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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린숏은 샬러츠빌에서 자동차가 군중을 들이받은 지 몇 시간 만에 나타났다. 1945년 철학서의 한 각주에서 따온 대목이 사진으로 찍히고 잘리고 설명이 붙은 채, 사람들이 하고 싶은 일을 이미 정해 두고 지적 명분을 찾을 때 정확하고 손에 쥐기 좋은 논증이 퍼지는 방식 그대로 트위터와 페이스북으로 퍼져 나갔다. 그달 말이 되자 그 이미지는 어디에나 있었다. 글은 카를 포퍼의 것이었고, 논증은 관용적인 사회가 자신을 파괴하려는 이들에게 무엇을 빚지고 있느냐에 관한 것이었으며, 사람들이 끌어낸 함의는 분명했다. 우리는 더 이상 이것을 참아 줄 필요가 없다.

2005년 7월, 헤이르트 빌더르스는 네덜란드의 한 신문에 이슬람 국가 출신의 이민을 금지하자는 기고문을 실으면서 자신의 정식을 직설적으로 내놓았다. “우리는 거리에서, 모스크에서, 법정에서 불관용한 자들에게 불관용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그는 테러에 대한 경고와 함께 철학적 주장을 내놓았다. 불관용적인 종교를 관용하는 것은 관용이 지키려는 자유주의적 가치와 모순된다는 것이다. 이 주장은 밈과 같은 논리적 뼈대와 같은 결론을 공유하며, 이름을 대든 대지 않든 같은 사상가에게 기댄다.

양쪽이 모두 옳을 수는 없고, 실은 어느 쪽도 옳지 않다. 같은 논증이 두 가지 일을 다 해낼 수 있는 것은, 조건을 신중하게 붙인 논증이 그 조건에서 떨어져 나오면 어느 편의 무기로도 바뀔 수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그 과정에서 무엇이 벗겨져 나갔느냐다.

주석

포퍼는 관용의 역설을 본문 바깥의 주석에 넣었다. 1945년에 출간된 《열린사회와 그 적들》 제1권 7장 미주의 주석 4다. 관용에 관한 대목은 230단어 남짓이다. 이것을 끌어다 쓰는 사람 대부분은 기껏해야 첫 문장만 읽었다.

내용은 이렇다. “무제한의 관용은 관용의 소멸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불관용한 자들에게까지 무제한의 관용을 베푼다면, 관용적인 사회를 불관용한 자들의 공격으로부터 지킬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면, 관용적인 사람들은 파멸하고 관용도 그들과 함께 사라질 것이다.” 스크린숏은 대략 여기서 끝난다. 그러나 주석은 계속된다. “그렇다고 해서 예컨대 불관용의 철학을 표명하는 것을 언제나 억압해야 한다는 뜻은 아니다. 합리적 논증으로 맞서고 여론으로 견제할 수 있는 한, 억압은 분명 매우 어리석은 일일 것이다.” 포퍼가 억압을 허용하는 것은 논증과 여론이 실패하는 지점에 이르러서다. “모든 논증을 규탄하는 데서 출발하고” 추종자들에게 “논증에 주먹이나 권총으로 답하라”고 가르치는 운동 앞에서라면 그렇게 실패할 수도 있다. 한 가지 점에서는 밈보다 더 나아간다. 불관용을 설파하는 운동은 법 밖에 두어야 하며, 불관용과 박해의 선동은 살인 선동처럼 범죄로 다루어야 한다는 것이다.

포퍼는 억압의 문턱을 정하고 있다. 밈이 퍼뜨리는 것은 첫머리 문장들이다. 그 결론을 허용할 수 있게 만드는 조건은 뒤따르는 문장들에 나오고, 그 문장들은 스크린숏에 없다.

포퍼의 이력은 이 논증과 무관하지 않다. 그는 독일의 오스트리아 병합을 내다보고 1937년 빈을 떠나 뉴질랜드로 갔다. 그의 예상은 맞았다. 1938년 3월 히틀러가 오스트리아에 들어왔고, 이미 크라이스트처치에 있던 포퍼는 거의 곧바로 《열린사회》를 쓰기 시작했다. 그는 훗날 이 책을 자신의 “전쟁 노력”이라고 불렀다. 역설은 자유주의 제도가 민주주의 자체의 장치가 민주주의를 겨누는 것을 막지 못하는 광경을 지켜본 사람, 그리고 왜 그런 일이 일어났는지, 손쓸 방법이 있다면 그것이 무엇인지 신중하게 생각하려 애쓰던 사람에게서 나왔다. 그가 조건을 그토록 구체적으로 정한 데에는 방어적 억압에 백지수표를 써 주지 않으려는 의도적인 망설임이 담겨 있다. 그가 직접 지켜본 바로는, 그런 권력은 보호해야 할 사람들을 거듭 겨누어 왔다.

