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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9년 타이프 협정은 15년에 걸친 레바논 내전을 끝낼 조건을 정했고, 마지막 전투는 1990년 10월에 멈췄다. 개정된 헌법 전문에는 정치적 종파주의, 즉 정부의 주요 직책을 모두 종교 종파별로 나누어 주는 제도의 폐지를 “기본적인 국가 목표”로 규정한 조항이 끼워 넣어졌다. 개정 헌법 제95조는 대통령이 위원장을 맡고 국회의장과 총리가 참여하는 국가위원회를 구성해, 종파별 권력 배분을 해체할 방안을 연구·제안하고 이를 위한 단계적 계획을 감독하도록 했다.
개헌 이후 36년 동안 이 위원회는 한 번도 구성되지 않았다. 2010년 나비 베리 국회의장이 마침내 위원회를 꾸리겠다고 발표했을 때, 모든 종파에서 터져 나온 반발이 그 구상을 묻어 버렸다. 위원회를 소집한 대통령은 없었고, 위원회의 부재를 헌법 위반으로 다룬 총리도 없었으며, 이 누락을 법정에서 문제 삼은 사람도 없었다. 조항은 폐지되지도 않은 채 무시당하며 헌법 속에 남아 있다. 변혁을 약속한 문구가, 그 변혁이 결코 일어나지 않아야 권력을 유지하는 사람들의 손에 맡겨져 있는 것이다.
레바논의 실패에 대한 흔한 설명은 이 나라가 짊어진 짐을 늘어놓는 것이다. 너무 많은 종파와 외국 군대, 너무 작은 나라에 너무 많이 쌓인 역사. 제95조는 더 날카로운 질문을 던진다. 언젠가 스스로를 폐지하겠다고 공식적으로 약속한 정치 체제가, 왜 35년 세월을 그 폐지가 결코 오지 않도록 하는 데 썼을까?
기계
이야기는 1943년 여름, 두 남자가 새 나라의 조건을 협상하며 맺은 거래에서 시작된다.
마론파 기독교도인 비샤라 엘쿠리 대통령과 수니파 무슬림인 리아드 엘솔흐 총리는 훗날 국민협약으로 불리게 될 합의에 이르렀다. 정치권력을 종파에 따라 나누는, 문서로 남기지 않은 합의였다. 대통령직은 마론파에게, 총리직은 수니파에게, 국회의장직은 시아파 무슬림에게 돌아갔다. 의석은 기독교도와 무슬림에게 6 대 5 비율로 배정됐다. 실제로 배분은 이들 최고위직 아래로도 이어졌다. 부처 장관직과 고위 공무원직, 군 지휘권과 사법부 인사가 종파별로 나뉘었다.
거래는 쌍방적이었고 명시적이었다. 무슬림은 레바논의 국경을 받아들이고 시리아나 더 넓은 아랍 국가와의 통합 요구를 접는다. 기독교도는 프랑스의 보호에 기대기를 멈춘다. 양측은 사실상 레바논인이 되기로 합의했다. 다만 레바논인이 된다는 것이 공동체 정체성 말고는 어떤 기준으로도 권력을 나눌 필요가 없다는 뜻이어야 한다는 조건이 붙었다.
이 구조 전체는 프랑스 위임통치 시기인 1932년에 실시된 인구조사에 비례해 짜였다. 그것은 지금도 레바논이 실시한 마지막 공식 인구총조사로 남아 있다. 이 조사에서 거주민 가운데 기독교도와 무슬림은 거의 같은 수였다. 기독교도 다수는 다른 곳에서 나왔다. 조사는 아메리카와 서아프리카 등지에 사는 이민자 약 25만 명도 함께 집계했는데, 이 디아스포라의 약 85%가 기독교도였고, 덕분에 등록된 레바논인 가운데 기독교도의 비중은 절반을 훌쩍 넘었다.
