스쿠스 야르무크 난민촌 포위와 관련해 친아사드 민병대원으로 지목된 이들을 독일이 기소한 사건은 유리한 조건에서도 이것이 얼마나 어려운지를 보여 준다. 검찰은 2025년 7월 피고인 한 명에 대해 기아 혐의를 추가했고, 그해 11월 코블렌츠에서 열린 재판은 법정이 야르무크의 기아 포위를 다루는 첫 재판이다. 포위를 지휘한 정권은 무너졌고 피고인들은 구금되어 있다. 그런데도 검찰은 민간인이 굶주렸다는 사실만이 아니라 피고인이 알고서, 의도적으로 굶주림을 무기로 썼다는 것을 입증해야 한다. 외교적 영향력과 작전 보안을 갖춘, 제대로 돌아가는 국가를 상대로는 그런 증거를 얻기가 훨씬 더 어렵다.
이 법은 바로 그 법을 지켜야 할 국가들이 만들었고, 그들은 채택 당시 그 장치들의 알려진 결함을 공개적으로, 기록에 남는 방식으로 받아들였다. 조항은 그 관행을 금지한다. 집행 구조는 강대국이나 그 동맹국이 그 일로 재판정에 설 가능성을 매우 낮게 만든다.
“기아 의도”의 입증: 법적 작동 방식
국제인도법은 세 가지를 구분한다. 비례성을 갖추면 합법일 수 있는 포위, 제1추가의정서상 지위가 모호한 봉쇄, 그리고 명백히 범죄이지만 내부 문서 없이는 입증하기 어려운 인도적 구호의 의도적 차단이다. 이 구분은 교전 당사자들이 체계적으로 악용하는 회색 지대를 만든다. 한 국가는 항구를 닫고, 구호 화물 검사를 늦추고, 인도적 통로를 하나씩 제한할 수 있으며, 그 하나하나에 정당한 군사적 목적을 내세울 수 있다. 누적된 결과는 위성과 기자들과 유엔의 눈에 보이는 대량 기아다. 기소에 필요한 의도는 그 패턴에서 추론할 수 있지만, 가장 깔끔하게 입증되는 것은 결정이 내려진 방 안에서다.
야르무크 기소는 민병대원을 상대로 법정에서 기아의 의도를 입증할 수 있는지를 시험한다. 야르무크 포위를 다루는 첫 재판이다. 주권 국가의 관리들을 상대로 한 시험은 이제 막 시작되었다. ICC의 2024년 가자 영장은 이스라엘 지도자들이 민간인에게서 식량과 물, 의약품, 연료를 의도적으로 빼앗았다는 판단에 근거한다. 그 판단은 유죄 판결이 아니라 체포 영장을 뒷받침할 뿐이며, 이스라엘은 이를 거부한다. 재판소에서 기아 사건이 판결에 이른 적은 아직 없다.
예멘, 수단, 그리고 끝나지 않는 현재
앞에서 살펴본 무기는 그것을 금지하려고 만든 법과 나란히 지금도 쓰이고 있으며, 둘 사이의 틈은 좁혀지지 않았다.
2015년에 시작된 사우디아라비아 주도 연합군의 예멘 봉쇄는 2016년 8월부터 사나행 민간 항공편을 끊었고, 호데이다 항구 출입을 거듭 제한했다. 전쟁 전 예멘 수입품의 약 70퍼센트, 그중 대부분인 식량과 연료와 구호품이 들어오던 항구다. 유엔 자체의 검사 체계를 이미 통과한 선박들이 연합군의 대기 해역으로 보내졌고, 일부는 발이 묶이거나 돌려보내졌다. 2022년 초에는 예멘인 약 1,740만 명이 심각한 수준의 급성 식량 불안에 처한 것으로 추산되었고, 그중 3만 1,000명은 기근에 가까운 상황이었다. 양측 모두 식량을 무기화했다는 비판을 받았다. 유엔 저명 전문가 그룹은 분쟁 당사자들이 기아를 전쟁 수단으로 썼다고 보고했고, 휴먼라이츠워치는 연합군의 2017년 봉쇄가 연합군이 “민간인을 기아에 빠뜨리는 것을 전쟁 무기로 썼을 수 있음”을 시사한다고 결론지었다.
2018년 10월 유엔 인도주의 업무 책임자 마크 로콕은 예멘의 기근이 “이 분야의 어떤 전문가도 평생 일하면서 본 적이 없을 만큼 훨씬 큰 규모”가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기소된 사람은 아무도 없다. 유엔의 국제·지역 저명 전문가 그룹은 모든 분쟁 당사자의 위반을 기록해, 이론상 훗날의 기소를 뒷받침할 수도 있었을 기록을 쌓았다. 2021년 10월 사우디아라비아와 연합군 동맹국들의 집요한 로비 끝에 인권이사회는 반대 21개국, 찬성 18개국, 기권 7개국으로 이 그룹의 임무를 연장하지 않기로 표결했다. 예멘의 전쟁 범죄를 조사하던 유일한 국제기구가, 바로 그 기구가 조사하던 분쟁의 당사자들의 압박으로 문을 닫았다.
