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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SA는 마스 서베이어 98 계획, 즉 화성 기후 궤도선과 그 자매 탐사선인 화성 극지 착륙선에 발사 비용까지 합쳐 3억 2,760만 달러를 쏟아부었다. 약 1억 2,500만 달러짜리 탐사선이던 궤도선은 1999년 9월 23일 화성 대기 속으로 지나치게 깊이 곤두박질쳐 사라졌다. 원인은 SM_FORCES라는 지상 소프트웨어였다. 탐사선 제작사인 록히드 마틴이 공급한 이 소프트웨어는 추력기 데이터를 파운드힘초 단위로 내보냈는데, NASA 제트추진연구소의 항법팀은 그 값을 뉴턴초로 여기고 사용했다. 차이는 4.45배였다. 몇 달에 걸친 비행 동안 쌓인 오차는 탐사선을 화성에 너무 가까이 다가가는 궤도에 올려놓았고, 그 뒤로 탐사선의 소식은 다시 들려오지 않았다.
이 이야기는 흔히 단위 환산에 관한 교훈담, 곧 엔지니어라면 입력값을 확인해야 한다는 값비싼 깨우침으로 소개된다. 이것은 청구서로 읽을 수도 있다. 하나의 표준에 합의하지 못하는 두 체계가 억지로 거래해야 할 때마다 날아드는 계산서 말이다. 1999년 세계에서 기술적으로 가장 앞선 우주기관은 단 하나의 임무를 서로 호환되지 않는 두 측정 체계에 걸쳐 수행하고 있었다. 1790년대로 거슬러 올라가는 분열 안에서였다. 이 분열은 특정한 정치적 순간에 확립되었고, 그 뒤로 줄곧 비용이 계속 드는 정치적 선택으로 유지되어 왔다. 흔히 합리적 표준화의 승리로 칭송받는 미터는 200년이 넘도록 국가 권력의 도구로 쓰였고, 때로는 그것을 휘두른 국가에게로 되돌아왔다.
중립이라는 기만
1790년 이전의 프랑스는 측정의 대혼란 그 자체였다. 한 역사가의 집계에 따르면 당시 프랑스 전역에서 쓰이던 도량형 단위는 약 25만 가지에 이르렀다. 도시마다, 업종마다 달라지는, 서로 호환되지 않는 지역 표준들이었다. 투아즈(toise)는 파리와 지방 수도에서 서로 다른 길이를 가리켰다. 곡물을 재는 부아소(boisseau)는 방앗간 주인이 누구냐에 따라 달라졌다. 토지를 재는 아르팡(arpent)은 지역에 따라 3분의 1 이상 차이가 나기도 했다. 이 불일치는 경제적 통제의 장치이기도 했다. 지역 표준을 쥔 영주는 지역의 교환을 쥐었고, 덕분에 표준을 정하는 자는 거기에 의존하는 자들에게서 손쉽게 수탈할 수 있었다.
그러므로 새로운 보편적 측정 체계를 만들기로 한 국민제헌의회의 결정은 명백히 정치적인 사업, 혁명이 이미 필요하다고 결정한 일을 이루기 위해 과학의 정당성을 빌려 온 사업이었다. 1790년 3월 9일, 당시 오툉 주교였던 샤를모리스 드 탈레랑페리고르는 제헌의회에 불변의 표준, 곧 보편적이고 자연적이며 재현 가능하고 어디서나 검증할 수 있는 표준을 요구하는 제안을 내놓았다. 세부 사항은 콩도르세가 종신 서기로 있던 과학 아카데미가 맡았다. 아카데미의 선택은 기발했고, 정치적 함의로 가득했다. 미터는 파리를 지나는 자오선에서 북극부터 적도까지 이르는 호의 1,000만분의 1로 정의될 터였다.
미터는 프랑스가 발견했을 뿐인 자연의 단위로 제시되었다. 이 사업과 결부된 문구 “À tous les temps, à tous les peuples(모든 시대에, 모든 민족에게)”는 콩도르세가 한 말로 전해지며, 1840년 기념 메달에 명문으로 새겨졌다. 주장인즉 미터는 어떤 군주에게도, 어떤 도시에도, 어떤 상업적 이해에도 복종하지 않았다. 미터의 근거는 행성 자체의 기하학이었다.