1989년의 타이프 협정은 이 공식을 재편했다. 의회는 기독교도와 무슬림이 50 대 50으로 나누는 구조로 바뀌었고, 의석은 1990년 개헌에서 108석이었다가 1992년 선거법으로 지금의 128석이 됐다. 마론파 대통령의 행정 권한은 상당 부분 줄어 각료회의로 넘어갔다. 수니파 총리는 독자적인 행정 권한을 얻었다. 시아파 국회의장의 임기는 1년에서 4년으로 늘어나 그 자리가 강해졌다. 그러나 타이프 협정은 종파주의라는 토대를 그대로 두었을 뿐 아니라 한 걸음 더 나아갔다. 의회와 최고위 공무원직에 대해 기독교도와 무슬림의 동수 배분을 헌법 자체에 새겨 넣은 것이다. 세 최고위직의 종파별 배분은 1943년 이래 그래 왔듯 아무도 감히 깨지 못하는 불문율로 남았다. 그리고 이 모든 체제를 언젠가 폐지하기 위한 조항인 제95조는, 바로 그 체제가 지속되어야 자리를 지킬 수 있는 정치 행위자들의 손에 맡겨졌다.
종파주의가 순전히 레바논의 발명품은 아니었다. 분열된 사회를 비례적 권력 분점으로 관리한다는 원리에는 유럽의 선례가 있었고, 아렌드 레이프하르트는 1969년 이를 협의제 민주주의라고 이름 붙인 뒤 이후 저작에서 발전시켰는데, 거기서 레바논은 유럽 밖의 핵심 사례 가운데 하나로 등장한다. 세미나실에서 이 구상은 우아했다. 모든 집단에 권력의 몫을 보장하고, 폭력의 유인을 없애고, 분열을 해소하지 않은 채 관리한다.
유럽 밖에서 레바논은 이 틀이 가장 오래, 가장 온전하게 작동해 온 사례였고, 이 틀은 훗날 수정을 거쳐 다른 분쟁 후 사회에 표준적인 제도 장치로 수출됐다.
나라를 움직이는 인구조사
권력 공식은 1932년 인구조사에 기대어 돌아간다. 아직 지금의 정치적 형태로 존재하지도 않던 나라를 위해 식민 행정부가 실시한, 94년 묵은 집계다. 그 데이터는 어느 공동체의 현재 비율도 보여 주지 못한다.
현재의 추정치에는 공식 근거가 없다. 1932년 집계를 대체한 공식 조사가 한 번도 없었기 때문이다. 추정치에 따르면 지금 레바논에서 단일 공동체로 가장 큰 것은 시아파 무슬림이고, 수니파 무슬림과 기독교도는 규모가 대체로 비슷해 각각 시민의 3분의 1에 조금 못 미치며, 여전히 가장 큰 기독교 교회인 마론파는 레바논인 여섯 명 가운데 한 명 정도로 줄었다. 이 수치들이 추정치에 머무는 까닭은 확실한 데이터를 얻으려면 인구조사가 필요한데, 체제가 인구조사를 허용할 수 없기 때문이다.
체제 전체가 확실한 데이터 앞에서 뒤집힐 수 있는 흐릿한 인구 수치 위에 서 있다. 이 나라의 종파 지도자라면 누구나 집계가 무엇을 드러낼지 안다. 어떤 공동체는 커졌고 어떤 공동체는 줄었다는 사실, 그리고 공식을 갱신하면 줄어든 쪽에서 커진 쪽으로 정치권력을 넘겨야 한다는 사실이다. 다른 일에는 좀처럼 뜻을 모으지 못하는 각 종파의 종교 지도자들이, 집계를 해서는 안 된다는 데에는 거의 한 세기 동안 뜻을 같이해 왔다.
레바논에서 개혁은 정치 행위자들의 합의로 움직이고, 합의란 어느 주요 집단도 잃지 않는다는 뜻이다. 인구조사는 패자를 만들고, 패자는 그것을 막을 만큼 힘이 세므로, 인구조사는 없다. 인구조사가 없으니 배분을 바꿔야 한다고 주장할 정당한 인구학적 근거도 없다. 배분이 바뀌지 않으니, 타이프 협정으로 가장자리만 손봤을 뿐 구조는 온전한 1943년의 합의가 여전히 누가 통치하고 누가 이익을 챙기는지를 정한다.