그 조건을 빼면 이 대목은 억압을 허락하는 일반 면허처럼 읽힌다. 밈은 바로 그렇게 쓴다.

관용에 관한 포퍼의 글 전문

카를 포퍼, 1945년:

“덜 알려진 것은 관용의 역설이다. 무제한의 관용은 관용의 소멸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불관용한 자들에게까지 무제한의 관용을 베푼다면, 관용적인 사회를 불관용한 자들의 공격으로부터 지킬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면, 관용적인 사람들은 파멸하고 관용도 그들과 함께 사라질 것이다. — 이렇게 정식화한다고 해서, 예컨대 불관용의 철학을 표명하는 것을 언제나 억압해야 한다는 뜻은 아니다. 합리적 논증으로 맞서고 여론으로 견제할 수 있는 한, 억압은 분명 매우 어리석은 일일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필요하다면 힘을 써서라도 그것을 억압할 권리를 주장해야 한다. 그들은 합리적 논증의 차원에서 우리와 만날 준비가 되어 있지 않고 오히려 모든 논증을 규탄하는 데서 출발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들은 합리적 논증이 기만적이라며 추종자들이 거기에 귀 기울이지 못하게 하고, 논증에 주먹이나 권총으로 답하라고 가르칠지도 모른다. 그러므로 우리는 관용의 이름으로 불관용한 자들을 관용하지 않을 권리를 주장해야 한다. 불관용을 설파하는 운동은 어떤 것이든 스스로 법의 테두리 밖에 선 것이라고 주장해야 하며, 살인이나 납치, 노예무역의 부활을 선동하는 것을 범죄로 여기듯 불관용과 박해를 선동하는 것을 범죄로 여겨야 한다.”

누가 결정하는가?

포퍼가 실제로 쓴 글을 읽고 나면 해법이 뻔해 보이기 쉽다. 그의 조건을 적용해 어떤 운동이 합리적 논증을 거부하고 추종자들에게 반대 의견에 주먹이나 권총으로 대응하라고 가르치고 있는지 묻고, 그렇다는 답이 나올 때만 역설을 꺼내 들면 된다는 것이다.

조건 자체는 옳지만 그것만으로는 여전히 충분하지 않다. 그 조건이 충족되었는지를 누가 판정하느냐는 물음에는 중립적인 답이 없기 때문이다. 포퍼도 이를 알았다. 그가 내놓은 최선의 답은 대중에게 충분한 정보를 제공하는 제도가 뒷받침하는 다수결 투표였지만, 그 자신도 그것이 절대 확실하지는 않다고 인정했다. 이것을 “누가 결정하는가?” 문제라고 부르자. 이것이 역설의 핵심에 놓인 철학적 난제이며, 이 논증을 정치적으로 전유하는 모든 시도가 파고드는 틈이다.

존 롤스는 《정의론》에서 같은 문제를 다시 다뤘다. 그의 결론은 포퍼의 것과 모양이 같다. 불관용한 종파는 평등한 자유를 거부당해도 불평할 권리가 없다. 그들 자신이 남에게 그 자유를 거부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의로운 사회는 대체로 불관용한 자들을 관용해야 하며, 행동할 권리는 사회의 안전이 구체적으로 위협받을 때를 위해서만 남겨 둔다.

롤스 역시 “누가 결정하는가?”를 믿을 만한 절차로 환원하지 못했다. 그는 구조적 선의, 즉 원칙을 일관되게 적용하는 제도에 기대는 데서 멈췄고, 제도 자체가 압박을 받을 때 그 선의를 어떻게 지킬지는 설명하지 않았다. 문제는 언제나 어떤 제도이며, 누가 그 제도를 장악하느냐다.