실제로는 왕의 권위가 있던 자리에 프랑스 과학의 권위를 앉히고, 표준은 프랑스 영토에 붙잡아 둔 셈이었다. 제헌의회는 처음에 영국 의회와 왕립학회에 새 단위를 함께 정의하자고 제안했다. 그 제안이 무위로 돌아가자 프랑스는 단독으로 밀고 나갔다. 미터를 정의하기 위해 두 천문학자 들랑브르와 메섕은 1792년 됭케르크와 바르셀로나 사이의 자오선 호를 측정하러 길을 떠났고, 확정된 백금 미터원기는 1799년 국립문서보관소에 안치되었다. 토머스 제퍼슨은 문제를 짚었다. 그는 주프랑스 미국 공사를 지냈고, 탈레랑의 제안에 대응해 자신의 측정 체계안을 고쳐 썼으며, 이 주제로 콩도르세와 서신을 주고받았다. 제퍼슨은 1791년 7월 윌리엄 쇼트에게 이렇게 썼다. “국민의회가 채택한 측정의 기준은 그 자체로 지구상의 모든 나라를 그들과의 측정 공동체에서 배제한다. 위도 45도를 가로지르고 양 끝이 같은 높이에 놓이는 자오선을 측정하기에 알맞은 구간은 그들의 나라 말고는 지구상 어느 나라에서도 찾을 수 없다고 그들 스스로 인정하기 때문이다.” 그는 미국의 십진 체계를 위도 45도에서의 초진자에 기초하자고 제안했었다. 남반구든 북반구든 그 위도선 위라면 어디서나 잴 수 있는 측정이었다. 프랑스가 진자 대신 자오선을 택했을 때, 그들은 오직 프랑스만이 보증할 수 있는 표준을 택한 것이었다. 제퍼슨의 불만대로라면, 다른 나라들은 프랑스의 측정을 믿거나 아니면 자국 사람을 프랑스로 보내 직접 확인해야 할 처지였다. 흔히 미국식 고집 탓으로 돌려지는 그의 거부는 주권의 논리에 기대고 있었다. 미터는 보편성을 내세웠지만, 다른 나라들에 그 검증에 대한 프랑스의 권위를 받아들이라고 요구했다.
1812년 2월 황제 칙령으로 나폴레옹은 ‘므쥐르 위쥐엘(mesures usuelles, 관용 단위)’을 도입했다. 미터법의 관계는 유지하되 프랑스 전통 명칭을 쓰는 절충 체계였다. 1837년의 법률이 이 체계를 폐지하고 1840년부터 순수 미터법을 복원했다. 이 부분적 후퇴는 보통 십진화에 저항하는 농민들에게 건넨 대중영합적 양보로 읽힌다. 동시에 그것은 법으로 미터법을 강제한 프랑스 정부조차 완전한 미터법 전환의 정치적 비용을 관리할 가치가 있다고 보았음을 보여 준다. 보편적이고 합리적인 표준이 그저 비합리적 습관을 버리기만 하면 되는 문제였다면, 유럽 대부분을 군대로 점령하고 있던 나폴레옹의 프랑스가 농민의 불편 때문에 입장을 누그러뜨리지는 않았을 것이다.
표준의 외교
19세기에 미터법은 합리적 설득보다 정치적 제휴, 식민 시대의 근대화, 새로 주권을 얻은 국가들의 전략적 계산을 타고 퍼져 나갔다. 가장 많은 것을 드러내는 초기 사례 몇몇은 라틴아메리카에서 나온다. 칠레는 1848년, 멕시코는 1857년, 브라질은 1862년에 미터법을 채택했다. 갓 독립한 이 나라들은 자신들이 무엇으로부터 멀어지려 하는지에 관한 더 큰 선택의 일부로 측정 체계를 골랐다. 포르투갈령·에스파냐령 아메리카의 미터법 이전 식민지 단위들은 식민 시대의 수탈 기구와 결부되어 있었다. 프랑스의 십진 체계를 채택하는 것은 근대화를 향한 야심의 신호였고, 이를 밀어붙인 것은 국제적인 전문가 네트워크 속에서 움직이던 기술자, 과학자, 통계학자들이었다. 동기는 나라마다 달랐고, 브라질은 황제 치하에서 전환을 단행했다. 칠레는 1849년에 미터법을 채택한 에스파냐보다 1년 먼저 미터법으로 넘어갔으므로, 칠레의 선택은 에스파냐의 새 표준을 따른 것이 아니라 옛 표준을 거부한 것이었다.