제95조의 국가위원회는 헌법이 요구하지만 한 번도 구성되지 않은 채, 1990년 이래 늘 있던 자리에 그대로 있다. 위원회는 한 번도 열린 적이 없다. 위원회를 소집하려면 체제가 애초에 막도록 설계된 바로 그 합의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후견의 엔진
헌법상의 합의에서 전등이 들어오지 않는 나라로 가는 길은 후견주의를 거친다. 레바논의 주요 부처는 모두 종파별로 배분되고, 이는 모든 장관이 부처의 명목상 기능이 아니라 자신을 그 자리에 앉혀 준 종파 후견인에게 책임을 진다는 뜻이다.
일자리, 계약, 인허가, 공공요금 설비 연결, 각종 혜택 같은 국가 서비스는 공동체를 통한 접근이라는 비공식 화폐인 와스타를 거쳐 오간다. 자격이 어떻든 정부 일자리를 얻는 것은 흔히 당신의 자임, 곧 공동체 지도자가 손을 써 주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자임이 손을 써 준 것은 당신의 고마움이 그의 정치 자본이기 때문이다.
이것이 기반시설의 모습으로 나타나면 어떻게 되는지를 가장 선명하게 보여 주는 것이 레바논전력공사(EDL)다. 능력이 아니라 당파적 연줄에 따라 임명된 이사회가 운영하고, 정치인들이 지지 기반에게 일자리를 나눠 주는 기계로 써 온 EDL은 수십 년 동안 기술적 결함과 요금 청구 실패, 노골적인 도둑질로 전력을 흘려 왔다. 1985년에 이미 전기 도둑질과 요금 미납으로 인한 비기술적 손실이 소비량의 36%로 추산됐다. 2024년 8월 EDL은 연료가 완전히 바닥났고 온 나라가 암흑에 잠겼다. 2025년까지 국가 전력 공급은 하루 몇 시간 수준으로 회복됐는데, 2021년 여름 이후 EDL이 간신히 공급해 온 하루 1~3시간에서 늘어난 것이었다. 2026년 이스라엘과의 전쟁은 그 부분적 회복마저 되돌려 놓았다.
장관들에게는 EDL을 정비할 유인이 거의 없었다. 정비란 여러 공동체의 정치적 임명자를 한꺼번에 해고하고 그 정치적 비용을 각 종파 지지층에 나누어 지우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체제는 전력망이 썩어 가도록 내버려 두는 편을 합리적이라고 여겨 왔다. 2002년 법이 설치를 요구한 전력 규제 기관은 2025년 9월에야 임명됐다.
세금 징수도 같은 논리를 따른다. 레바논의 GDP 대비 조세 비율은 위기 이전 약 15%에서 2021년 약 6%로 무너졌고, 2024년까지 약 11%로 회복하는 데 그쳤다. 국가 총부채는 2021년 GDP의 183%에 이른 것으로 추정되어 세계에서 가장 높은 축에 속했다. 이 수치 뒤의 세수 기구는 효과적인 징수에 아무 관심도 없는 후견 네트워크를 통해 채워졌다. 효과적인 징수는 독자적으로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는 국가에 돈을 대 줄 것이고, 그러면 그들의 정치권력이 기대고 있는 의존 관계가 녹아 없어질 것이기 때문이다.
조각들을 맞추면 하나의 고리가 된다. 종파주의는 후견을 낳고, 후견은 서비스의 실패를 낳고, 서비스의 실패는 종파별 공급자에 대한 의존을 낳는다.
그 공급자에는 시아파 지역에서 헤즈볼라가 운영하는 병원과 학교, 복지망이 있고, 기독교 정당들의 병행 서비스가 있으며, 미래운동의 수니파 사회 프로그램이 있다. 이들에 대한 의존은 종파에 따른 투표 충성을 강화하고, 그 충성이 후견 체제를 유지시킨다.