헤르베르트 마르쿠제는 전혀 다른 해법을 시도했다. 1965년 에세이 〈억압적 관용〉에서 그는 자유주의 사회가 내세우는 관용이 그 자체로 지배의 도구, 곧 열린 토론이라는 외피 아래 현상을 유지하는 장치라고 주장했다. 그의 결론은 이렇다. 전위는 대학 같은 제도 안에서 “퇴행적”이고 “비인간적”인 사상을 억압할 정당성이 있다. 권력의 불균형과 세뇌라는 지금의 조건에서는 공평한 토론이 기존의 관점을 강화하고 대안을 차단하기 때문이다. 마르쿠제는 포퍼와 정반대의 해법에 이르렀다. 포퍼에게 억압은 반론이 실패한 뒤에야 다다르는 최후의 수단이지만, 마르쿠제는 퇴행적 운동이 “활동을 시작하기 전에” 관용을 거두어야 한다고 요구하고, 사회가 이미 비상사태에 있다는 선언으로 가장 극단적인 제한을 정당화한다.

오늘날의 플랫폼 퇴출 논쟁에서 마르쿠제가 명시적으로 인용되는 일은 거의 없지만, 그의 논리는 그 논쟁을 곧장 관통한다. 어떤 플랫폼이 특정 연사에게 자리를 내주는 것 자체가 해악의 한 형태라고, 증폭은 곧 지지이고 그 발언을 관용하는 것은 폭력을 관용하는 것이라고 주장할 때, 스크린숏에 포퍼의 이름이 박혀 있더라도 그 플랫폼이 펴는 것은 마르쿠제의 논증이다. 그 논증은 논증이 실패하기를 기다리지 않고, 견해의 내용을 기준으로 관용을 거두어들인다.

포퍼도 경험칙 하나는 내놓았다. 같은 주석에서 그는 “호혜적으로 응할 준비가 된 사람, 즉 관용적인 사람을 모두 관용하는” 정부, 그리고 “대중의 통제를 받고 대중에게 책임을 지는” 정부를 요구하면 역설들을 피할 수 있다고 말한다. 그가 제안하는 통제는 대중에게 충분한 정보를 제공하는 제도와 결합한 어떤 형태의 다수결 투표이며, 괄호 안에서는 약점을 시인한다. “절대 확실한 수단은 존재하지 않는다.” 이 규칙은 누구를 관용할지 말해 주고 판단을 오류를 범할 수 있는 민주적 제도에 맡기며, 그것을 정하려는 시도는 하나같이 반대편에 허점을 연다. 그의 더 넓은 처방은 각주를 훌쩍 넘어 《열린사회》 본문 전체에 걸쳐 있다. 먼저 반론과 민주적 회복력을 위한 제도적 투자가 오고, 억압은 그것들이 실패했음이 분명히 드러난 뒤에야 쓰는 절대적 최후의 수단으로만 남는다.

다른 시도들

포퍼는 마지막에, 롤스는 안전이 구체적으로 위협받을 때에만, 마르쿠제는 예방적으로 억압한다.

무기가 된 역설

샬러츠빌 사태 직후 몇 시간 동안 포퍼 각주의 스크린숏이 소셜 미디어에 퍼졌다. 이어진 며칠, 몇 주 동안 주요 매체의 논평들이 이를 받아 썼다. 쿼츠는 “백인 우월주의자들이 당신이 몰랐으면 하는 철학 원칙”이라는 제목의 글을 실어, 역설을 근거로 샬러츠빌 행진은 애초에 허가되지 말았어야 했고 불관용을 옹호하는 것 자체를 범죄로 다뤄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글은 널리 퍼졌고, 조건에서 떨어져 나온 포퍼의 결론이 억압을 위한 기성품 명분 노릇을 한 밈의 눈에 띄는 한 부분이 되었다.

이런 원용의 논리 구조는 한결같았다. 이 사람 또는 이 운동은 불관용하다. 포퍼는 관용적인 사회가 불관용한 자들을 관용해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따라서 억압은 정당하다. 포퍼가 정한 문턱, 즉 합리적 논증을 거부하고 폭력을 가르치는 운동의 경우처럼 논증과 여론이 더는 운동을 견제할 수 없게 되는 지점은 이 추론 어디에도 나타나지 않았다. 특정 연사가 그 조건을 충족하는지는 아무도 묻지 않았다. 포퍼의 논증이라면 증거를 요구했을 일을 “불관용”이라는 단어 하나가 전부 떠맡고 있었다.