브라질에서는 1862년 6월의 제국 법률이 제국 전역에 미터법 채택을 명하면서 10년의 전환 기간을 두었고, 새 단위가 의무화된 1873년 저항이 뒤따랐다. 1874년부터 1875년까지 이어진 케브라킬루스(Quebra-Quilos) 반란은 파라이바에서 시작해 페르남부쿠, 알라고아스, 리우그란데두노르테로 번졌고, 농촌 공동체들은 새로 들여온 미터법 저울과 추를 부수었다. 가뭄, 무너지는 설탕과 면화 가격, 새로 생긴 시장세, 증오의 대상이던 징병법에 이미 짓눌려 있던 북동부 농민들에게 미터법의 킬로그램은 그들이 이미 정당성을 문제 삼고 있던 수탈적 엘리트의 또 다른 도구였다.
일본은 메이지 시대가 한창이던 1885년에 미터 협약에 서명했다. 살아남으려면 서구의 제도적 형식에 서둘러 발맞춰야 한다고 결론 내린 통치 엘리트가 통제된 서구화 계획을 이끌던 때였다. 협약에 서명하고 1890년 국제도량형국(BIPM)으로부터 원기를 받은 일은 서구식 헌법과 군사 조직, 산업 법제를 낳은 바로 그 계획에 속했다.
인도의 행로는 이 논리를 탈식민 시대로 이어 간다. 1956년에 통과된 도량형 표준법은 이후 몇 년에 걸쳐 단계적으로 시행되었고, 1962년 미터법 무게 단위가 전국적으로 의무화되었다. 영국의 제국 단위는 영국령 인도의 공식 척도였고, 인도 각 지역 단위의 누더기 위에 덧씌워져 있었다. 미터법 채택은 1957년 루피의 분수 단위를 십진 주화로 바꾼 것과 같은 계획의 일부였다. 영국권의 다른 곳에서 미터법 전환은 런던과 단절하기보다 런던을 따라갔다. 영국 자신이 1965년 미터법 전환을 약속했고, 캐나다와 오스트레일리아는 1970년대에 전환을 시작했으며, 1967년에 계획에 착수한 남아프리카공화국은 1977년에 전환 완료를 선언했다.
미터 협약은 이 확산에 제도적 형태를 부여했다. 1875년 5월 20일 17개국이 파리에서 조약에 서명해 국제도량형국을 창설했고, 도시 바로 바깥 생클루 공원의 브르퇴유관(Pavillon de Breteuil)에 자리를 마련했다. 이 과정은 나폴레옹 3세 치하에서 시작되었다. 국제미터위원회가 처음 모인 것은 프랑스·프로이센 전쟁이 터지고 몇 주 뒤인 1870년 8월이었지만, 작업이 마무리된 것은 전쟁의 그늘 속에서였다. 프랑스는 1870~1871년에 굴욕을 당했다. 알자스로렌을 잃었고, 50억 프랑의 배상금을 떠안았으며, 프로이센이 이끄는 독일 제국이 베르사유에서 선포되는 광경을 지켜봐야 했다. 1872년 다시 소집된 위원회와 1875년의 회의 덕분에 제3공화국은 세계의 과학 표준을 프랑스 땅에 붙잡아 둘 수 있었다. 그 관리권이 프랑스 국가에서 국제기구로 넘어가는 와중에도 말이다.