베이루트항 폭발
2020년 8월 4일, 베이루트항에 보관돼 있던 2,750톤 화물의 질산암모늄이 폭발했다. 화물 가운데 얼마가 폭발 당시까지 남아 있었는지는 여전히 논란이다. 폭발로 최소 218명이 숨지고 7,000명이 다쳤으며 도시의 넓은 구역이 파괴됐다. 이 질산암모늄은 2014년 화물선 로수스호에서 압수된 뒤 줄곧 아무런 안전 조치 없이 보관돼 왔다. 세관도, 군도, 사법 당국도, 역대 장관들도 그것이 거기 있다는 것을 알았다. 6년 동안 서한과 법원 신청이 오갔지만, 누구도 그것을 안전하게 관리하거나 치우지 않았다. 가장 그럴듯한 이유는 체제 그 자체다. 이 사안은 서로 다른 종파 후견인이 장악한 여러 기관에 걸쳐 있었는데, 그 누구에게도 다른 종파의 관할 아래 보관된 위험물을 처리하는 정치적 비용을 떠안을 유인이 없었다. 뒤이은 형사 수사는 거듭 가로막혔다. 수사 판사들은 기피되거나 교체됐고, 정치인들은 제도상의 지위를 이용해 절차에 이의를 제기했으며, 결국 수석 판사가 레바논 검찰총장을 기소하자 검찰총장이 수사를 중단시켰다.
타레크 비타르 판사는 2025년 수사를 재개했다. 이 사건으로 정치인과 보안 기관 수장들을 포함해 70명 넘는 사람이 기소됐다. 2026년 10월 현재 그의 공소장은 여전히 계류 중이며, 고위 관리 가운데 재판을 받은 사람은 하나도 없고 유죄 판결은 말할 것도 없다. 이 폭발은 종파적 후견 체제의 실패가 물리적 형태를 띨 때 무엇이 만들어지는지를 가장 압축적으로 보여 준다. 사법적 책임 없는 대량 죽음이다.
약한 국가로 누가 이득을 보나
레바논에 대한 표준 처방은 제대로 된 개혁가를 찾아내 바깥에서 세게 밀어붙이는 것이다.
이 처방이 번번이 실패하는 까닭은 레바논 체제 안의 모든 행위자에게 국가를 약하게 묶어 둘 합리적 유인이 있기 때문이다. 중앙의 역량이 커지면 종파 후견인들 사이의 힘의 균형이 움직인다.
유능한 레바논 국가, 곧 세금을 제대로 걷고, 종파와 상관없이 서비스를 제공하고, 폭력을 독점하는 군대를 지휘하고, 독립적인 사법부를 통해 법을 집행하는 국가는 종파 공동체들 사이에서 권력을 재분배할 것이다. 국가가 전기를 안정적으로 공급한다면 헤즈볼라의 병행 전력 기반시설은 후견 자산으로서 가치를 잃을 것이다. 공무원을 능력에 따라 채용한다면 종파 후견인들은 공동체에 혜택을 나눠 주는 주된 수단을 잃을 것이다. 사법부가 독립적이라면 후견 장치 자체가 기소 대상이 될 것이다.
국가 역량을 키우는 모든 개혁은 국가의 한 조각을 쥔 모든 행위자의 권력 기반을 위협한다. IMF 협상은 이것이 실제로 어떻게 전개되는지 보여 준다.
2020년 3월 레바논이 국가 부채를 상환하지 못해 사상 첫 디폴트를 선언한 뒤, IMF는 어떤 구제 프로그램이든 구체적인 구조 개혁을 조건으로 내걸었다. 은행 부문 구조조정, 손실 분담 입법, 자본 통제, 레바논 중앙은행(Banque du Liban)에 대한 독립 감사였다. 2022년 4월 실무진 차원의 합의가 이루어졌다. 의회는 그 뒤 패키지의 일부를 통과시켰다. 2025년 4월의 은행 비밀주의 개정과 같은 해 7월의 은행 구조조정법이다. 그러나 2026년 중반까지도 은행 손실을 누가 떠안을지 정하는 법은 여전히 묶여 있었고, IMF 프로그램은 체결되지 않았다. 레바논 관리들은 조건을 알고 있었다. 조건은 구체적이고 공개돼 있었으며 IMF 방문단이 올 때마다 되풀이됐다. 걸림돌은 개혁 하나하나가 특정 종파 후견인의 재정적·정치적 기반을 무너뜨릴 방식으로 손실을 나눈다는 점이었고, 그 개혁을 막을 수 있는 행위자마다 그럴 유인과 제도적 지렛대를 함께 갖고 있었다.