샬러츠빌이라는 맥락은 실재한다. 신나치들이 횃불을 들고 미국 도시를 행진한 일은 사소한 도발이 아니며, 대응하고 싶은 충동은 이해할 만하다. 그러나 역설은 훨씬 더 넓은 억압 충동, 논증이나 그 구체적 조건을 들여다보기도 전에 이미 형성되어 있던 충동에 미리 승인 도장을 찍어 주는 데 쓰이고 있었다.

민족주의 진영의 원용도 같은 방식으로 작동한다. 빌더르스의 정식 “우리는 불관용한 자들에게 불관용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는 포퍼의 논리 구조를 종교로서의 이슬람과 정치적 기획으로서의 무슬림 이민에 적용한다.

그의 논증은 이렇다. 불관용적인 종교를 관용하는 것은 자유주의적 가치를 훼손하므로, 자유주의를 지키려면 무슬림 이민과 소수자의 문화적 표현을 제한해야 한다. 결론은 포퍼의 것이지만, 그 결론을 끌어낸 구조는 포퍼의 것을 닮았을 뿐 그의 것이 아니다. 빌더르스는 실제 테러에서 출발하며, 알려진 극단주의자들에 대해서는 예방 구금을 원한다. 하지만 그의 금지와 불관용은 이슬람의 교리가 반자유주의적이고 민주주의와 양립할 수 없다는 이유로 이슬람 전체와 그 신자들, 무슬림 이민자들에게 향한다. 그것은 다른 조건이고, 훨씬 더 흔한 조건이다. 그것만으로 역설이 발동된다면 세계 종교 대부분과 현존 정당의 상당수를 억압하는 일이 허용될 것이고, 빌더르스 자신과 꽤 비슷한 입장을 지닌 정당들도 거기에 포함될 것이다.

두 원용은 구조적으로 한 가지 수를 공유한다. 논증을 쓰는 사람이 누가 불관용한지를 역설을 적용해서 가려내는 대신 적용하기 전에 이미 정해 버리고, 그래서 포퍼의 문턱에는 끝내 이르지 않는다.

이 논증은 양쪽에서 퍼지는 방식도 다르다. 민족주의 쪽의 원용은 집중되어 있다. 이름이 알려진 정치인들이 있고, 명시적인 제도적 강령이 있다. 진보 쪽의 원용은 분산적이고 바이럴하며 탈중심적이어서 정당 강령보다는 스크린숏과 논평을 통해 작동하지만, 건너뛰는 문턱은 같다.

포퍼가 메우지 못한 “누가 결정하는가?”의 틈을 양쪽은 바로 사전의 정치적 판단으로 채우고는 그것을 철학이라 부른다. 양쪽 모두 그를 정확히 읽고, 결론은 챙기고, 그 결론을 정당화하도록 설계된 조건은 버린다.

바이마르, 그리고 걸려 있는 것

포퍼는 실제 사례를 두고 쓰고 있었다. 1938년 크라이스트처치에서 집필을 시작했을 때 그의 눈앞에 있던 사례는 바이마르 공화국이었다. 그보다 5년 전 그는 빈에서, 자유주의 제도가 민주적 절차가 민주주의를 안에서부터 파괴하는 데 쓰이는 것을 막지 못하는 광경을 지켜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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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SDAP는 1933년 무력으로 권력을 잡지 않았다. 바이마르 민주주의의 장치, 즉 선거와 연정과 헌법 절차를 이용했고, 그 장치를 운용하던 사람들이 결과를 지지했거나 저항하지 못했기 때문에 장치는 이 정당을 받아들였다. 바이마르 헌법 제48조는 제국 대통령에게 비상대권을 부여했는데, 1932년에 이르러 힌덴부르크는 한 해에만 60차례 이 조항을 발동했다. 급박한 비상사태 때문이 아니라, 정치적 교착으로 정상 절차가 번거로워질 때마다 의회 통치를 대신하는 일상적 수단으로서였다. 비상 통치의 일상화는 나치의 부상보다 먼저 시작되었다. 위협이 온전히 모습을 드러내기 전에 이미 독일의 제도와 대중은 포고령에 의한 통치에 길들어 있었다.