미국이라는 예외
미국은 실제로 미터법 전환을 시도했다. 그리고 그 시도가 실패하도록 내버려 둘 수 있었다. 실패의 대가를 치르게 할 만큼 큰 교역 상대국이 없었기 때문이다. 1975년 12월 제럴드 포드 대통령이 서명한 미터법 전환법은 나라에 “미터법 사용 확대를 조정하고 계획할” 책무를 지웠다. 그러고는 모든 전환을 명시적으로 자발에 맡겼다. 미터법 전환을 조정하기 위해 미국 미터법 위원회가 설립되었으나, 1982년 레이건 행정부가 이를 폐지했다. 1988년의 종합무역경쟁력법은 그 정책을 다시 썼다. 미터법을 “미국의 무역과 상거래를 위한 우선적 도량형 체계”로 지정하고, 각 연방 기관에 “1992 회계연도 말까지 경제적으로 실행 가능한 범위에서” 미터법을 쓰도록 요구한 것이다. 이 단서 조항은 전환에 실질적 비용이 따른다는 사실을 인정한다. 그 비용을 무기한 미루기가 더 쉬운 쪽은, 교역 상대국들이 자국 시장에 대한 접근을 지키려고 접점의 비용을 흡수해 주는 경제다.
1885년 일본이 미터 협약에 가입했을 때, 일본은 회원국들이 이미 정해 둔 조건으로 국제 체계의 자리를 사고 있었다. 다만 미터법이 대부분의 거래에 의무화된 것은 1959년, 토지와 건물에 의무화된 것은 1966년이었다. 1956년 인도가 미터법 전환을 입법했을 때, 인도는 식민 지배의 도구를 걷어 내는 동시에 미터법으로 돌아가는 세계 무역 체계에 합류하고 있었다. 2013년 미얀마의 미터법 전환 발표는 SI 단위로 가격을 매기는 수출 시장에 대한 응답이었다. 어느 경우든 전환 비용을 떠안은 쪽은 작은 행위자였다. 미터법 세계 바깥에 머무는 편이 그 안으로 들어가는 것보다 더 비쌌기 때문이다. 미국은 다른 답에 이르렀다. 국내 시장은 충분히 컸고, 국제 파트너들은 그 시장에 대한 접근에 충분히 의존했기에, 전환 비용의 상당 부분을 남에게 떠넘길 수 있었다.
3억 2,760만 달러짜리 청구서
사고조사위원회는 화성 기후 궤도선 손실의 원인을 SM_FORCES라는 지상 소프트웨어에서 찾아냈다. 록히드 마틴이 공급한 이 소프트웨어는 추력기 성능 데이터를 파운드힘초 단위로 내보냈다. NASA 제트추진연구소의 궤도 소프트웨어는 이 데이터를 받으면서, 임무의 소프트웨어 인터페이스 문서가 규정한 SI 단위인 뉴턴초로 여겼다. 1파운드힘초는 4.45뉴턴초다.
차이는 9개월의 비행 동안 누적되었다. SM_FORCES의 출력은 AMD(Angular Momentum Desaturation, 각운동량 비포화)라는 파일로 들어갔다. JPL의 궤도 모델링 담당자들은 AMD 데이터가 자신들에게 닿기 전에 미터법으로 환산되었으리라 가정했지만, 환산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계획된 궤도 진입 고도는 226킬로미터였지만, 탐사선이 화성에 가장 가까이 접근한 고도는 지표면 위 약 57킬로미터였다. 탐사선이 견딜 수 있는 최저 고도 80킬로미터에 한참 못 미치는 높이였다. 궤도선은 대기 중에서 파괴되었거나, 기껏해야 튕겨 나가 태양 주위 궤도로 들어갔다. 위원회는 항법팀이 궤도의 불일치를 몇 달 전에 이미 알아차렸지만, JPL의 공식 ‘사고·돌발·이상(Incident, Surprise, Anomaly)’ 보고 절차를 거치지 않고 이메일로 비공식적으로만 제기했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이 실패는 단위 환산의 실패만이 아니었다. 소프트웨어 인터페이스 명세서는 분명히 미터법 단위를 요구했다. 빠져 있던 것은 계약업체의 소프트웨어가 실제로 그 요구를 따르는지 확인하는 절차였다. 그것은 같은 분열된 측정 체계 속에서 움직이는 두 조직이 저마다 국지적으로는 합리적인 가정을 내리고, 자신들이 어느 체계 안에 있는지 확인하도록 강제하는 검증 단계가 전혀 없을 때 예측 가능한 결과였다.