이 틀에서 보면 헤즈볼라의 병행 국가는 모든 종파 행위자가 따르는 논리의 극단적 표현이다. 헤즈볼라는 국가가 제공하지 않는 것을 직접 만들었고, 그렇게 해서 자신의 정치권력이 기대는 의존 관계를 쌓았다. 다른 주요 종파 행위자들도 모두 규모만 작을 뿐 같은 일을 해 왔다. 헤즈볼라를 경쟁자들과 구별 짓는 것은 그 규모, 그리고 그것을 지키는 군사력이다.
2025년 2월 분명한 개혁 의지를 내걸고 출범한 나와프 살람 정부도 바로 이 체제 안에서 움직인다. 개혁이 성과를 낸 적이 없지는 않다. 1958년 위기 이후 푸아드 셰하브의 공무원위원회는 내전으로 권한을 빼앗기기 전까지 각 부처에 능력 기반 채용을 들여왔다. 그러나 종파별 배분 그 자체를 무너뜨린 개혁은 아직 없다.
2019년의 사우라(혁명), 그리고 이길 수 없었던 이유
2019년 10월 17일, 레바논 역사상 가장 폭넓게 종파를 가로지른 시민 동원이 터져 나왔다. 구호는 “쿨룬 야니 쿨룬”, 곧 ‘그들 모두란 그들 모두를 뜻한다’였다. 시위는 종파를 가리지 않고 모든 정당을 겨냥했고, 공동체 단위의 불만만 인정하도록 설계된 체제 안에서 전국적 불만을 만들어 냈다. 종파 지도 전역에서 수십만 명이 참여했고 운동은 몇 달 동안 이어졌다. 2주 만에 사드 하리리 정부를 사퇴로 몰아넣었지만, 그것을 체제의 변화로 바꾸지는 못했다. 사우라가 움직여야 했던 모든 기관은 종파 후견인들이 쥐고 있었고, 그들의 권력은 시위대가 공격하던 바로 그 종파적 충성에 달려 있었다. 이어 금융 붕괴가 깊어지고, 코로나19가 닥치고, 항구가 폭발했다. 위기 하나하나가 운동의 힘을 빼고 관심을 다른 데로 돌렸다.
바깥의 후견인들
기능 장애는 안에서 스스로를 유지하지만, 이란과 사우디아라비아, 프랑스가 하는 일도 여전히 중요하다. 셋 모두 스스로를 통치하기에는 너무 약한 레바논 국가에서 저마다의 쓸모를 찾아냈기 때문이다.
이란은 빈틈을 메웠다. 국가가 없는 곳에서 이란은 헤즈볼라를 통해 병행 군대와 사회 서비스망을 세웠고, 공백을 정치적 자산으로 바꿨다.
2024년 전쟁 이전 헤즈볼라는 화력에서 레바논군을 앞섰다. 레바논군은 병력은 더 많지만 화력은 훨씬 약했다. 헤즈볼라는 출처에 따라 4만~5만 명으로 추산되는 전투원과 12만~20만 발의 로켓과 미사일을 보유했다. 2024년 전쟁은 헤즈볼라를 크게 약화시켰다. 하산 나스랄라가 2024년 9월 살해됐고, 조직은 오랜 지도부 혼란과 모든 지휘 단계에서의 상당한 손실을 겪었다. 그러나 2026년 초가 되자 이스라엘은 헤즈볼라가 무장 해제되는 속도보다 빠르게 재무장하고 있다고 말했고, 한 레바논 소식통은 이 조직이 자신을 파괴하려는 이스라엘의 작전과 나란히 재건되고 있다고 묘사했다. 2026년 전쟁 직전 이스라엘의 한 연구 단체는 헤즈볼라의 무기고를 로켓과 미사일 약 2만 5,000발로 추산했다. 실질적 주권을 갖춘 제대로 작동하는 레바논 국가라면 헤즈볼라가 메우는 공백을 닫을 것이다. 1980년대 초 헤즈볼라 창설로 거슬러 올라가는 이란의 40년 투자는 그 공백이 영원하리라는 데 건 내기였다.