이어 1933년 2월 28일 제국의회 화재 법령이 나왔다. 민주 질서를 전복하려는 공산주의자들에 맞선 비상 방어 조치로서 제48조에 근거해 공포된 법령이었다. 표현의 자유, 집회의 자유, 사생활, 언론의 자유 같은 시민적 자유가 무기한 정지되었다. 첫 체포의 물결은 압도적으로 공산주의자들을 덮쳤고, 그 수는 수천 명에 달했다. 그러나 권한은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몇 주 만에 그 권한은 사회민주당원, 노동조합원, 언론인에게로 향했고, 1933년 6월에는 같은 법령이 사회민주당(SPD) 자체를 금지하는 데도 정권에 힘을 보탰다. 민주주의의 이름으로 공산당을 겨냥해 발동한 방어 조치가 모든 반대자를 짓밟는 법적 근간이 되었다.

3주 뒤인 1933년 3월 23일 수권법이 뒤따랐고, 444 대 94로 통과되었다. 이 숫자는 형식적으로는 정확하지만 실제로는 오해를 부른다. 공산당 의원 81명 전원이 의사당 출입을 금지당했고, 그 대부분은 이미 체포된 상태였다. 그들의 의석을 박탈할 법적 근거는 없었고, 근거는 나중에야 만들어졌다. 사회민주당 의원 120명 가운데 26명은 표결이 열린 크롤 오페라 하우스를 SA와 SS 부대가 에워싼 가운데 물리적으로 자리에 앉지 못했다. 이 법은 형식상 합헌이었다. 3분의 2 다수가 필요했고 그것을 얻어 냈는데, 부분적으로는 야당이 이미 체포되었거나 위협을 받아 자리에 없었기 때문이었다. 형식적 유효성은 실질적으로는 준군사 조직의 강압 아래 벌어진 민주주의의 자기 파괴에 절차적 외피를 입혀 주었다.

이런 패턴은 독일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FBI의 코인텔프로(COINTELPRO)는 1956년 국가 안보 위협으로 간주된 공산당을 교란하기 위해 공식 출범했지만, 이후 사회주의노동자당으로, 이어 큐클럭스클랜과 흑인 정치 단체들로(마틴 루서 킹 주니어의 남부기독교지도자회의는 “흑인 민족주의 증오 단체”로 분류되었다), 마지막으로 학생 신좌파로까지 확대되었다. 이 프로그램은 1971년까지 이어졌다.

정당화 논리는 구조적으로 수권법의 그것과 똑같았다. 민주적 제도에 대한 실존적 위협이 있고, 그에 맞서려면 정상적인 절차적 제약으로는 너무 느려 제공할 수 없는 방어 조치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코인텔프로가 클랜 같은 폭력 집단을 상대로 무엇을 이루었든, 이 프로그램은 15년 동안 합법적이고 평화적인 정치적 반대 활동을 방해했다.

두 경우 모두 실존적 위협이 내세워졌고, 방어 권한이 확보되었으며, 그 권한은 발동의 명분이 된 위협을 훌쩍 넘어 민주적 반대 의견에까지 겨누어졌다. 두 사례로 법칙이 성립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이 둘은 서구 자유민주주의에서 방어적 불관용이 동원된 사례 가운데 가장 철저하게 기록된 두 경우이며, 둘 다 같은 궤적을 밟았다. “실존적 위협”이라는 딱지는 민주적 반대 의견이 성가셔질 때면 언제든 꺼내 쓸 수 있다. 그 순간에는 반증할 수 없기 때문이다. 위협을 반박할 수 있는 것은 권한이 이미 동원된 뒤다.

포퍼의 조건은 바로 이것을 막기 위해 설계되었다. 자유주의적 가치에 대한 반대, 불쾌한 발언, 심지어 조직된 정치적 반대조차 그 조건에 미치지 못한다. 그 조건이 겨냥하는 것은 논증과 여론이 더는 억제할 수 없는 운동, 곧 합리적 논증을 버리고 절차의 개방성을 이용해 그 개방성을 안에서부터 닫으려 하던 부류의 운동이다. 그는 이 문턱을 일부러 높게 잡았다.

남아 있는 난제

그렇다고 포퍼가 구조적 문제를 잘못 짚었다는 뜻은 아니다. 자유주의적 절차주의는 그 핵심 구조 안에 자기방어 장치를 갖추고 있지 않다. 그것은 작정한 반민주 세력이 안에서부터 잠식할 수 있는 조건들, 즉 정보를 갖춘 대중, 제대로 작동하는 독립 기관, 민주적 경쟁에서 선의를 지킨다는 공유된 규범에 기댄다. NSDAP가 이를 증명했다. 그들은 1923년 뮌헨 폭동에서 한 번 무력을 시도했다가 실패했다. 그 뒤로는 다시 쿠데타를 시도하지 않았다. 선거를 통해 움직이고, 연합을 만들고, 의석을 얻으며, 동시에 돌격대의 거리 폭력을 이어 가면서, 안에서부터 절차를 끝낼 만한 지렛대를 쥘 때까지 기다렸다. 이것은 실재하는 취약성이며, 포퍼가 이름 붙인 것은 그가 현실이 되는 것을 직접 지켜본 취약성이었다.