수단에서는 예일대 인도주의연구소가 신속지원군(RSF)이 2024년 3월부터 6월 사이, 곧 18개월에 걸친 포위의 첫 몇 달 동안 엘파시르 주변의 농업 공동체 41곳을 체계적으로 파괴해 없앴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공동체 10곳은 두 번 이상 공격당했고, 한 곳은 적어도 일곱 차례 초토화되었다. 표적은 군사 시설이 아니라 농장이었다. 가축 우리는 부서졌고, 농민들은 쫓겨나거나 살해되었으며, 작물을 땅에 심어야 하는 바로 그 시기에 식량 생산 능력이 제거되었다. 표적이 된 공동체의 3분의 2에서는 이후 위성 사진에 생활의 흔적이 나타나지 않았다.
유엔 독립 국제 진상조사단은 2025년 9월 별도로, RSF가 식량과 의약품과 구호품의 의도적 박탈을 포함해 기아를 전쟁 수단으로 사용했으며 이는 절멸을 포함한 반인도적 범죄에 해당할 수 있다고 보고했다. 수단군(SAF)도 무고한 방관자가 아니다. 같은 조사단은 양측 군대가 시장, 식량과 식수 체계, 의료 시설 등 민간인의 생존에 필요한 것들을 파괴했다고 확인했다. 분쟁 전반에 걸쳐 인도적 접근은 가로막혔고 호송대는 공격당했으며 구호 요원들이 표적이 되었다. 2023년 4월부터 2025년 4월 사이 수단인 구호 요원 84명 넘게 목숨을 잃었다.
2024년 6월 유엔 독립 전문가들은 “SAF와 RSF 모두 식량을 무기로 쓰며 민간인을 굶기고 있다”고 경고했다. 2026년 5월 통합식량안보단계분류(IPC)는 수단인 다섯 명 중 두 명꼴인 1,950만 명 가까이가 위기 수준 이상의 굶주림에 처해 있다고 추산했고, 수확 전 식량 부족기 내내 상황이 악화할 것으로 내다보았다. 2026년 10월에는 다르푸르와 코르도판 일부 지역에서 기근 위험이 커지고 있다고 경고했다.
결의 2417호와 로마 규정 개정안은 모두 법전에 올라 있다. 다르푸르는 심지어 2005년 안보리 회부 이후 줄곧 국제형사재판소에 걸려 있는 사안이다. 재판소는 2025년 잔자위드 지휘관 알리 쿠샤이브에게 20년 전에 저지른 잔학 행위로 유죄를 선고했고, 검찰은 엘파시르에서 RSF가 저지른 범죄를 수사하고 있다. 그러나 수단의 민간인을 굶긴 혐의로 공개적으로 기소된 사람은 아직 없다.
유엔 독립 인권 전문가들은 수단의 양측에 기아를 무기로 쓰는 일을 멈추라고 촉구했다. 그 촉구는 무시되었다. 예멘과 수단에 대한 국제사회의 대응은 비아프라의 틀을 그대로 따른다. 인도적 지원과 법적 규탄은 있되 집행은 없다.
성명과 보고서는 쌓여 가는데 책임 추궁의 기계는 거의 돌지 않는다. 비아프라와 엘파시르 사이에는 55년의 법 발전이 놓여 있지만, 그 긴 세월 동안 민간인을 굶긴 것을 전쟁 수단으로 삼은 죄로 누군가에게 유죄를 선고한 국제 법정은 하나도 없었다.
1941년 5월 2일에 모인 독일 관리들이 예외적이었던 것은 자기들의 전략을 기꺼이 글로 적었다는 점뿐이다. 1977년 이후의 법체계 아래서 근대 국가들이 배운 것은 그런 솔직함을 피하는 법, 그리고 검사의 공소를 성립시켜 줄 적나라한 의도의 회의록을 결코 남기지 않는 법이다.
오늘날의 판본은 서류가 더 깔끔하다. 봉쇄에는 인도적 예외가 붙지만 그 예외는 이행되지 않고, 거부 정책은 군사적 필요로 재포장되며, 구호 통로는 카메라가 있을 때 열리고 카메라가 떠나면 닫힌다. 외교적 압력은 교전 당사자들 자신이 아니라 그들을 조사하도록 위임받은 책임 규명 기구들을 겨냥한다.
이 행위들은 하나하나 따로 놓고 보면 모두 부인할 수 있다. 이행되지 않은 예외와 거부와 닫힌 통로가 합쳐져 빚어낸 대량 기아는 전쟁의 안개와 분쟁 지역에서 구호를 전달하기 어렵다는 사정 탓으로 돌려진다.
기아는 알레시아에서 엘파시르까지 효과를 발휘해 왔다. 그리고 그것을 금지하려고 세운 법체계는, 자신들이 채택한 장치를 통해 그 무기를 쓰는 자들이 그것을 범죄로 선언한 법정에 설 가능성을 매우 낮게 만들기로 선택한 국가들이 지은 것이다.
관리들의 언어에서 “수천만 명이 굶어 죽을 것이다”는 “우리는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하고 있다”가 되었다.
1941년의 기아 계획과 불탄 수단 농지를 찍은 2024년의 위성 사진 사이에서, 그 산술은 변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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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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