사우디아라비아는 돈과 한 피후견 가문을 통해 움직였다. 라피크 하리리는 사우디 오제르로 재산을 쌓았다. 그가 사우디아라비아에서 키운 이 건설 회사는 왕실 후견 계약을 대거 따내며 중동 최대 건설사 가운데 하나로 성장했다. 그는 레바논에서 가장 강력한 수니파 정치인이 됐고, 1992년부터 2004년 사이 두 차례 총리를 지내며 걸프 지역의 투자를 전후 재건으로 끌어들였지만 종파 체제에는 손대지 않았다. 2005년 그의 암살은 후견의 사슬을 흔들었지만 끊지는 못했다. 아들 사드가 정치적 지분과 사우디와의 관계를 함께 물려받았고, 그 역시 두 차례 총리를 지냈다. 이 의존의 성격은 2017년 11월에 드러났다. 리야드를 방문한 사드 하리리가 사우디 텔레비전에 나와 레바논 총리직 사퇴를 발표한 것이다. 뉴욕타임스가 인용한 레바논과 서방 관리들은 그가 사우디 보안 당국에 붙잡혀 휴대전화를 빼앗기고 미리 작성된 사퇴 연설문을 건네받았다고 말했다. 하리리는 자신의 의사에 반해 억류됐다는 주장을 부인해 왔다. 피후견인의 정치적 생존은 레바논의 어떤 국가 기관도 아닌 후견인에게 달려 있었다. 그는 에마뉘엘 마크롱이 개입한 뒤에야 사우디를 떠났고, 귀국하자 사퇴를 철회했다. 그 무렵 가문의 재산을 떠받치던 사우디 기반의 회사 사우디 오제르는 이미 문을 닫은 뒤였다. 사드 하리리는 2022년 1월 정치 활동을 중단했다. 그의 미래운동은 2025년 2월 활동을 재개했고, 리야드는 그 뒤 다시 수니파 인사들에게 공을 들여 왔지만 예전의 정치적 지분을 하리리 가문에 돌려주지는 않았다. 그 채널이 살아 있는 동안 그 영향력은 국가의 약함에 기대고 있었다.
프랑스의 역할은 위기 외교였다. 16세기부터 레반트 기독교도의 보호자였고, 1920년부터 위임통치 아래 대레바논을 관할했으며, 종파주의가 자라난 헌법 틀을 설계한 프랑스는 2024년 11월 휴전을 공동 중재했고, 2020년 폭발 뒤에는 마크롱을 베이루트에 보냈으며, 2025년 정치 이행을 지지했다. 개입할 때마다 증상을 다루었을 뿐 체제는 그대로 두었다. 파리의 의도가 무엇이든, 베이루트에서 프랑스의 입지는 체제가 고장 날 때 불려 오는 외부 강국이라는 데 기대 왔다.
스스로를 통치할 수 있는 레바논은 이란이 이용하는 공백을 닫고, 사우디아라비아가 길러 온 의존을 끝내고, 프랑스가 관리할 위기를 줄일 것이다. 후견인마다 자신의 이해에 맞는 특정한 종류의 약함을 끌어다 써 왔다. 다만 외부의 간섭이 제도적 약함 그 자체의 원인은 아니다.
레바논 중앙은행, 그리고 그것을 지켜 준 이들
대략 2016년부터 리아드 살라메 총재가 이끄는 레바논 중앙은행은 일련의 “금융 공학” 작업을 벌였다. 레바논 파운드화의 달러 페그를 지키려고 시중은행들에서 시장보다 높은 금리로 달러를 빌렸고, 그렇게 끊임없이 새 달러가 들어와야 굴러가면서 정치적 연줄이 닿은 레바논 은행권에는 과도한 수익을 안기는 순환 구조를 만들었다. 2019년 10월 이 구조가 무너지자 평범한 예금자들은 저축에 손댈 수 없게 됐다. 파운드화는 가치의 98% 이상을 잃었다. 포괄적인 예금자 보호 입법은 아직 이뤄지지 않았다. 이 일이 벌어지는 동안 개입한 정치인은 아무도 없었다. 은행 부문은 종파 엘리트들이 재산을 쌓아 두고 굴리는 주된 수단이었으므로, 페그를 위협하는 것은 곧 지도자마다 자기 후견 네트워크의 재정 기반을 위협하는 일이었다. 중앙은행은 예금자들의 달러가 바닥날 때까지 그 네트워크를 계속 지켰다.