방어적 불관용의 실제 전력이 나쁘다고 해서 그 밑에 깔린 난제가 사라지지는 않는다. 그것은 수위 조절 문제를 더 어렵게 만든다.

포퍼에게 억압은 최후의 수단이다. 반론과 여론이 불관용한 운동을 억제하는 데 실패했음이 분명히 드러난 뒤에야 쓸 수 있는 수단이며, 그가 염두에 둔 사례는 민주적 경쟁을 가능하게 하는 합리적 논증을 버린 운동이다. 그가 처방하는 첫 번째 수단은 반론과 시민 교육, 그리고 민주적 회복력을 위한 제도적 투자다. 독립된 법원, 제대로 작동하는 언론, 국가의 허락 없이도 권력에 맞설 수 있는 탄탄한 시민사회가 그것이다.

이 첫 번째 수단에 해당하는 처방은 거의 인용되지 않는다. 반론은 화려하지 않고 느리다. 반론은 눈에 보이게 패배한 상대도, 무언가 조치가 취해졌음을 알리는 억압의 순간도 남기지 않은 채 끝난다.

제도 구축은 그보다 더 느리다. 수십 년이 걸리고 깔끔한 결과도 보여 주지 않는다. 반론도 제도 구축도, 상대를 용납할 수 없는 자로 규정하고 결론을 꺼내 들 때 오는 즉각적이고 만족스러운 해결 같은 것은 주지 못한다. 유인 구조는 포퍼의 첫 번째 수단에서 크게 멀어져 마지막 수단 쪽으로 흐른다. 억압이 더 빠르고 더 눈에 잘 띄기 때문이다.

게다가 실패는 겹겹이 쌓인다. 최후의 수단을 일상화해 맨 먼저, 거듭해서 쓰면 반론이 애초에 가능한 조건 자체가 무너진다. 억압을 기본값으로 삼는 공론장은 포퍼가 지키려 했던 합리적 소통의 공유 규범을 길러 낼 수 없다. 그가 맞서 글을 쓴 실패가 바로 그것이다.

포퍼는 해법을 제시했다. 어려움은 그 해법에 이기는 그림이 없고, 어느 편에도 이미 하려던 일에 대한 허가증을 내주지 않으며, 제도가 아직 작동하는 동안에는 성과가 잘 보이지 않는 장기적 제도 투자를 요구한다는 데 있다.

어긋난 수위 조절

수위 조절의 실패는 두 방향으로 일어나며, 두 실패의 무게는 같지 않다.

민간 플랫폼과 기관이 실존적으로 위험하다고 규정된 인물을 증폭해 주지 않기로 하는 진보 쪽의 원용은 포퍼의 조건에 비추어 실제 실패이지만, 덜 위험한 실패다. 민간의 편집 결정은 국가가 자유를 억압하는 것이 아니며, 플랫폼이 조치를 취하는 것 자체가 문제는 아니다. 문제는 그들이 쓰는 기준이다. 포퍼가 억압을 허용한 것은 논증과 여론으로 더는 견제할 수 없는 운동, 이를테면 합리적 논증을 거부하고 추종자들에게 반대 의견에 폭력으로 대응하라고 가르친 운동에 한해서였다. 그 대신 적용되는 것은 더 낮고 더 신축적인 기준, 곧 불쾌감, 연루, 혹은 위험하다는 규정이다. 그 신축성은 그 기준에 걸리는 쪽에 선 사람이라면 누구에게나 뻔히 보인다. 역설이 “우리는 너와 논쟁할 의무가 없다”는 뜻으로 쓰일 때, 그것은 논증에 반대하는 논증이 되어 버린다.