이 소프트웨어는 뉴턴초를 요구하는 프로젝트 명세를 어긴 채 9개월 동안 돌아갔고, 그 위반은 걸러지지 않았다. 그것을 확인하는 일이 누구의 몫도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 빈틈 뒤에는 법이 손대지 않고 남겨 둔 조건이 있었다. 연방 정책은 NASA에 경제적으로 실행 가능한 범위에서 미터법을 쓰라고 지시했고, 임무 자체의 명세는 미터법을 무조건 요구했으며, 계약업체의 엔지니어들은 미국 항공우주 업계 대부분이 그렇듯 여전히 관습 단위로 일했다. 기관과 계약업체는 서로 어긋나 있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 그들은 같은 분열된 체계 안에서 저마다 국지적으로 합리적인 결정을 내리는 두 주체였고, 그 결정들은 끝내 NASA에 1억 2,500만 달러짜리 궤도선을 잃게 하고 3억 2,760만 달러짜리 계획을 그 궤도선 없이 남겨 놓았다.
미얀마와 라이베리아는 둘 다 미터법 전환을 약속했다. 미얀마는 2013년, 라이베리아는 2018년이었다. 작은 무역 경제로서는 미터법 세계 바깥에 머무는 것은 비싸기 때문이다. 미얀마의 노력은 2021년 쿠데타 이후 멈춰 섰고, 라이베리아는 새 국가 표준 기관을 세웠다. 미국은 그러지 않을 여유가 있고, 그 거부의 비용은 인치 기반 설계 도면과 미터법 설계 도면을 맞추거나 이중 규격 부품을 재고로 쌓아 두어야 하는 모든 이에게 떨어진다. 미국 공급업체도 예외가 아니다.
미국, 미얀마, 라이베리아 세 나라만이 미터법을 채택하지 않았다는 이른바 ‘세 나라’ 구도는 산수도 틀렸고 분석도 거꾸로다. 미국 국립표준기술연구소(NIST)는 이를 근거 없는 통념이라고 부른다. 세 나라 모두 SI를 인정하며, 미국에서 미터법은 1866년부터 합법이었고 1988년부터는 무역을 위한 우선적 체계였으며, 미국 관습 단위는 1893년부터 미터법 단위로 정의되어 왔다. 세 나라의 공통점은 미터법 의무화 법률이 없다는 것이고, 그 부재조차 정반대의 의미를 띤다. 미얀마와 라이베리아에게 그것은 아직 끝나지 않은 전환을 뜻하지만, 미국은 미터법을 우선적 체계로 삼으면서도 전환은 자발에 맡겨 두었다.
통행료 기반시설로서의 표준
미터법과 가장 가까운 유사 사례는 화폐에서 나온다. 기준 통화의 발행국은 다른 모든 나라가 자신과 접속하는 대가를 치르게 만들 수 있다. 1960년대 당시 프랑스 재무장관이던 발레리 지스카르 데스탱은 그 이점에 이름을 붙였다. 바로 “l’exorbitant privilège”, 달러의 기축통화 지위가 누리는 ‘과도한 특권’이다. 달러가 국제 무역의 매개체였기에, 미국은 다른 어떤 나라였다면 파국을 맞았을 국제수지 적자를 감당할 수 있었다. 다른 나라의 중앙은행들이 달러로 외환보유고를 쌓고, 남의 나라 통화정책에 기대는 데 따르는 비용을 흡수했기 때문이다. 드골 대통령은 1965년 2월 4일 기자회견에서 이 점을 밀어붙이며 금본위제로의 복귀를 촉구했고, 그사이 프랑스는 보유한 달러를 금으로 바꾸었다. 미국이 자국 통화를 중심으로 구축한 브레턴우즈 체제에 대한 계산된 도전이었다.