세 가지 경쟁 설명
세 가지 반론은 저마다 실재하는 무언가를 짚지만, 충분히 따라가 보면 모두 종파 체제로 되돌아온다.
팔레스타인인의 존재. 같은 시기 요르단과 시리아도 대규모 팔레스타인 난민을 받아들였다. 요르단은 1970년 검은 9월을 겪었지만, 국가가 단일한 안보 대응을 펼 수 있었기에 하심 왕정은 살아남았다. 시리아는 아사드 정권이 중앙집권적 권위를 행사했기에 내전 없이 난민을 흡수했다. 레바논은 단일한 대응을 마련할 수 없었다. 종파 체제가 국가를 분쟁과 똑같은 선을 따라 갈라놓았기 때문이다. 기독교 민병대는 팔레스타인 무장 세력을 마론파의 인구학적 지위에 대한 위협으로 보고 반대했다. 수니파 지도자들은 범아랍 연대를 내세워 그들을 받아들였다. 시아파 공동체는 팔레스타인 분파들이 같은 남부 땅을 두고 다투자 아말 운동을 통해 그들에 맞서 조직했다. 팔레스타인 무장 세력은 내전의 주요 원인 가운데 하나였지만, 그 해악은 종파 체제가 감당할 수 없는 압력을 더하는 방식으로 작동했다.
1975년부터 1990년까지 이어진 내전 자체가 나라를 망가뜨린 사건으로 취급되기도 한다. 그러나 내전은 이미 완전히 작동하던 종파적 역학이 방아쇠를 당긴 것이었다. 그리고 내전을 끝낼 조건을 정한 타이프 협정은 그 역학을 해소하는 대신 재생산했다. 전시 민병대 지도자들을 전후 정치 행위자로 굳히고, 그들의 종파 지지층을 합의 안에 성문화했다. 내전은 이미 존재하던, 그리고 내전을 가능하게 했던 기능 장애를 더 깊게 만들었다.
시리아의 후견 통치, 1990~2005년. 1976년에 시작된 군사 주둔의 마지막 15년이다. 2000년 사망할 때까지는 하페즈 알아사드, 그 뒤로는 아들 바샤르 치하의 다마스쿠스는 그 15년 동안 종파 체제를 통해, 종파 후견 네트워크를 지렛대로 삼아 레바논 정치를 관리했다. 라피크 하리리 암살 뒤 일어난 백향목 혁명으로 시리아가 철수했을 때, 종파 체제의 구조는 완전히 온전했다. 시리아는 이미 자리 잡은 기능 장애를 발견해 이용했고, 떠날 때 그 기반을 손상 없이 남겨 두었다.
셋 모두 종파 체제가 처리해 낸 사건이고, 체제는 그런 사건을 하나 흡수하고 살아남을 때마다 더 단단히 뿌리내렸다. 종파 행위자를 안보나 서비스의 주된 공급자로 만든 위기 하나하나가, 체제를 스스로 영속하게 하는 의존 관계를 더 깊게 했다.
보스니아도 같은 설계로 돌아간다
종파 체제의 구조가 내전과 외국의 점령, 혁명을 촉발한 암살, 금융 붕괴, 대규모 사상자를 낸 폭발, 거듭된 이스라엘의 군사 작전을 겪고도 매번 그 논리를 온전히 지킨 채 살아남았다면, 그 논리는 레바논 너머에서도 중요하다. 그리고 그 논리는 수출됐다.
1995년 데이턴 협정은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에 같은 분쟁 후 권력 분점 틀 위에 세운 통치 구조를 만들었다. 보슈냐크인, 크로아티아인, 세르비아인이 한 명씩 맡는 3인 순환 대통령제, 모든 정부 단계에서 민족별로 배분되는 직책, 그리고 행정과 법률을 따로 갖춘 두 개의 반(半)자치 정치체다. 그 결과 약 310만 명의 인구를 위해 대통령 다섯 명(3인 국가 대통령단에 정치체마다 한 명씩), 총리 열세 명, 의회 열네 곳, 의원 700여 명이 존재한다.