민족주의 국가의 적용은 범주부터 다를 만큼 더 위험하다. 헝가리의 오르반 빅토르는 2020년 3월 코로나19 팬데믹을 이유로 위험 상태를 선포했고, 그해 여름 잠시 멈춘 뒤로 이후 6년 중 대부분을 의회를 우회해 포고령으로 통치했다. 2022년에는 팬데믹 비상사태가 전쟁 비상사태로 넘어갔다. 포고령 통치는 유권자들이 그를 몰아낸 뒤인 2026년 5월에야 끝났다. 같은 기간인 2021년 6월에는 의회가 야당 대부분이 표결을 거부한 가운데 157 대 1로 학교와 광고, 미성년자 대상 미디어에서 LGBTQI 콘텐츠를 금지하는 법을 통과시켰다. 공공장소에서 얼굴 가리개를 금지하고 공립학교에서 눈에 띄는 종교 상징을 제한한 프랑스의 조치는 법적으로 세속주의, 공공 안전, “함께 살아가기”의 요구에 근거하며, 착용자들이 불관용하다는 어떤 판정에 근거한 것이 아니다. 포퍼에 비추어 읽으면, 이 조치들은 먼저 관행을 제한하고 그의 문턱은 검토하지 않은 채 남겨 둔다. 이것들은 포퍼가 명시한 문턱이 충족되었음을 입증하지 않은 채 취해져 소수 집단에 가장 큰 타격을 주는 국가 행위다. 국가 차원에서 이 조치들은 그의 조건이 막으려 했던 바로 그 일을 한다.

국경 없는 기자회는 2025년에서 2026년 사이 언론 자유 지수에서 미국의 순위를 57위에서 64위로 내리며, 기자에 대한 공격을 정책으로 만든 백악관과 미국의 소리를 비롯한 공영 국제방송에 대한 대폭적인 예산 삭감을 원인으로 꼽았다. 프리덤하우스는 2019년 헝가리를 “자유”에서 “부분적 자유”로 강등했다. 이 분류를 받은 첫 EU 회원국이었고, 근거는 오르반의 피데스당이 독립 법원, 자유 언론, 학술 기관, 시민사회를 지속적으로 공격했다는 것이었다. V-Dem은 현재 세계 국가의 4분의 1에 가까운 44개국이 독재화로 미끄러지고 있다고 집계하며, 민주주의의 요소 가운데 가장 거센 공격을 받는 것으로 표현의 자유를 꼽는다. V-Dem의 정의에 따른 자유민주주의 국가에 사는 인류는 이제 7%에 불과하며, 같은 기준으로 미국은 50여 년 만에 처음으로 그 지위를 잃었다.

이 수치들이 보여 주는 것은 첫 번째 수단을 이루는 제도들의 상태다. 어떤 나라에서는 자유주의적 가치를 명분으로 내세우는 정부가 그 제도들의 돈줄을 끊고, 정당성을 깎아내리고, 해체하고 있다. 다른 나라에서는 포퍼를 가장 큰 소리로 내세우는 바로 그 정치 세력이 그 일을 하고 있다. 최후의 수단을 과잉 적용하는 쪽도, 첫 번째 수단을 내버리는 쪽도 철학적 명분을 한 사상가에게서 끌어오고 있다. 그는 정반대를 처방했고, 한 민주주의가 바로 이 메커니즘으로 스스로를 파괴하는 것을 지켜보았기에 경고를 썼다.

1938년 포퍼는 서른여섯 살이었고, 뉴질랜드 크라이스트처치에 살면서 빈에서 지켜본 바이마르의 붕괴에 대해 쓰고 있었다. 그가 쓰던 주석은 억압이 언제 허용되는지에 대한 의기양양한 처방을 내놓지 않았다. 그 글을 쓴 사람은 자신이 이름 붙인 구조적 취약성을 이해하고 있었고, 자기가 지지하는 진영이 다음에 하고 싶어 하는 일에 명분을 만들어 주기를 분명히 거부했다.

그 각주는 이후 조건을 빼앗기고, 인용하기 좋은 한 문장으로 줄어들고, 스크린숏으로 유통되어, 애초에 경고하려고 쓰인 바로 그런 종류의 절차적 허점 공략에 동원되었다.

그의 논증이 던지는 질문은 합리적 반론을 가능하게 하는 첫 번째 수단의 제도들이 과연 유지되고 있느냐, 즉 관용적 민주주의의 조건을 함께 이루는 법원과 언론과 시민사회에 투자가 이뤄지고 있느냐 아니면 속이 비어 가고 있느냐는 것이다. 2026년에 그 질문에는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답이 있고, 스크린숏에는 그 답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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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요 출처 및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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