달러와 미터는 같은 방식으로 작동한다. 남들이 써야만 하는 표준을 발행하는 쪽은 그 안으로 넘어오는 모든 거래에서 통행료를 걷고, 그 통행료는 처음 그것을 세운 군사력과 경제력의 변동보다 오래 살아남는다.
세계무역기구와 국제표준화기구는 다자간 규칙을 통해 이 역학을 관리하려는 시도이며, 미터법 사례는 그 한계를 보여 준다. WTO 규칙은 회원국이 기술 규정을 어떻게 만드는지를 규율하고, ISO 표준은 누군가 채택해야 비로소 구속력을 갖는다. 그래서 어느 쪽도 거대 경제에 자국 산업이 쓰는 단위를 바꾸라고 강제하지 못한다. 연방 기관은 실행 가능한 범위에서 조달에 미터법을 쓰도록 지시받고 민간 부문은 관습 단위를 유지하는 미국의 이원적 태도는 바로 그 구조적 위치를 활용하는 것이다. 마찰을 피할 만큼만 국제 체계에 참여하고, 국내 산업은 기존 기반시설에 맞는 표준을 계속 쓰도록 내버려 둔다.
이 체계는 봉건적 측정의 통행료 징수 논리에서 벗어나도록 설계되었고, 자오선이 선택된 것은 보편적이었기 때문이다. “모든 시대에, 모든 민족에게”가 공언된 포부였다. 그러나 자오선은 파리를 지났고, 미터원기와 킬로그램원기는 프랑스에 보관되었으며, 국제도량형국은 생클루 공원의 브르퇴유관에 세워졌다. 이 체계는 존재한 첫 4분의 3세기 동안 프랑스의 권위에 봉사했다. 1875년 이후 프랑스는 더는 자신이 통제하지 않는 국제기구를 품고, 거기서 위신을 얻어 왔다.
미터 협약 기념일에 발효된 국제단위계의 2019년 재정의는 원래의 사업이 내세운 바를 이루려는 지금까지 가장 진지한 시도다. 킬로그램은 우주의 구조에 내재한 값인 플랑크 상수로 재정의되었다. 암페어는 기본 전하에, 켈빈은 볼츠만 상수에, 몰은 아보가드로 상수에 묶였다. 이제 어떤 물리적 인공물도 값이 흐트러지거나, 도난당하거나, 검증을 위해 세브르까지 가야 할 일이 없다. 미터는 이미 1960년에 백금·이리듐 막대를 원자의 파장으로 바꾸었고, 1983년에는 다시 빛의 속력으로 바꾸었다. 미터는 빛의 속력과 시간 단위 사이의 관계이며, 지구상 어디든 충분한 장비를 갖춘 실험실이라면 측정할 수 있다.
불어나는 이자
어디에도 머물지 않는 킬로그램은 사물의 보관권을 쥐는 것으로는 빼앗거나 통제할 수 없다. 그러나 그 정의를 관장하는 기관들, 즉 국제도량형국(BIPM), 국제도량형총회(CGPM), 국제도량형위원회(CIPM)는 주소를 세브르에, 예산을 유로화에, 정당성을 1875년의 조약에 두고 있다. 최고 권한은 회원국 대표들이 표결하는 국제도량형총회에 있다. 프랑스는 총회를 품고 있을 뿐 다스리지는 않는다. 측정의 기준을 플랑크 상수로 돌려놓은 일은 킬로그램이 무엇인지를 결정지었고, 누가 세계의 표준을 유지하고 판정하느냐는 질문은 1875년부터 그 일을 맡아 온 같은 조약 기구에 그대로 남겨 두었다.
이제 미터는 정밀 가공된 모든 부품의 공차와 SI를 채택한 모든 나라의 법적 정의 안에 자리 잡고 있다. 1999년 9월 23일 밤, 궤도선 한 대의 손실은 3억 2,760만 달러짜리 계획 속에서 1억 2,500만 달러를, 1799년부터 이자가 불어 온 분열된 체계의 청구서에 적어 넣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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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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