통치 공식은 전투를 끝내려고 협상한 전시 합의, 즉 민족별 할당과 정치체 분할에서 나왔다. 1943년 국민협약과 1989년 타이프 협정과 같은 설계 논리다. 개혁 장치도 같은 방식으로 스스로를 봉인한다. 2009년 유럽인권재판소는 세이디치·핀치 대 보스니아 사건에서, 대통령직과 상원의 민족별 배분이 소수자를 최고위직에서 배제함으로써 유럽인권협약을 위반한다고 판결했다. 17년이 지난 지금도 판결은 이행되지 않았다. 이행하려면 배분이 지속되어야 자리를 지키는 행위자들의 동의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세이디치·핀치 판결은 보스니아의 제95조다. 최고위직에 관한 체제의 민족 규칙이 유럽 인권법을 어긴다는 권위 있는 판단이, 그 규칙의 보호를 받는 사람들이 변화를 막을 수 있기에 집행되지 않은 채 놓여 있다. 보스니아 체제는 스스로 질서를 만들어 내는 데 애를 먹어 왔고, 그래서 외부의 관리가 늘 따라붙었으며, 그 관리가 약해지거나 적대적으로 돌아서면 상황이 나빠진다.
보스니아에는 레바논이 가져 본 적 없는 것이 있다. 기능 장애를 감싸는 유럽의 법적 틀, 곧 유럽인권재판소의 관할권과 EU 가입 조건, NATO의 안보 주둔이다. 그 비계가 더 무겁고 자원도 더 넉넉하기에 보스니아의 기능 장애는 더 느리게 진행됐고, 외부 압력 아래 보스니아 지도자들은 국방과 간접세, 사법 개혁을 국가 차원으로 옮기는 데 동의하기도 했다. 그래도 핵심 배분에 걸린 자물쇠는 버텨 왔다. 유럽인권재판소의 판결이 사라예보에서 이행되지 않은 채 놓여 있는 이유는, 제95조의 위원회가 베이루트에서 한 번도 구성되지 않은 이유와 같다.
보스니아에서 정부 구성은 어느 민족 집단도 자기 몫이 줄어드는 결과를 받아들이지 않기에 으레 몇 달씩 걸린다. 민족 간 권력을 재분배할 개혁을 조건으로 하는 EU 가입은 20년 동안 기어가듯 나아갔다. EU 정상들은 2024년 3월 가입 협상 개시를 승인했지만, 2년이 지나도록 보스니아는 공식 협상을 시작하지 못했다. 2025년 유죄 판결로 대통령직에서 물러난 뒤에도 여전히 밀로라드 도디크가 조종하는 스릅스카 공화국은 헤즈볼라와 레바논 국가의 관계와 구조적으로 닮은 분리주의 정치를 펼친다. 병행 기관을 세우고, 중앙 국가의 약함을 정치적 기반으로 활용하며, 외부 후견인의 지원을 받는다. 레바논에서는 2005년 시리아의 철수와 뒤이은 사우디의 후퇴로, 2019년 붕괴에 앞선 몇 해 동안 체제를 떠받치던 외부 지지대가 줄었다. 메커니즘이 같다면, 레바논은 보스니아의 길이 어디로 이어지는지 말해 준다.
이스라엘의 2026년 레바논 전쟁은 3월 초, 미국과 이스라엘이 이란 최고지도자를 살해한 뒤 헤즈볼라가 이스라엘에 포격을 개시하면서 시작됐다. 5월 말까지 전쟁은 이스라엘군을 리타니강 너머로 데려갔고, 레바논 정부 집계로 3,300명 넘게 숨지고 100만 명 넘게 피란했다. 리타니강 도하는 4월에 합의된 휴전에도 불구하고 이루어졌다. 6월 레바논과 이스라엘은 워싱턴에서 미국이 중재한 기본 합의에 서명했다. 이스라엘의 단계적 철수를 비국가 무장 단체, 곧 헤즈볼라의 검증된 무장 해제와 연계하는 합의였다. 협상 테이블에 앉지 않았던 헤즈볼라는 이를 거부했다.
이스라엘은 1978년, 1982년, 2006년, 2024년에 그랬듯 2026년에도 레바논에 있다. 레바논 국가는 이제 서류상으로 무력 독점을 약속했다. 그 약속을 지키는 길은 제95조의 위원회가 단 한 번도 열리지 못하게 막아 온 바로 그 종파적 거부권들을 지나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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